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가려져 있는 다른 세상

2016년 5월 18일culturalaction

종묘와 탑골공원 사이, 피카디리와 단성사 극장 사이에 다른 세상이 열리는 골목이 있다. 그 세상은 예전 조선시대 때 왕의 친척들이 오가며 친선을 도모하던 곳이었고 한국전쟁 이후엔 명성을 떨친 윤락가였다고 하며 지금은 하루 일세(日稅)를 칠천 원 정도 받는 곳이다. 종로 3가에서 조금만 걸으면 골목길에 가려져 있는 다른 세상, 돈의동 ‘쪽방촌’이 있다.

돈의동 쪽방촌의 배경 및 거주현황

종로3가 번화가 뒤편에 천 평정도의 대지 위 100개 이상의 건물이 있으며, 건물 안에는 600여 개의 방들이 벌집처럼 밀집되어 있다. 돈의동 쪽방의 역사를 보면, 일제시대 때 동광시장이 형성되어 벽돌과 아궁이 재료 판매의 주 근원지였으나 활성화가 되지 못했고,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동광시장 및 돈의동 일대(피카디리 극장 뒤편)는 500여 명 정도의 여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규모 집창촌이 형성되었던 지역이다. 현재 피카디리 극장이 있는 그 위치는 옛날 유명했던 명월관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박정희 정권 때는 돈의동 일대의 서울시 정책으로 집창촌을 없애고 그 이후부터 사람들이 잠 잘 곳이 없으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일시적인 거주공간인 돈의동 쪽방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집창촌 당시 목조건물은 대부분 1층이었으나 돈의동 쪽방으로 바뀌면서 2층으로 개조하게 되었고 숙박 및 고정적인 주거지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IMF 외환위기로 인해 대거 쪽방으로 밀집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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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인문학을 시작하기에 앞서, 개인적인 단상

문화사회연구소는 올해 6월부터 7월까지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한다.『희망의 인문학』저자인 미국의 인문학자 얼 쇼리스가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공적 삶으로의 변화를 제시했던 것처럼, 연구소는 쪽방촌 주민들 그리고 돈의동사랑의쉼터 관계자들과 함께 돈의동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어볼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외부에 강좌와 관련된 내용을 알리기엔 진행된 사항이 많지 않아 오늘의 이 글은 돈의동 쪽방촌을 둘러본 나의 개인적인 짧은 단상으로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빛이 클수록 그림자도 크기 마련이듯이 도시의 얼굴이 화려해질수록 그 민낯은 초라해진다.

광활한 빌딩으로 가득 채운 종로의 민낯은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에도 비좁은 돈의동 쪽방촌에 있다. 빼곡하단 말보다 엉켜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해 보일만큼 돈의동 쪽방촌의 주거 시설은 서울 도심의 그것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방문같은 대문을 열면 길이고, 닫으면 방이 되는 흐릿한 경계에 6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돈의동 쪽방촌. 내가 처음 마주한 쪽방촌의 단상은 이렇게 엉킴과 흐릿함이었음을 고백한다.

나와 당신의 쪽방이 엉켜있고 방과 길의 흐릿함 속에서 나는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앞장 서 걷던 분을 쫓아갔다.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로와 같던 쪽방의 길이 끝나갈 때 즈음 노랗고 빨간 꽃의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발길을 멈추어 뒤를 돌아봤고, 화분은 내가 걸어온 엉킴과 흐릿함 사이에 놓여 있었다.

어쩌면 쪽방촌 주민들의 삶에 인문학은 저 화분과 같을 것이 아닐까. 화단을 만드는 인문학이 아니라 방 앞에 놓일 화분을 심어보는 것. 엉킴과 흐릿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표식을 제공해주는 것. 앞으로 두 달간 진행될 인문학 강좌가 그러하길 바라며 쪽방촌을 걸어 나왔다.

  • 김소형 _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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