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그리고 권리장전

2016년 6월 15일culturalaction

“벗! 침묵을 깨치라. 눈부신 광채를 뿌릴 벗의 붓이 미제와 군사 깡패들에게 내리치는 수백, 수천의 비수의 선봉이기를 나는 바란다. 조국은 이것을 바라고 또 명한다. 조국이 명하는 길에서 충실한 사람인 나의 벗이 그 붓으로 인민들로 하여금 이들을 쓸어버리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글을 써야 한다.

남녘땅에서 모든 붓들이 창검의 숲이 되어 미제와 박정희 군사 깡패를 몰아내고 쓸어 눕히기 위해 일떠 설 때는 왔다. 그 창검의 숲속에 남해의 나의 벗의 예리한 창검도, 눈부시게 빛날 것을 나는 믿고 바란다”

– 붓을 총창으로(문학신문 1962.03.23)

한 남자가 대남방송 마이크 앞에 서서 절절하게 호소하는 듯이 이 긴 편지를 읽어내려간다. 중간중간 스치듯 지나가는 자조와 괴로운 표정은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이 편지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쓴 조선의 ‘모던보이’, 백석이 쓴 것이다. 편지의 형식이지만 선동문에 가까운 이 편지가 백석이 쓴 것이라니 남한의 독자로서는 쉽게 믿기 어렵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1961년, 북한은 모든 매체를 동원해 남한에 연고가 있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대남공작에 나서던 시기였다. 삼수갑산 집단농장으로 유배를 가 있는 처지였던 백석에게, 전향 의지를 시험하기 위한 당국의 이같은 요구는 거절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리라.

연극 ‘백석 우화’를 보면서 가장 눈에 밟혔던 장면이기도 했다. 그나마 이 편지를 쓸 때만 해도 간헐적으로나마 글을 쓸 수 있었으나,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당의 문예정책을 왜곡하거나 반대하는 흐름은 부르주아 잔재로 낙인찍히게 되고, 백석 역시 이때부터 일체의 창작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백석을 ‘문학을 정치선동의 도구로 활용’했다고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다. 살아남기 위해 시인이 얼마나 절치부심했을지, 시인이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는지가 느껴졌으므로.

‘백석 우화’는 천재 시인 백석(1912~1996)의 시가 이윤택의 연극적 언어로 되살아났다는 평을 받는다. 2016년 한국에서 이 연극을 관람한 나는 백석의 이 편지와 이 편지를 절절하게 읽어내려가던 배우의 목소리에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첫 번째 공연 <검열 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소식(6월 12일 초연)을 겹쳐 떠올렸다. 21명의 젊은 연출가들이 6월부터 5개월간 20개의 공연으로, 연출가들이 생각하고 느낀 검열에 대해 발언하는 검열 비판 연극제 말이다.

지난해부터 정부 기관의 사전 검열과 이를 통한 지원 선정 배제 등이 드러나면서 일대 파문이 일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정권을 비판하거나 ‘세월호’를 다뤘거나, 아니면 공공연히 돌아다닌다는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거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국정감사장에서까지 질의응답이 오갔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최소한의 눈치’조차 보지 않는 이 정부의 후안무치는 계속되는 중이다. ‘알아서 기는’ 분위기가 공공연하다는 점에서 어느 한 기관이나 부처의 문제도 아니다. 독서동아리를 지원하는 사업에서, 고 신영복 교수의 책을 읽겠다고 신청하면 “이데올로기적 이념 서적은 구입을 피해달라는 것이 기본 방침” 이란 대답을 듣게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검열

북에서는 쓰기를, 남에서는 읽기를 거부당해왔던 백석은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검열’과는 거리가 먼 키워드다. 백석의 나머지 생애 문학 활동이 온통 ‘검열’과 ‘사상 검증’과 같은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역사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가 ‘월북’(백석이 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남기를 선택한 것이지, 이념적으로 북한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중요하지 않다)하기 이전의 작품만을 배워 왔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인정받는 백석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1)’의 시인이지, ‘꿩들도 목장에서 살고 싶어 울지. 꿩들도 조합 꿩이 되고 싶어 울지2)’의 시인이 결코 아니므로.

검열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2016년 한국과 1960년대의 북한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어디서건 살아나가야 하는 거요.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살아나가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소.” 백석은 이 같은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알량한 문화예술지원금에 기대어 한 줌도 되지 않은 권력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는 ‘누군가’들은 대체 어떤 변명을 갖고 있을까.

1)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2) 「앞산꿩, 뒤‘산꿩」, 『아동문학』 5월호(1960년)

* 앞에 인용한 편지글은『백석 평전』(안도현, 다산책방 2014)에서 가져왔습니다.

 

  • 정지은(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