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석의 가르치다-배우다]‘지금시간’으로서의 세월호(43호)

2014년 7월 16일culturalaction

‘지금시간’으로서의 세월호

강정석(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

벌써 3개월째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은, 어느덧 3개월이라는 허망한 시간을 현재 우리의 뒤편에 쌓아두었다. 많은 것이 변할 줄 알았지만,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단 한사람도 살리지 못한 무능한 국가체계는 밀양 송전탑의 농성장을 너무나도 체계적으로 파괴하면서 유능함을 다시금 입증했다. 국가는 죽어가는 ‘국민’ 앞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게 무기력했지만, ‘국민’을 배제하고 몰아내버리는 폭력적 행동에 있어서는 굉장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총책임을 지고 사퇴한 무능력한 국무총리는, 마치 공포영화의 일그러진 좀비처럼 끔찍하게 부활하면서 ‘국가대개조’의 총책임자의 역할을 다시금 맡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이후 침몰해버린 대한민국을 다시금 건져 올려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진 김명수 한국교원대 교수를 비롯한 몇몇 장관 지명자들은 ‘관행’과 ‘기억이 안 난다’는 억지와 허무하고 씁쓸한 ‘개그’로 일관하며 위장전입·음주·논문표절 등 지난 악취들을 은폐하는데 집중했다. 역사의 시간은 통제 불가능하게 지나갔지만, 우리가 느끼는 가슴 아픈 시간은 여전히 3개월 전의 죽음과도 같은 아수라장에 정박해 있는 느낌이다. 바우만이 말했던 ‘악의 사회성’이 여전히 유령처럼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악의 사회성’은 국가의 영역을 넘어 시민사회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세월호에 대한 ‘역사수정론’적인 접근이 활개를 치게 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벌이는 다양한 활동들을 단지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한 이기적이고 치졸한 행동으로 폄하하는 인식들이 확산되었다. 이들은 입에도 담기 어려운 끔찍한 언어들을 쏟아내면서 세월호 참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평범한’ 사건으로 박제하려고 한다. 이에 발맞춰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는 말꼬리 잡기로 일관하며 파행으로 치달아 버렸으며, 자연스럽게 국회의원들의 대의민주주의 정치는 스스로의 기능을 정지시켜 버렸다. 세월호에서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을 멀찍이서 바라만 보았던 국가는, 단지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랄 뿐, 그 후속 처리에도 여전히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적폐의 대상들이 스스로 ‘국가대개조’를 외치고 있는 아이러니는 우리들을 더욱 커다란 절망감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들이 이러한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회의사당 노숙농성,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였으며, 살아남은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학부모·교사와 함께 불현듯 안산에서 국회의사당까지 1박 2일의 도보 행진을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의 이러한 직접적인 행동은 잊혀져가는 세월호 사건을 지속적으로 현재화하려는 치열한 실천일지도 모르겠다. 즉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사건이 속절없이 잊혀지고 사그라지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그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한낱 과거의 지나간 사건으로 가벼이 기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은 자신의 마지막 보루인 스스로의 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역사는 구성의 대상이며, 이때 구성의 장소는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Jetzizeit)으로 충만된 시간이다.” 1) 라는 유명한 테제를 제시한 바 있다. 현재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은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에 세월호가 정박되는 것에 몸으로 저항하며, 끊임없이 그 가슴 아픈 사건을 ‘지금시간으로 충만된 시간’에 복귀시키기 위한 몸부림을 우리들 앞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벤야민이 언급했던, 염주 하나하나 세어가듯 흘러가버리는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을 과감히 폭파하고 지나간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화시키는 ‘역사적 유물론자’를 부지불식간에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유가족들과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깊은 절망감에서 빠져나와 어떤 실천의 필요성을 다시금 환기시켜주고 있다. 즉 세월호 참사를 지속적으로 ‘현재화’시키는 실천 말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3개월 전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쉽사리 과거화되고 왜곡되며 잊혀지는 것에 치열하게 저항하면서 이 사건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단일한 ‘지금시간’으로 파악해야 한다. 실체적인 진상이 투명하게 밝혀질 때까지, 아직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나오지 못한 실종자의 최후의 시신을 건져 올릴 때까지, 그리고 세월호를 통해 총체적 무능력함이 드러난 국가 체계를 변화시킬 때까지, 우리는 세월호를 위한 지금-현재의 시공간을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실천만이 어쩌면 유일하게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생존자들을 위한 애도의 행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천만인 서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서명 참여자가 아직 330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사건이 이제 과거의 저편으로 정박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 지표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서명에 참여하는 것은 작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선집 5』, 도서출판 길, 2009,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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