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스코프]’예술강사’가 행복해야 ‘문화예술교육’도 행복하다(44호)

2014년 7월 31일culturalaction

‘예술강사’가 행복해야 ‘문화예술교육’도 행복하다

이원재 /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교육은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단 한명이라도 새로운 주체를 형성할 수 있어야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이 바로 교육의 존재 이유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자해도 새로운 주체를 형성할 수 없다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그 교육정책은 실패한 셈이다. 단 한명의 삶도 변화시키지 못한 교육은, 교육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질서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낡은 권력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제도가, 행정이 문화예술교육을 받아들인지 10년이 다가오면서,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토론들이 진행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하여 정부와 행정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비약적인 성장과 성과를 강조하는 반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는 “단 한명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관성화된 문화예술교육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판단 기준도 흥미롭다. 정부는 문화예술교육의 성과로 투입된 예산과 창출된 일자리를 “침이 튈” 정도로 강조하고,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구성원들은 무엇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목이 쉴” 정도로 토로한다. 그리고 “목이 쉴” 정도로 토로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문제에서 늘 빠지지 않는 주제가 바로 “예술강사”를 둘러 싼 현실이다. 

“예술강사들은 과연 행복한가?”

지난 7월 1일 아침,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예술강사들의 좌담회”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이는 “교육을 하는 예술강사 스스로도 행복하지 못한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조 섞인 질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예술강사들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 예술강사 스스로가 원해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강의시간을 확보했는데 왜 행복하지 못한가.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교육제도 안에서 예술과 교육에 대한 열정, 창의성을 이야기할 정도로 안락한 예술강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예술강사들에게 학교안 문화예술교육은 경제적, 사회적 생존을 둘러 싼 냉혹한 현실일 뿐이다. 교실 안에서 교육자와 피교육자로 분류되어 있을 뿐 예술강사들의 삶은 저 치열한 입시지옥과 성공경쟁에서 버티고 있는 학생들의 삶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초단시간 근로자”,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 “사회보장의 사각지대”, “시수배정의 불확실성” 등 예술강사는 “예술”이전에, “교육”이전에, “생존”하기에 급급하다. 

예술강사의 문제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둘러 싼 철학 및 방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언제인가부터 예술강사들이 입을 열면 “또 처우개선 이야기를 하는구나”라는 차가운 시선들이 많다. 하지만 예술강사들 역시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에 대한 고민, 특히 예술강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날 좌담회에서도 예술강사들은 “문화예술교육의 기본 방향 자체가 혁신돼야 한다”는 주장에 한 목소리를 냈다. 예술의 제도화보다는 현장 예술과의 연계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예술교육 자체에 대한 연구와 예술교육의 철학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예술강사들의 생각이었다. 

심지어 예술강사들의 현주소에 대한 자기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도 감추지 않았다. “예술강사들 스스로 제도적 시스템에 마비된 부분이 있다”, “예술가로 살지 않는 예술강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술강사 조직들 스스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국가 주도의 문화예술교육 정책과 제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등의 날선 성찰과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런 원칙과 방향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예술강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와 행정은 문화예술교육이 창출한 일자리 “숫자”는 강조하지만,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배제한, 버림받은 예술강사들의 실업 “숫자”는 언급하지 않는다. 예술강사의 전체 숫자는 각자 자신들의 성과로 강조하지만 예술강사에 대한 사용자성에 대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도, 교육청도, 지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도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예술강사들의 노동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소통과 대화조차 냉혹하게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처참한 것은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노동권 문제가 결코 예술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지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예술강사, 현장 문화예술단체 등 모든 생태계가 높은 노동강도, 낮은 임금, 불안정노동 등의 악순환 구조에 빠져있다.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는 있다.”

이른 아침 예술강사 좌담회에 참가한 누군가가 말했다. 문화예술교육이 기존 입시교육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달라야 한다면, 바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상상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 권리를 입시 이후로 유예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삶의 감각으로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삶과 예술의 권리가 예술강사들에게도 필요하다. 예술강사가 행복한 사회에서 학생들도, 학부모도, 학교도, 문화예술교육도 행복할 수 있다. 

사진출처 : 문화예술교육진흥원

* <인천문화예술교육통신>(vol.31, 인천문화재단)에 게재되었던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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