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깡총]다르게 만들기 혹은 망치기 연구실을 시작하며..(44호)
다르게 만들기 혹은 망치기 연구실을 시작하며..
청개구리 제작소
얼마전 지인이 진행한 사운드 워크숍에서 8비트로 소리를 내는 작은 악기를 만들었다. 제작 과정에서 나오던 소리에 문제가 생겨서 원인을 찾으려고 보드에 연결된 점퍼선을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문제는 제작 중간에 작은 보드를 큰 것으로 바꾸면서 생긴 것이었다. 새로 바꾼 브레드 보드가 불량이었나 보다. 불량보드 덕분에 실수를 찾기 위해 여러 번 제작 순서를 반복하면서 제작 과정이 암묵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만들다가 문제가 생기면 의욕을 잃기도 하는데, 역으로 새로운 집착과 흥미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문제를 진단하면서 해결하려고 하면 또 다른 경험이 생긴다. 불량 보드 덕분에 과정을 반복하면서 처음에는 어려웠던 전체적인 구조가 이해가 되었고 악기는 완성되었다.
청개구리 제작소에서 언메이크 랩(Unmake Lab)이란 것을 새롭게 쏘아 올린다. 부제가 ‘다르게 만들기 혹은 망치기 연구실’이다. 청개구리 제작소에서 좀 더 확장되어 서로 다른 층위의 사람들이 같이 모여 앙상블을 이뤄보자는 느낌이 강하다. 3년 정도 활동의 시간을 가진 후 자연스레 생겨나고 있는 또 다른 방향성이다. 재밌는 건 지인들에게 얘기해 주면 ‘다르게 만들기’ 보다는 ‘망치기’라는 표현에 다들 ‘꽂힌다.. 이루어 내고 증명해 내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시간을 살다보니 ‘망친다’는 표현에 오히려 안도감과 상쾌함을 느끼나 보다. 사실 ‘망친다’라는 말은 ‘결과를 망쳐도 된다’의 의미보다는 어떤 대상을 다루고 생각하는 새로운 방법을 익히는 것에 더 의미를 두어 보자는 말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의 결과가 망친 것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이 만들어 낸 것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는 의미이다. 이러한 취지로 다르게 만들기 연구실은 시작 되었고, 과정이나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주변 사람들의 개입과 간섭 훈수가 과정 또한 다르게 그리고 풍부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 기대한다.
사진 : 다르게 만들기 혹은 망치기 연구실 www.unmake.org
8월부터 10월까지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다르게 만들기 연구실은 7개의 트랙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기존에 진행했던 프로그램들의 맥락을 이어가는 것도 있고 새롭게 시도하는 것도 있다. 얼마 전 첫 번째 트랙의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지도뜨개와 자치>는 지역 자치(self – governance)의 한 방법으로 지도 제작(mapping)을 다룬다. 기존의 커뮤니티 매핑의 내용이나 결과와는 다르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질문중이다. 기존에 사람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는 매핑의 툴들을 우리는 어떻게 사용가능 할지? 또 다양한 매핑을 위한 새로운 도구를 연구하고 발명할 수 있을지? 오픈 세미나는 많은 관심과 참여로 마무리 되었다. 이후 계획하고 있는 워크숍은 용산 미군기지 반환과 관련해 Gate22와 협업의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비워질 땅을 두고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매핑작업의 결과가 땅에 대한 관계와 느낌이 전달되는 주관적인 매핑작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논의 과정을 보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고민과 질문 속에서 다르게 만들기는 시작되었다. 과정에서 또 고민은 더해지고 다양한 질문과 의문을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망치기’라는 주관적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레이어를 살짝 만들긴 했지만 벌써 이 과정이 우리에게 가져올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이번 <청개구리 깡총!>은 한겨레 21 <황야의 제작자>에 연재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청개구리 제작소 (www.fabcoop.org)
우리는 유령 제작소입니다. 다르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청개구리 깡총>에서는 제작과 기술을 매개로 잡다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