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벌이고 폭망한다. 결론은 보이코트!

2016년 8월 25일culturalaction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국민의 열광은 둘째 치고 신문과 방송이 함께 망가진다. 운동경기에서 이겼을 뿐인데 국민들은 세계에 우뚝 선 강대국이 된 듯 착각에 빠진다. 스포츠가 국가주의와 뜨겁게 포옹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스포츠가 이성의 영역을 넘어 완전히 미쳐 돌아갈 때가 있다. 스포츠메가이벤트를 유치할 때. 스포츠가 민족주의와 결합한 상태에서 우리의 부자가 되고픈 욕망을 부추기면, 즉 스포츠와 민족주의와 개발주의가 함께 만나는 순간 우리는 미친다. 나는 이를 ‘스포츠개발민족주의’라고 부른다.

전두환이 유치했던 88올림픽은 우리에게 빛과 어둠을 안겼다. 빛이라면 대한민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고 우리 국민의 역량을 확인한 것이다. 어둠이라면 1980년대에 들어서도 독재가 내달릴 수 있는 길을 터줬고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80만 명에 달하는 철거민이 발생하는 등 민초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는 점이다. 빈민운동의 시작이 바로 올림픽이었던 것이다.

1987년, 철거되는 서울 상계동 일대
1987년, 철거되는 서울 상계동 일대

국가가 유치를 결정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수많은 지자체가 스포츠메가이벤트 유치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지자체가 이런 이벤트를 치를 때, 얻게 되는 것은 잠시의 환호 뿐 실제로는 엄청난 빚더미뿐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들은 이 미친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21세기 우리나라에서 열린 최초의 스포츠메가이벤트는 2002년의 부산아시안게임일 것이다. 부산이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그들이 원하던 ‘세계적 도시’는 고사하고 ‘동북아 중심도시’라도 되었는가. 지금 부산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시안게임과 함께 월드컵 경기도 같은 해 치렀고 2005년엔 APEC정상회담까지 치렀는데도 왜 부산은 자살률이 최고인 도시, 실업률이 가장 높은 도시, 평균수명이 가장 낮은 (즉 가장 빨리 죽는) 도시, 젊은이가 떠나는 최고령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가.

올림픽은 우리 민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개최 도시를 망가뜨리고 한 세대 안에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힌다. 실업률을 낮추지도 못하고 경기를 부양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개최지는 올림픽 폐막 후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데 이를 외국의 학자들은 ‘포스트 올림픽 슬럼프’라고 부른다. 엄청난 규모의 경기장들은 사후에 활용할 방도가 없어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돼버렸다. 그래서 서구사회 대부분의 도시들은 유치에 나섰다가도 결국 유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2015년 행정자치부 선정 예비재정위기 지자체
2015년 행정자치부 선정 예비재정위기 지자체

외국에서는 이미 지난 세기에 스포츠메가이벤트가 도시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역 공동체를 붕괴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국가가 주도하지 않고, 지자체도 혼자 나서는 경우가 사실상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와는 정반대로 갔다. 중앙정부가 회의적 의견을 표명해도 지자체가 밀어붙이는 것이다. 전라남도는 F-1 자동차경주를 유치하면서 영암에 1조 원 가까이 투자했으나 4년 동안 대회를 개최한 결과 누적 적자만 2000억 원이 발생해 결국 대회 개최를 포기했다. 위약금을 물더라도 개최를 않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메가이벤트라는 수렁에 한 번 빠지면 쉽게 나올 수 없다. 전라남도가 지불해야할 위약금 액수가 53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도 측은 법적 소송에 대비해 변호사 선임료를 책정했다고 한다. 변호사 비용만 30억 원이다.

광주에도 전남 못지않은 ‘헬게이트’가 열렸다.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하면서 1천억 원 가까운 부채를 떠안게 된 광주는 대회 개최 전 유치했던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로 인해 재정악화라는 대못을 박게 생겼다. 2012년 유치 신청 당시 책정해서 정부로부터 승인 받은 총예산이 635억 원이었는데 올해 최종 산출한 총예산이 무려 1935억 원이다. 이 중 국비가 55억 원에서 606억 원으로 무려 열배 이상 폭등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원래의 55억 원 이상은 지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광주시가 결국 부담해야 할 액수는 15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광주에서는 지금 차라리 반납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야기했듯 스포츠메가이벤트의 저주는 반납으로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납하는 경우 이미 지급한 개최권료 2000만달러(226억원)를 포기하고 거기에 별도로 위약금 500만달러(56억원)를 국제수영연맹(FINA)에 지급해야 한다. 그럴 거면 그냥 대회 강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2017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유치했던 멕시코 과달라하라는 2015년 위약금 내고 대회를 반납했다.

그럼 평창올림픽으로 돌아가볼까. 평창, 아니 강원도는 왜 올림픽을 유치했을까? 강원도민이 스포츠 중에서도 특히 동계스포츠를 좋아해서? 김진선 전 지사가 올림픽을 사랑해서? 아니다. 그들은 강원도를 ‘발전’시키기 위해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그러면 그 발전은 무엇? 경제발전, 즉 부자가 되기 위해 유치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줄까? 바로 토목개발이다. 앞으로 15조 원이 될지, 20조 원을 넘어설지 모르는 올림픽 개최준비 예산 중 경기장 건설에 투입되는 예산은 고작(?) 8천억 원도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 도로, 철도 위주의 토목공사들이다. 강원도는 올림픽을 ‘미끼’로 해서 토목공사를 위한 국고를 따가는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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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3일 간의 스키활강 경기를 위해 베어진 가리왕산의 6만여 그루의 나무들

물론 강원도민이 이제까지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또 서울사람들의 식수원이라는 이유로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재산상의) 피해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지나친 수도권 집중과 국토의 불균형 발전이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1400억 원을 들여 경기장을 짓고는, 대회 폐막 후 같은 액수의 돈을 들여 그 경기장을 허무는 이 코미디를 보고 우리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또 강릉경기장 리모델링도 있고 알펜시아 리조트 증축이라는 쉽고도 효율적인 방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4천 명의 횡계리에 1000억 원을 들여 4만 명 규모의 개폐막식장을 기어이 지어야겠다고 해서 이를 관철시킨 것은 또 무엇인가. 이제 제 정신인가 미친 것인가.

올림픽이 평화의 제전이라던데 올림픽하고서 평화가 다가온 것도 아니고, 또 아마추어정신의 축제라던데 프로선수들 뿐 아니라 엄청난 돈을 버는 아마추어선수들이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출전한다. IOC는 자기 자본은 한 푼 없으면서 올림픽 개최권을 가지고 각국 도시들을 경쟁을 붙여 그것으로 칙사 대접 받으면서 엄청난 돈을 벌고 있고 그 사이 개최 도시들은 엄청난 빚을 내서 대회를 치르고는 폐막 후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그래서 ‘올림픽 유산’이란 곧 ‘빚더미 유산’인 것이다.

사실 올림픽은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갈등유발자’ 역할을 해왔다. 유치 초기 평창과 무주의 다툼은 아마도 지자체 간 최초의 갈등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이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평창과, 아시안게임 유치에 나선 인천, 그리고 하계올핌픽 유치에 나섰던 부산이 서로 불편한 관계에 놓이면서 상대방 떨어지기를 몰래 바라는 요상한 형국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지금은 어려운 국가재정 속에서도 평창올림픽에 과도한 예산이 투입되고, 또 과도한 재정 악화와 가리왕산 등 환경 파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던 분산개최가 강원도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무산된 결과로 인해 국민들이 평창올림픽을 보는 눈길이 싸늘해졌다.

올림픽은 국가재정에 부담을 준다는 것은 이미 많은 올림픽이 반복해서 보여준 바 있고 개최 지역의 재정을 풍비박산 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올림픽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아시안게임을 치르고도 인천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자. 아시안게임으로 인한 재정적자가 얼마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시안게임이든, 세계수영선수권대회든, F-1 자동차경주든, 올림픽이든 그것은 개최지 주민들을 위한 게 아니다. 오로지 OCA와 FINA와 FOM과 IOC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스포츠메가이벤트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벌여주고는 주민들은 탈탈 털리는 글로벌 사기단의 수법일 뿐이다.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잇속은 그들이 챙기는 것이다. 우리가 왜 남 좋은 일을 하고 폭망해야 하는가. 결론은 보이코트다.

  • 정희준 _문화연대 집행위원,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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