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청춘예찬>을 기억하며(43호)

2014년 7월 16일culturalaction

<청춘예찬>을 기억하며

장지연 / 예술인소셜유니온(준) 운영위원

지난 11일, <공연예술인 노동환경 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배재정 국회의원과 문화연대, 예술인소셜유니온(준)이 공동주최한 이 토론회에서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이 거의 없었던 공연예술인의 노동실태와 공연법 상 공연예술인의 지위 문제, 계약관행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반 동아리를 통해 연극을 처음 접했다. 모여서 대본을 쓰고 읽고 공연하는 게 마냥 재밌어서 시작한 연극이 모스크바 국립극단의 작은 공연을 본 이후로는 나의 미래가 되었고, 그렇게 연극학과에 진학했다. 연극계의 차가운 현실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1999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해는 <청춘예찬>(박근형 작‧연출)의 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연극계 내외에서 <청춘예찬>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지금은 무대보다는 스크린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영화배우 박해일씨도 그 연극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언제나 유행에 조금 뒤처지는 나는, 그 때도 찬사와 소문이 대학로를 마구 뒤흔들 때쯤 혜화동 1번지로 가 <청춘예찬>의 객석에 앉았다. 연극은 귀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배우 박해일은 무대에서 빛이 났다. (나는 ‘자체발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연극이 클라이맥스를 향해갈 즈음이었다. 객석과 무대가 너무 가까워 배우와 자꾸 눈이 마주 치는 바람에 민망해서 시선을 아래로 피하는데, 무대 가운데로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가 지나갔다. 빛나는 연극 무대를 가로지르는 바퀴벌레라니. 그것도 공연 도중에. 이후로 나는 공연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꼭 내가 처하게 될 현실 같았다.
지금은 지구 어느 곳에나 바퀴벌레가 산다는 사실을 안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바퀴벌레일 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접할 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땐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 일이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국회토론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15년 전 <청춘예찬>이 떠오르며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서울변방연극제 임인자 예술감독과 서울연극협회 박장렬 회장의 말이 오버랩 됐다.
“공연을 같이 하는 작가들은 낮에 회의하자고 하면 화를 냅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 하고 저녁엔 공연하니까. 항상 회의는 공연이 끝난 밤늦게 시작됩니다.” (임인자)
“돈이 없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정신적인 궁핍입니다.” (박장렬)
전자는 공연예술인이 처한 경제적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냈고, 후자는 이들이 처한 문제가 경제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인 지점까지 확장되고 있는 현실을 토로했다.
15년 전 만났던 <청춘예찬> 무대는 가난했지만 빛났다. 하지만 지금의 연극은 여전히 가난한 가운데 정신적인 빛마저 바래가고 있었다. 예술의 빛은 작품 안에서, 그리고 예술인의 긍지 속에서 나온다. 반딧불이가 스스로 빛을 내듯 예술인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으면 예술은 삶을 밝힐 수 없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속에서 빛나던 열정과 긍지를 꺼뜨리고 있을까, 만감이 교차했다.
현재 공연예술계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토론회에서 재기됐던 불합리한 계약 관행에서부터 작업의 불연속성에서 비롯되는 주기적인 실업 상태, ‘국립’이라는 블록버스터에 밀려 자존감을 잃어가는 ‘민간’ 독립공연들에 이르기까지. 문제는 많고 마음은 급하다.
공연예술인의 삶 앞에 산적인 문제들 중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할까. 일단 토론회를 공동주취한 배재정 국회의원과 문화연대, 예술인소셜유니온(준)은 선결해야 할 문제를 몇 가지로 축약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연법 개정이다. 현행 공연법 상 공연예술인은 ‘실연자’로만 한정되어 있다. 공연 환경이 변하면서 새롭게 나타난 많은 ‘스태프’ 직능군들은 공연법만 놓고 보면 공연예술인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제도 개선을 한다고 하더라도 공연예술 스태프 직능군은 법적 기반이 없어 혜택을 받기 어렵다. 일단 실연자 뿐만 아니라 스태프까지 포괄할 수 있는 법적 기틀을 만들고 주기적인 실업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공연예술인들을 위한 훈련인센티브제 도입, 직능군별 표준계약서 개발 및 강제를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립’ 공연과 각종 정부‧지자체 공연예술 지원 예산을 분석해 예산 내 공연예술인의 임금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촉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공연예술인 직능군별 표준 노임 단가를 제정‧공시하는 활동도 함께 해나가기로 했다.
물론 이것이 공연예술계 노동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만도 몇 년은 걸릴 테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바퀴벌레처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레 겁먹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 칼 포퍼가 얘기하지 않았나.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라고. 중요한 건 어떠한 문제와 마주하더라도 해결하겠다는 자발적인 의지와 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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