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임의 미디어읽기]양떼들의 노래 속에서 ‘진실’ 찾기 (44호)
양떼들의 노래 속에서 ‘진실’ 찾기
–세월호 참사 보도를 중심으로
이종임 (문화연대 미디어 센터 운영위원)
휴가시즌인 요즈음 산이나 바다로 혹은 해외의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삶을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이러한 필자의 계획은 매일 방송되는 저녁 뉴스를 보면서 ‘무엇이 지금 내게 휴가인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 관련 기사들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매주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기억하겠다는 시민들의 다짐도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민들의 뜻이 모여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 문제를 기억하고 잊지말자는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도 지난 7월 24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작가회의, 세월호를 잊지 않는 음악인들, 그리고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했던 행사였다. 이 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많은 추모 행사가 열렸다. 이와 같이 많은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희생자 가족들과 뜻을 함께 하는 이유는 이 사건이 한국사회의 곪아터진 상처, 그리고 이를 치료하기를 거부하는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16일부터 지금까지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를 통해 사건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실시간으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참혹한 현장뿐만 아니라 정치인, 관료, 그 외의 관련 단체의 비리가 유발한 사건을 확인 한 후 겪었던 국가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은 바닥을 쳤다. 사건 발생 이유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책마련 역시 지지부진하자 우리 모두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가족과 살아남은 단원고 고등학생들, 그리고 시민들은 한목소리를 내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왜 기억해야 하는지를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아직 추스르지도 못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는 한국의 현실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세월호 참사로 ‘상처입은 사람들’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객관적으로 사건 보도를 해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언론사가 부재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발생 후 국민들이 놀랐던 것은 언론사의 사건보도 방식이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생존자, 구조된 인명, 사망자 등의 숫자가 계속 변경되는 등 무엇 하나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정부도 해양경찰도 그 누구도 구조된 인원을 정확하게 아는 기관이 없었다. 사건 발생 초기 언론사들은 현장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발로 뛰는 취재대신 정부정보에만 기댔고 그대로 보도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팽목항에서는 희생자 가족들이 수색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언론사 기자들에게, 해양경찰에게 적극적 구조를 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하지만 이러한 요청이 있었다는 것, 수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등 관련 정보들은 사건 발생 한참 후에나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이후 세월호와 관련된 비리, 사건 발생 당시 해양경찰의 구조 방법, 정부관련 인사들이 팽목항을 방문해서 했던 부적절한 행동 등으로 인해 국민들은 ‘한국이라는 배’가 침몰 직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디어의 프로파간다적인 역할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도 목격하였다. 이후 뉴스타파, 국민TV, 아프리카 TV등 주류 이외의 미디어에서 세월호 사건을 취재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은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에서도 여전히 뉴스를 보도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JTBC가 정확한 사실 보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도방식이 타 방송사와 달랐기 때문이다. 손석희 앵커는 사건이 발생하자 팽목항에서 직접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JTBC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민간잠수사, 실종자 가족, 현지 목격자 등 세월호 참사 관련 제보가 빗발쳤다. 지금도 여전히 뉴스보도를 위해 팽목항을 지키며, 까맣게 그을린 기자들의 얼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 문제를 짐작케 한다.
현재 이러한 우리사회의 상황은 1945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농장>의 주인공인 동물들이 인간과 대립하고 농장을 지키기 위해 보여주는 행동은 현재의 정치인, 미디어, 대중의 모습과 유사하다. 우리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디어가 어떤 정보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게 되는지, 어떠한 담론이 형성되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농장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 중 글을 읽지 못하는 동물들(대중들)은 양떼(언론)가 전달해주는 정보만을 믿는다. 또한 지도자의 이기적 판단으로 농장을 유지하기 위해 정했던 원칙은 계속 변한다. 이렇게 변화하는 원칙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양떼(언론)다. <동물농장>의 양떼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지도자(나폴레옹)의 발표를 알리기 위해 계속 노래를 부르는데 내용은 상황에 맞춰 바뀐다. 양떼들의 노래 소리는 너무 커서 다른 동물들은 원래 정해져있던 원칙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초기에 정해진 원칙이 변경되었는지, 지도자의 연설 내용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기도 쉽지 않다. <농장>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이유는 대중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복서’가 있기 때문이다. ‘복서’는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더 열심히 내게 주어진 일을 해야지’라고 다짐한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하던 복서는 결국 병들게 된다. 지도자는 다른 동물들에게 복서를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간다’고 말하지만 ‘복서’에게 했던 지도자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복서’는 인간에게 팔렸고, 결국 몸값으로 지불된 술박스로 농장으로 되돌아온다. 지도자들은 인간처럼 ‘술’을 마시며, 자신들만의 파티를 연다. ‘복서’의 억울한 죽음을 아는 다른 몇몇 동물들이 있지만, 그들은 ‘복서’의 억울함을 알리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많은 언론사가 있고, 사건 관련 정보를 생산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미디어가 생산하는 정보를 쉽게 믿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언론사를 무한 신뢰하는 국민들도 존재한다). 현재 사실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뉴스채널이 JTBC라는 것도 한국사회 언론 상황이 밝지 않음을 상징한다. 공영방송사의 ‘공정한 보도’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KBS의 전(前) 사장인 길환영 사장의 사퇴과정과 현재 새로운 KBS 사장 선임 과정에서 ‘실망’으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망만 하고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는 언론사를 지지해야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길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가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슬퍼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