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죽음

2016년 6월 8일culturalaction

지난 5월 28일,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하청업체 직원이 사망했다. 사고가 난 직후, 사고의 경위가 밝혀지기도 전에 서울메트로와 그가 고용된 하청업체 은성PSD는 사고 원인을 죽은 이에게 덮어씌우기 바빴다. 그들은 직원이 일하다 죽은 것보다, 자신의 책임-없음(무책임)을 증명하는 일이 더 급하고 중요했나보다.

사고가 나고 며칠이 지난 후 구의역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많은 이들이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컵라면, 편지, 국화, 도시락. 사고 다음 날이 그의 생일이라는 것도 현장에 놓인 미역국을 보고난 후에야 알았다. ‘김군’이라는 익명의 젊은 노동자가, 한 사람으로 다가오던 때도 그때였다. 벽 한쪽에 적힌 그의 이름. 친구가 그를 애도하며 남긴 쪽지였다.

문화빵 연재 순번이 돌아올 때쯤, 연일 언론에서는 살인사건과 죽음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묻지마 살인, 여성혐오 범죄, 공사장 사고 등. 구의역에서 죽은 김군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사회적인 죽음과 애도의 양식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있었고, 막 초고를 끝낼 무렵 구의역에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초고를 버렸다. 가끔 모든 말과 사고가 정지되는 순간이 있다. 구의역에서 마주한 경험은 내게 그런 순간이었다.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어렵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한다면 이 죽음 뒤로 숨은 은둔자들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싶다.

19살, 어떤 청년의 노동이야기

공고를 졸업한 김군은 은성PSD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그가 맡은 일은 지하철 1호선에서 4호선까지, 97곳의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인성PSD의 직원은 143명이고, 김군은 그 중 한명이다. 이 하청업체는 직원이 많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143명 중 58명이 서울메트로에서 퇴직한 사람들이고, 이들은 김군보다 2~3배 높은 임금을 받았다. 은성PSD는 서울메트로에서 전출한 직원의 정규직 고용을 조건으로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용역비로 받은 돈은 210억 원. 매달 지급되는 5억 8천만 원 중 4억 원은 서울메트로 출신 임직원들의 임금으로 쓰였고, 그 중 김군에게 할당된 몫은 한 달에 140여만 원이 고작이었다.1)

2016년 4월. 서울메트로는 용역업체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발표했지만, 그 중에 김군은 없었다. 대신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이 고용승계 자리를 채웠다. 김군은 동료들과 4월부터 쉬는 날마다 서울메트로 본사 앞에 나가 피켓시위를 했다. “갓 졸업한 공고생 자르는 게 청년 일자리 정책인가”2). 이 문구는 그가 노동자로서 부당한 고용조건에 대해 저항하는 목소리였다.

2인 1조로 움직일 것! 접수 후 1시간 이내 출동할 것!

생명을 담보로 일을 하는 현장에는 엄격한 매뉴얼이 존재한다. 하나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매뉴얼, 다른 하나는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매뉴얼. 두 가지 매뉴얼은 일손이 부족한 작업장에서는 자주 충돌한다. 그리고 대게 자본의 이윤을 위한 매뉴얼이 안전보장에 우선한다.

김군이 속한 팀은 11명의 현장 근무자가 있다. 그런데 휴직자를 제외하면 5~7명이 49개의 지하철을 수리한다. 사고가 났던 날, 6명이 일을 하고 있었고 각자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 있었다. 김군 역시 신고를 받고 구의역으로 출동했다. 2인 1조라는 규정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접수 후 1시간 이내 출동’하라는 규율이 안전규정보다 앞서 작동한다.3)

하청업체에서 이런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김군의 죽음에 책임감은커녕, 자신들의 이미지와 이윤을 위해 끝까지 죽은 이에게 사고의 책임을 전가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결국 사람을 채용하지 않고 그 이윤을 임직원에게 주면서 자본가들의  생태계에 남고자 했던 하청업체의 값싼 기업윤리이다. 만약 회사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고 책임감을 느꼈다면, 적어도 김군은 안전하게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세 번째 죽음

지하철에서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건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3년 성수역에서, 2015년 강남역에서, 그리고 2016년 5월 구의역까지.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이 수리 중에 목숨을 잃었고, 이들은 20~30대였다. 스크린도어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되었지만, 그것을 수리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하청업체들의 경쟁에 젊은 노동자들의 목숨이 담보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기억하자. 당신이 매일 오가는 스크린 도어, 그곳에 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자본에 눈 먼 은둔자들이 있었음을. 당신의 죽음은 당신의 잘못 때문이 아님을.

[각주]
 1) 노컷뉴스, “[단독]메트로-은성PSD 5년간 350억 계약..김군 월급은 144만원”, 김광일.송영훈.김기용 기자, 2016년 5월 31일. 
 2) JTBC, "피켓 들었던 '컵라면 청년'…서울메트로 앞 시위, 왜?", 2016년 5월 31일.
 3) 한겨레, “구의역 사고 김군은 왜 혼자였나…동료들이 말하는 ‘그날’”, 방준호 기자, 2016년 6월 1일.

 

  • 천주희 _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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