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불어오는 혁명의 바람?

2016년 9월 19일culturalaction

0.

약속 시간이 잠시 떴을 때,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주변 서점을 기웃거리며 요즘 어떤 책들을 나오는지 살펴본다. 얼마 전부터 진열대 한 켠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책들이 있다. 바로 혁명을 말하고 있는 책들이다. 혁명은 끝났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아니 아무도 혁명을 말하지 않는다고, 혹자의 말마따나 오히려 ‘위대한 혁신’의 시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혁명이라니. 다시, 혁명의 바람이 불어오는 건가?

 

1.

IMF라는 경제 위기 속에서 대량 구조조정이 실행된 이후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본격적인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전체적인 사회 구조에서부터 사람들 간의 미시적인 관계들과 개인들의 정서까지도 급격하게 변화했다.

정보화 시대에 지식기반경제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보통신산업을 성장동력 삼아 IT강국 한국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자기계발하는 주체로 호명되어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기업가적 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하고, 자기 자신의 경영자가 되어 자기의 스펙을 잘 관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기업가 혹은 경영자라니, 말이야 멋들어질 수 있지만 ‘당신을 계발하라’는 명령 속에서 우리의 현실은 자신의 열정을 팔아서 삶을 버텨야만 하는 열정노동자였다. 그래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모든 걸 소진한 후에는 힐링의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경제위기라는 말을 일삼았고, 비정규직들이 대량 양산되었고, 취업의 문은 더욱 높아지고 경쟁은 치열해졌으며, 사회적으로 우울증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황 속에서 사회는 점점 더 보수화 되어가며 사회변혁을 외치던 정치사회 운동들은 힘을 잃게 되었다. 더불어 비판적인 지식들은 실용적인 지식들에 밀려 지식 생산의 전장에서 힘없이 패하고 말았다. 비판적 지식인이 아니라 자상한 멘토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SNS로 인한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과 사회적 관계의 회복을 꾀하기도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허탈한 결과를 우리에게 쥐어줬다.

이런 지리멸렬한 분위기 속에서, 현실을 떠나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자신의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가로 창업하거나 참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리셋 버튼 앞에서 버튼을 누를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졌다. 무엇보다 세월호와 메르스 등과 같은 거대한 국가참사 앞에서 우리는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그냥 ‘개, 돼지’일 뿐이었고, 분노는 날로 커져갔다.

 

2.

그래서일까? 혁명을 담은 책들이 도서 가판대를 조금씩 매우고 있다는 생각에 반가우면서도 어색하다. 기다리던 순간이지만,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혁명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슨 혁명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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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이 혁명은 올해 초 다보스포럼(Davos Forum)의 의제였다. 다들 알고 있듯, 다보스 포럼은 전 세계 경제인들이 모여 세계경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이다. 다시 말해 지배계급들 그리고 지배계급의 편에 선 중간계급들이 회동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1)

어쨌든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등의 기술혁신과 그로 인한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미래 일자리의 변동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자신들의 지배적 경제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온 다보스 포럼이 2008년 국제금융 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모델을 구상하며 다시 성장에 중심을 둔 ‘포스트-자본주의’를 역설했던 맥락을 떠올려보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그들의 해법이 그렇게 새로운 발상은 아닐 수 있다. 제3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쟁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지만 말이다.2)

하지만 미국, 독일 등의 국가들은 이미 제4차 산업혁명의 플랜을 진행 중이고, 다른 국가나 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선취하고 패권국이 되어야 한다는 경쟁적 상황에서 뒤쳐질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3)

세계경제포럼의 수장 클라우드 슈밥(Klaus Schwab)이 제시하는 산업혁명의 대략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현재 우리는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기술의 혁신으로 산업혁명을 위한 과학기술적 토대가 준비되어 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웨어러블 인터넷, 사물인터넷, 스마트 도시, 인공지능, 3D프린팅 등을 활용하여 기존의 산업구조를 혁신하고 새로운 삶을 창출해야 한다. 새로운 과학기술과 기술융합은 경제구조, 기업, 국가, 사회, 개인 모두에게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이버-물리-시스템’이다. 사물인터넷을 통한 ‘초연결 사회’의 도래가 코앞이다.

이런 미래사회의 저편에서 이렇게 손짓한다. “전 인류는 모두 혁명의 주체이다. 모두가 혁명에 참여하라!” 그렇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냥 동질한 집단으로서 하나의 인류일 뿐인가? 기술혁신으로 인한 산업혁명에서는 계급관계는 무마되는 것인가?

 

3.

최근 ‘노동자의 책’이 압수수색 당했다. 압수수색의 명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이다. 2016년 7월 어느 날 경찰들이 이진영 대표의 집에 들이닥쳐 책과 클라우드 파일, 메신저, 메일까지 탈탈 털어갔다. 그리고 노조의 회의문서까지 이적문서로 규정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서슬 퍼런 칼날을 노동자에게, 노동자의 책에게, 노동운동에게 들이댄 것이다.4)

87년 이후 93년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20년도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사회변혁을 꿈꾸는 노동자들의 사상과 활동은 금지하고 억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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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동자의 책

 

‘노동자의 책’은 사회변혁과 비판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한 번쯤은 이용했을 법한 곳이다. ‘다중 인문사회과학 전자도서관’이자 ‘진보적 인문사회과학의 정보기지’를 자처하고 있는 곳답게 80-90년도에 저술되거나 번역되었던 비판적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을 ‘노동자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아카이브 해놓고 있다.5)

시절은 하수상하지만, 현실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전망해야 할지에 대한 분석적 시각과 상상력은 이 작지만 거대한 놀이터에서 자극받는다.

이 도서들은, 노동자계급의 현실을 파악하고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이론적 작업들과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억압적 국가권력과 행태와 자본과의 공조 속에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치열하게 사회변혁과 혁명을 고민하던 흔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토대다. 역사적 사례들이 그랬듯, 지식의 축적과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딛고 서 있는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인 투쟁은 이 자발적인 운동에서 일정 정도 자양분을 얻는다.

이번 ‘노동자의 책’에 대한 압수수색은 노동자들의 문화와 정치적 가능성에 가한 현실적인 폭력이자, 또한 계급적 관점에 대한 사유를 가로막으려는 상징적 폭력이다. 최근에 반복되고 있는 예술, 교육, 사상에서의 검열 사태는, 그들이 허용한 내에서만 숨쉴 수 있도록 우리를 제약하는 금지의 선언이다. 계급투쟁에 대한 혁명적 상상력은 이렇게 재단된다.

 

4.

만약 지금 어디에선가 혁명을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어떤 혁명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어떤 혁명인가? 우리에겐 사회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와 새로운 산업의 성장,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착취와 지배에 대한 정치적 투쟁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물론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후자의 선택지가 비가시화되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혁명이 무엇이고, 금지된 혁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물을 수는 있을 것이다.

 

1) 대항세력으로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이 있다.

2)다보스포럼 이후 아직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반박의 글들도 있었다.

3) 한국은 최근에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정책 시사점에 대한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산업혁명과 관련된 담론을 과잉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현실에서의 효과와 변화에 대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4) 정황과 자세한 내용은 참세상에서 다룬 이진영 대표의 인터뷰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에 때 아닌 국가보안법 적용 논란” (참세상. 2016.8.25)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1430

5) 종종 도서관에서도 찾기 힘든 책들이 검색에 걸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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