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기록

2016년 5월 10일culturalaction

문화과학 북클럽 : 신지영, 『마이너리티 코뮌』
문화사회연구소 박범기님의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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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계절감각 

“오늘 날씨 정말 좋죠.” 5월의 어느 날, 이 말을 들었다.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말은 의미 있게 들렸다. 말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아무 것도 아닌 말이 뜻밖에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나에게 그 말이 의미를 가졌던 이유는, 그 말 이후에 따라온 한 단어 때문이었다. 계절감각이라는 말. 각각의 계절에 따른 날씨가 있고, 날씨들에 따른 계절감각이 있다. 봄의 계절에는 온당 따사로운 날씨를 떠올린다. 가벼운 봄바람이 불어오고, 따스한 볕이 온 몸을 휘감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그러다 이내 다른 생각을 한다. 2014년 봄, 그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이후에 봄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지난 5월 4일,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문화/과학』 북클럽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지난 3월 출간된 『마이너리티 코뮌』 (신지영, 갈무리, 2016.) 으로 진행했다. 이 책의 저자인 신지영, 토론에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사회에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이  함께 이날의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를 시작하면서 신지영은 날씨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날씨 정말 좋죠.” 라는 이야기 뒤로, 신지영은 “계절감각”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봄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물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가 기억하는 봄이 변했다.

일본의 경우도 그렇다고 한다. 일본의 봄, 특히 5월은 꽃놀이를 가고, 돗자리를 펴놓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이라고 한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이후” 그해 딱 한 번, 일본에는 어떤 꽃놀이도 없었다고 한다. 방사능이 무서웠기 때문에, 피해지역이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이처럼 우리의 계절 감각은 변한다. “이후”의 시간에서 그런 변화들이 생긴다. 어떤 사건 이후, 그 이후의 시간에 우리가 기억하는 계절감각은 변하기 마련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쉽게 잊는다.

 

이전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의 감각

『마이너리티 코뮌』은 2009년부터 2015년에 걸쳐 도쿄, 서울, 뉴욕의 길에서 만난 소수자 마을(minority commune)에 대한 이야기다. 신지영은 이 기록에 있어 몇 가지 질문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이 이후의 시간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이후의 시간에서 저곳과 이곳을 어떻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 라고, 신지영은 묻는다. 이처럼 신지영에게 있어 이후의 시간은 중요하다. 이점에서 비춰볼 때, 이 책은 이후의 시간들, 특히 서로 다른 이후의 시간들을 연결 시키기 위한 하나의 기록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신지영이 주목하고자 하는 이후의 시간은 “하나의 코뮌이나. 재해나 운동이나 참사가 있었던 그 이후의 시간” 들이다. 신지영은 이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2011년의 시간을 든다. 2011년 재해가 일어난 이후 일본 거리가 들끓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힘들은 지속되지 못했다. 운동이 활성화 된 것은 잠시였고, 그 이후에 다시 운동은 사그라 들고, 파시즘화 되고, 우경화하는 순간이 발생했다. 신지영은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묻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후의 변화된 시간들을 탐색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일지 형식의 기록이다. 그것은 단지 한 순간들의 기록일 뿐이며, 이 순간들이 하나하나 이후의 시간‘들’인 셈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늘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다. 예컨대, 지금,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세월호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다. 세월호 이후라는 시간은 지속되는 시간이다. 2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이후”는 지속된다. 3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그 “이후”의 시간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후”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후의 시간은 복수의 시간들이다. 이 점에서 신지영은 이후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들을 연결하는 문제가 중요했다고 말한다.

 

소문의 아카이빙, 새로운 배열

이후와 이후의 시간들을 연결하기 위해 신지영은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한다. 신지영은 이 책의 글, 나아가 자신이 쓰고 있고, 쓰고자 하는 글을 “잡문”이라 말한다. “정치적인 글, 문학적인 글, 온갖 찌라시들을 다 모아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위해서 그 어떤 재료도 구분하지 않겠다” 고 신지영은 말한다. 신지영은 이것을 “올바른 방식의 새로운 배열”이라고 말하는데, 이 배열을 “소문의 아카이빙”이라 명명한다.

소문의 아카이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되지 않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찌라시들, 그날의 분위기들, 사람들의 에너지, 날씨, 냄새 같은 것들. 신지영은 그러한 것들을 내밀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그 순간의 기록인 동시에 이후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후의 기록들은 다른 이후들을 연결시킨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는 『마이너리티 코뮌』은 수많은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나아가 그것은 각각의 기록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이후와 이후의 시간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학술서도 아니고, 역사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운동을 전반적으로 소개하겠다, 이런 의도를 갖고 있는 책도 절대 아니”다. 다만, 기록되지 않는, 흩어지는 순간들, 소문들을 아카이빙 한 것이다. 이러한 아카이빙들은 이후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을 연결해준다. 이것이 이 책에서 신지영이 작업하고자 한 바이며, 그날의 자리에서 말해졌던 책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덧. 목소리에 대한 개인적인 메모

사실 이 짧은 글에서 그날의 자리에서 신지영이 말했던 모든 것, 나아가 『마이너리티 코뮌』이라는 책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흥미로웠던 부분들을 내 방식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나의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나의 목소리로 말해진다. 나는 내 목소리가 어떨 것이라 상상하면서, 이 발화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당신에게 다르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의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재밌게 들었던 부분이 목소리에 대한 것이었다. 신지영은  ‘소리를 질러 집회’ (책에는 “외치는 모임”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야시타 공원이라는 곳을 나이키 공원으로 만들면서 그곳에 살던 다수의 홈리스들이 추방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추방을 막고자 운동이 있었는데, 결국 이 운동은 실패했다고 한다. 그리고 운동이 끝난 이후, 운동을 주도한 몇 몇이 모여 미야시타 공원 인근 육교에서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여자와 퀴어들만 있었다고 한다. 그때 신지영은 자신이 지르는 소리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처럼 여성적인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 그때 그들의 소리는 괴물 같았다고 한다. 괴물의 목소리. 그게 자신의 목소리, 여성들의 목소리가 가진 소리의 질감이었다고 한다. 신지영은 자신의 목소리가 그런 질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쉽게 어떤 전형들을 생각한다. 여자의 목소리. 부드럽고, 작고, 나근나근한 목소리. 하지만, 정말 여자의 목소리가 그러한가? 꼭 그렇지만 않다. 거칠고, 둔탁하고, 크고, 갈라지는 소리. 그것이 여자의 목소리일 수 있다. 내 목소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상하고, 괴물 같은.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상 깊은. 그런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박범기 _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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