기억하는 법

2016년 5월 18일culturalaction

제주도 강정마을에 살고 있는 강정지킴이 딸기의 기고글입니다.

제주에 와 봄을 기억하는 것은 벚꽃이었습니다. 유난히 탐스러운 벚꽃이 마을길에 흐드러지게 필 때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었고, 이렇게 한해가 넘어왔구나 싶었습니다. 새해보다는 겨우내 움츠렸던 꽃망울이, 새싹들이 움터오는 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한해를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자라나는 것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이 질긴 생명들이 허망하게 죽어갔던 4월 16일 이후 봄을 맞이하는 소식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방문 소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겠다는 전화를 받고서 그제야 봄이 왔음을, 잔인한 시간이 왔음을 생각 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오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차디찬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에 강정에선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았던 인간띠잇기를 약 한 달간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다는 육지보다 두 달에서 세달 늦게 온도가 높아져 4월의 바다는 한 겨울의 바다 날씨입니다. 그 덜덜 떨리는 바다 속에 아직도 9명의 미수습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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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에서는 매일 희생자들의 얼굴과 그들의 꿈을 그린 등이 밝혀졌고,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등 걸기 작업은 약 1년 반이 지난 최근에 끝이 났습니다. 조용히 등을 달기 시작했던 친구는 조용히 혼자 등을 떼어 냈습니다. 다른 한 친구는 4월16일 유채꽃을 한 다발 들고 사라져간 꿈들을 위로하며 강정 천 하류 멧부리에서부터 해군기지까지 위로의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강정 지킴이들은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강정에서의 봄은 유난히 잔인한 계절 이었습니다. 구럼비 발파가 시작되었던 2012년 그 초봄에서부터 그 이듬해 봄까지 지붕이 있는 곳에서 보낸 시간보다 먼지 날리는 강정천교, 공사장 정문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습니다. 헉헉거리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비명과 눈물이 섞인 시간들은 가끔은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생에 벌어진 것처럼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기억은 조각조각 부서져 많은 얼굴들, 많은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즐거웠던 일 보다는 아픈 일이 더 많이 남아 있어 어쩌면 들춰 보지 못하는 마음 한 구석의 작은 상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6년의 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토록 반대해 왔던 해군기지는 2월 26일 준공식을 가졌고 군인들이 본격적으로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군복을 입고 마을 사거리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일에 바쁜 금요일 오후 시간, 주민과 함께 한다며 음악회를 엽니다. 마을안쪽까지 시끄러운 트롯트 소리를 들려옵니다. 마을주민들에게는 공사를 방해했다며 34억이라는 구상권을 청구해 놓고, 한쪽에서는 주민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여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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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훈련 나온 해병들이 무장한 채 초등학교 앞길을 지나 마을의 가장 중심 사거리를 지나다 주민들에게 저지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총구를 들이대는 것이 상생이냐? 훈련은 부대 안에서 해라” 하며 항의했던 주민들에게 소환장이 날아왔습니다. 마을회장님께는 차량을 막은 것 뿐 아니라 모욕죄의 혐의까지 추가 되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욕보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준공식 때만 해도 곳곳이 비포장 도로였던 해군기지는 올해 봄을 지나며 공사가 마무리 되었고 해군기지를 둘러싼 팬스들이 사라졌습니다. 항에 들어온 군함도 눈앞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팬스가 사라지면서 그곳에 썼던 우리들의 절규, 희망, 노래들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올레길 7코스를 걷는 사람들은 새로운 팬션 단지가 들어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 환경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바뀌었습니다. 지난 5월7일은 2011년 9월3일부터 매일 공사장정문 앞에서 드리던 생명평화미사가 마무리 되던 날 이었습니다. 공사가 마무리 되고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고, 더 이상 공사장정문을 막고 했던 미사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정지킴이 친구들은 여전히 미사 시간이 되면 미사천막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름아름 소식을 듣고 모인 친구들은 함께 미사를 하고, 가장 긴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시간이 되면 우리는 공사장 정문으로 갑니다. 7시가 되면 어김없이 백배 기도를 하고 11시 즈음이면 미사천막에서 소박한 미사도 열립니다. 12시에는 새로 만들어진 그 길로 이동해 인간띠잇기를 합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그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힘에 부치는 날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대한 군함이 들어온 바다를 바라보며 하는 인간띠잇기는 그야말로 고역입니다. 이런 춤 따위가 이런 노래 따위가 도대체 저 군함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팔에도 다리에도 힘에 들어가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서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몇 년이 되겠지만, 많은 친구들이 함께 기억해 준다면 지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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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한창입니다. 질긴 생명들이 가지를 뻗고 여린 싹들은 부쩍 짙은 녹색이 되어갑니다. 생명들이 질기게도 살아가는 것처럼 강정에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부디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시멘트를 뚫고 나오는 민들레 같이 도처에서 아우성치는 질긴 생명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딸기 _강정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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