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참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 3.11 이후 재난에 대응하는 일본 공연예술계 다시보기(42호)

2014년 7월 3일culturalaction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8일이 지났습니다. <문화빵> 42호 특집은 세월호 참사와 한국의 재난자본주의, 그리고 재난에 대응하는 예술행동의 사례를 돌아보는 꼭지로 구성되었습니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점(노동유연화, 민영화, 규제완화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계속되는 지금, ‘기억, 행동, 연대’의 관점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위해 함께 읽어보길 권합니다.
1. 재난, 상징화 그리고 애도의 규격화 – 김종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 한국적 재난자본주의의 세 가지 특이성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3. 참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 3.11 이후 재난에 대응하는 일본 공연예술계 다시보기 – 정진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3.11 이후 재난에 대응하는 일본 공연예술계 다시보기 

정진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

다시 마주한 재난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건이 있기 3년 전, 일본에서는 쓰나미로 인한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피폭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3.11 사태’ 라고 명명되는 대형 재난이었다. 이 사고로 인해 만 오천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 천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각성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본의 위기를 우리의 것으로 인식하자는 취지였었다. 당시 다양한 장르의 예술계에서 이를 특집으로 하는 기획들이 많이 마련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러한 움직임은 어쩌면 말뿐인 ‘담론’ 으로, ‘담론’ 적 유행으로, ‘유행’ 적 현상으로만 그쳤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웃나라가 아니라 당사자의 상황으로 재난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3.11 대지진 이후 일본 공연예술계의 대응 사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편의상, 재난에 대처하는 예술과 수습하는 예술, 그리고 기억하는 예술로 구분하였다. 소개하고자 하는 자료는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이미 알려졌기에, 이를 재정리하는 과정이 허무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터진 후 지금까지도 ‘복구’ 중인 일본의 예술계를 통해, 재난의 공동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본 지면을 통해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재난에 대처하는 예술 

3.11 이후 일본의 공연예술가들은 총체적 위기의식을 공유하며 피해에 즉각 대처해 나갔다. 일본의 대표적인 대중극단 시키는 참사가 벌어지고 한 달도 안돼 현장으로 자선공연을 떠났다. 해일 피해를 입은 도호쿠 응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초대 순회공연 형식으로 뮤지컬 <유타와 신기한 친구들>을 선보인 것이다. 총 13개의 도시를 돌며, 학교 체육관을 극장으로 활용, 그 지역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공연하였다. 연극학자 이홍이(오차노미즈 여자대학 문학박사)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극단 시키 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자원봉사” 라고 밝히며,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으로서, 위로와 오락의 연극” 인 엔터테인먼트 장르가 그 나름대로 가치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하였다.
극작가 나카츠루 아키히토는 3.11 직후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배수의 고도> 라는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해 9월에 공연된 이 작품은, 발생한 사건을 곧바로 무대화한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술의 사회반영적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요미우리 연극대상 선고위원 특별상, 우수 연출가상 등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현재 한국에서 상연 중(두산아트센터, 김재엽 연출)이다. 미야기에서 지인과 동료를 잃은 젊은 연극연출가 이시카와 유진(OCT/PASS)은 트럭한대로 피해지역을 도는 캐러밴(caraven) 활동을 감행했다. 그는 일본의 동화작가이자 시인인 미야자와 겐지(1896-1933)의 작품 가운데 진혼(鎭魂)의 의미를 담은 내용을 따서 이를 무대화 하는 방식으로, 재난지역에서 트럭연극을 선보였다.
후쿠시마현 이와키 종합고등학교 연극반 학생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무대화 하여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도쿄의 젊은 연출가들의 워크숍에서 영향을 받아 연극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연을 만든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들의 연극 <Final Fantasy for XI.III.MMXI> 는 친구를 잃은 세 명의 남학생이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된 학교 건물로 진입하고 그 안에서 도쿄전력 사장, 원전추진을 일삼는 프랑스 대통령 등의 몬스터와 마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극학자 이성곤(오사카대학 문학박사)은 이 작품에 대해 날카로운 사회풍자보다는, 지진으로 없어진 것들을 필사적으로 만회하려는 고등학생들의 ‘복원’ 노력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고 밝혔다.
재난 직후 도쿄 치요다구에 있는 예술가 레지던시 창작센터 3331는 입주작가를 중심으로 ‘긴급 오픈미팅 –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 을 개최했다. 갑작스러운 공지였지만 약 60명의 예술가가 참여하여, ‘3331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 결과 3331의 공간을 예술가와 디자이너 등 창작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하고 재해 부흥지원을 위해 이용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결성된 ‘동일본대지진부흥지원 arts action 3331′ 은 재해 지역의 주민들을 위한 기금 모금 등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퍼포먼스와 전시활도을 하는 프로젝트로 발전하였다.
재난에 맞서 즉각적인 반성과 함께 예술 활동을 그대로 사례도 있다. 2011년 2월 10일부터 3월 31일까지 도쿄예술극장에서 중극장에서 신작 <남쪽으로>를 공연 중이던 연출가 노다 히데키는 대지진 발생 직후인 3월 11일부터 3월 14일까지 4일간 공연을 취소했다. 이는 재난을 입은 이들을 배려한 것이었다. 한편, 이 뿐만 아니라 도쿄의 많은 연극들이 공연을 취소하였는데, 실상 ‘자숙’ 이라는 이유와 함께 여진으로 인한 도시의 대중교통의 마비와 불안전한 전력공급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다 히데키는 3월 15일부터는 공연을 재개했다. 대규모 공연으로는 가장 빠른 공연 재개였다. 그에 있어서 노다 히데키는 관객들에게 직접 무대 인사를 전했고, 재개를 알리는 공지 전문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는 예술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야 말로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시대였다고 전하면서, 일상의 삶을 멈춰서는 안되는 것처럼, 극장의 불도 끌 수 없다는 심정으로 공연을 결단했다고 말했다. 공연 수입의 일부는 일본 적십자사를 통해 재난지역으로 보내졌고, 극장 로비에는 모금함이 마련되어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재난을 수습하는 예술 
3.11 이후 한해를 결산하는 일본 연극계는 “연극이란 어떠한 표현인가?” “연극은 무엇인가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던지게 되었다. 즉, “살아있는 신체를 사용하고, 관객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존재 앞에서 이루어지는, 이 표현행위는 이러한 비상 사태에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고민과 마주한 것이다. 일본연극학회는 추계대회 주제를 ‘대지진과 연극’ 으로 하여, 연극계의 상황을 비평적으로 정리하고 과거 경험을 되짚어 보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 등으로, 19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관서지방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엮어 출간한 『한신대지진은 연극을 변화시킬까』 라는 책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국제연극평론가협회 일본지부에서 출간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지진 재해 앞에서 연극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또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있다. 2부는 참사와 관련된 연극의 평론이었고, 3부는 극단과 극장의 피해사례 등 각종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다.
이처럼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조사’ 와 ‘분석’ 그리고 ‘기록’ 의 작업들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문화청은 일본 건축학회와 연계하여, 피해를 입은 ‘문화재’ 에 대한 상황조사를 실시하였다. 동시에 응급 처치 및 복구를 위한 기술적 지원 등을 행하고, 귀중한 문화재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문화재 건조물 복구지원사업(문화재 닥터 파견사업, 기간 2011.4 – 2012. 3)을 실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조사과정에서 공동체의 정신적인 유대가 되는 ‘민속예능’ 의 가치를 재발견해 냈다는 점이다. 공동조사팀은 특정 지역(산리쿠 연안)에는 국보급이나 중요 유형문화재 건조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심층 분석함으로써 ‘무형문화재’ 의 존재를 환기하게 되었다. 거칠고 큰 동작을 가진 동북지역의 마쓰리의 특성에 주목게 되면서 이것이 자연 환경의 혹독함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요컨대, 마쓰리는 바로 전통적으로 쓰나미에 대응하는 예술의 한 형태였던 셈이다.
일본의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는 한국 연극계에 보내온 편지를 통해, 재난 이후 연극이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통의 모습을 점검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과거에는 ‘예능’ 이 담당하고 있던 것임을 전하면서, 어느 공동체에서나 전통이 계승되어 온 데에는 그것에 참여하는 커뮤니티 형성에 필요한 요소였음을 살폈다. 요는, 대재앙이 닥쳐왔을 때 커뮤니티가 붕괴되지 않고 공고하게 잡아준 것은 바로 전통예능의 힘이었으며, 이를 통해 마을 커뮤니티는 복원에 대한 노력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지금, 여기의 ‘예술’ 이 재난을 당한 현실에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일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재난을 기억하는 예술 

3.11 이후 일본 예술가들의 화두는 필연적으로 ‘재난’ 이 되었다. ‘3.11을 잊지말자’ 는 의미와 취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 축제에서 이러한 색채가 강하게 드러났는데, 후쿠시마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후쿠시마 프로젝트’ 와 일본의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도쿄가 그러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다원예술축제인 페스티벌 도쿄는 향후 몇 년간 ‘재난’ 이 ‘내세우지 않아도’ 이미 ‘재난’ 이라는 화두가 내재되어버린 상황으로 여겨진다. 축제를 소개한 서현석 교수의 말을 빌자면, ‘진행형의 악몽’ 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는 작품들이 축제의 전면을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의 스펙트럼을 가장 크게 넓힌 프로젝트는 타카야마 아키라의 <의견 조사>다. 기본 취지는 일본의 현 상황에 대한 청소년들의 의견을 묻는 인터뷰 영상을 제작, 사서화하는 것으로, 아카이브의 기능을 하는 장소는 트럭이다. 도쿄 전역을 이동하는 트럭 안에는 장차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만약 시장이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등 소박한 질문들에 대한 수십 명 청소년들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다. 단순한 질문들은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의 단면을 보여 준다. 관객이 입장하여 정리된 인터뷰 영상을 열람할 수 있는 이 트럭의 예정된 최종 전시 장소는 후쿠시마다. (중략) 미야자와 아키오의 <토탈 리빙>은 모두가 일본을 떠나 이민자가 다수를 형성하게 된 미래의 새로운 국가상을 그리며 재현 체계의 실타래를 풀어헤치기 시작한다. 오카자키 극단의 <반구형의 적과 흑>은 일본과 체르노빌을 비교하며 두서도 없고 결론도 없는 이야기의 파편들 속에서 ‘혜안’의 실마리를 찾아 쳇바퀴를 돈다. 버드파크 극단의 <침수 지역의 끊임없는 온기>는 현실적이지도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가상적 세계 속에서 한 작은 공동체가 죽음의 징조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차갑게 묘사한다. 암울하다. (중략) 피첨 극단의 <부활>은 아날로그 방송의 종료에 따라 전파 송신의 기능과 함께 전후 재건의 상징성을 잃게 된 도쿄타워 앞 공원에서 후쿠시마의 치명적 상흔을 곱씹는다. 과거형의 영예는 현재의 어두움에 대한 대립적 역설이 된다. 장소특정적 연극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복원을 위한 국가적, 조직적 노력에는 제국주의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공연예술의 최전선, 재난의 카오스를 재현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도쿄”, 서현석-연세대 교수)
이처럼 재난이후의 예술은 ‘위기’ 를 강조하면서 일본사회에 경고를 전하는 한편, 묵시록이나 SF 장르의 형태로 지구 종말에 대한 예언까지 수행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것은 ‘국가란 무엇인가’ 혹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져, 일본이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 에 대한 좌표를 점검케 한다.
페스티벌 도쿄가 반성적인 차원에서 비롯된다면, 후쿠시마 프로젝트는 치유와 복원에 초점을 맞춘다. 후쿠시마 출신 실험음악가 오토모 요시히데가 주도하여 시작된 축제적 형식의 프로젝트는 2011년 원전 폭발사고가 났던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정부도 언론도 후쿠시마의 자세한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상황에서, 몇몇 음악인들이 후쿠시마의 상황을 제대로 주시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보자는 ‘실천’ 적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다.
축제의 감독격인 오토모는 사람들의 방사능에 대한 염려와 바닥에 잔재해 있는 세슘의 존재를 고려하여, 바닥을 천으로 덮기로 결정하였다. 도시락을 싸는 보자기인 ‘후로시키’ 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인터넷에 올린 이후 일본 각지에서 보자기들이 도착했다. 3주에 걸쳐서 모두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행군을 한 결과, 전부 합쳐서 6천 평방미터 정도의 크기가 되었고, 축제의 시작날인 8월 15일 이전에 그 공간을 다 덮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로 엮어진 거대한 보자기 위에서 첫 번째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이 페스티벌은 음악가와 아마추어, 주민이 모두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선보인 3.11 이후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한국에서는 ‘페스티벌 봄’에서 종종 소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극단 첼피쉬의 연출가 오카다 토시키를 들 수 있겠다. 여자들만 살아남은 마을의 이야기를 다룬 <현위치>(2012)와 파괴된 일본의 가족사를 다룬 <지면과 바닥>(2013)은 일본의 재난 징후와 그 여파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달라진 일본의 모습이 새로운 연극성과 함께 결부되어, 왜곡된 신체, 이질적인 언어감각, 부조리한 표현 등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그룹 침↑폼(Chim↑Pom) 또한 2012년 페스티벌 봄에서 소개된 아티스트 그룹이다. 이들의 투채널 영상 작업 <기합 100연발>(2011)은 3.11 이후 후쿠시마현 소마시의 청소년들과 함께한 작품이다. 폐허가 된 마을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둥글게 둘러서 100번의 ‘기합’ 을  반복해서 외치게 된다. 단순하고 거친 구성이지만, 고통을 웃음으로 극복해 나가려는 젊은이들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헤프닝이나 일상 퍼포먼스 작업과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면서 재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예술행동’ 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정리하며 

재난이후, 예술가들은 그들에게 처해진 두 가지의 재앙과 맞서야만 했다. 하나는 참사 그 자체이고, 또 하나는 참사로 위축된 예술계가 그러하다. 전자는 시민으로써 정치제도를 통해, 그리고 후자는 예술제도 안에서 풀어나가면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상 대재앙 앞에서는 이러한 분리가 무의미하거나, 시민 혹은 예술가로서 각각 요청되는 바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3.11 사태 이후, 현장의 복구와 변화를 담당한 일본의 예술가들은 특정한 집단주도나 예술계의 움직임에 기대지 않는 자발적 주체들이 상당수였다. 개별적인 예술가들, 예술가들끼리의 작은 연대들, 지역사회와 연결된 예술단체들, 예술교육자와 예술치료자들, 그리고 예술적 시민들 등 평범하고 소박한 주체들로부터 긴급 지원과 복원 운동이 시작되었던 셈이다.
이들은 재난과 똑바로 마주하면서, 자신의 예술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발견하였고 이를 공유하는 노력을 지속해 나갔다. 이들은 현대 일본을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일본을 방치한 국민으로서, 희생자들을 돕는 이웃으로서 자신의 현위치를 끊임없이 점검했고, 실천으로 옮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일련의 사례를 소개한 것은 이를 영웅화하거나 혹은 모델로 하여 모방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단순 복구작업이 아니라 창조적인 복원작업으로 이어지게 노력하는 태도와 기존의 예술을 재발견하고, 다시 의미를 구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본 예술계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재난 ‘이후’ 에 대해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분명, 그 전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고자 함일테니. 그런 점에서 일본의 예술가에게 ‘3.11 사태’ 가 여전히 진행중 이듯,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 또한 여전히 진행중일 것이다.

(본 원고는 지난 5월 29일 독립예술창작포럼 주최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좌담회(주제 : “매뉴얼이 아닌 문화를 향하여-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한 예술계의 입장과 행동”)에서 발제한 발표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참고자료 

『피해지역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서기 (임상심리학의 시점, 와세다 리포트 6)』, 혼다 게이코, 고려대학교출판부, 2013년.  

『재해에 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과학자의 역할과 대학의 사명, 와세다 리포트 12)』, 가마타 가오루, 우라노 마사키 외 3명 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3년. 

『문화유산의 보전과 부흥철학 (자연과의 창조적 관계 재생, 와세다 리포트 5)』 나카가와 다케시, 나카가와 연구실 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3년. 

『연극평론』 2012년 여름호, 특집 : 3.11 동일본대지진과 연극, 니시도 고진(연극평론가) / 3.11 이후 일본연극, 3.11 직후의 연극선언문 “극장의 불을 꺼서는 안된다” 노다 히데키(연극 연출가) / 3.11 동일본대지진과 연극 – 그 후 1년, 이성곤(연극학자) / 3.11 이후 일본연극, 되풀이 되는 질문, “연극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홍이 (연극학자)

『반연간지 연극』, 1호 2011년 가을, ‘지구 재앙 시대 연극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히라타 오리자 (극작가) 

『격월간지 플랫폼』 32, 2012년 3-4월호, 특집 : 동일본대지진 1년을 돌아보다, 진정한 삶의 부흥을 꿈꾼다 :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사회의 모습, 김숙자 / 대지진 1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하승수

웹진 제너럴매거진 2011년 9월호 Issue 3, ‘미술은 재난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조선령 (큐레이터)

웹진 예술경영 2012년 9월,  ‘페스티벌 후쿠시마!’: 기술 실패 시대의 예술가, 공동체, 그리고 치유, 홍철기(실험음악가) 

웹진 아트 인 컬쳐 2014년, 공연예술의 최전선, 재난의 카오스를 재현하다-일본의 대표적인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도쿄, 서현석

홈페이지 후쿠시마 프로젝트_http://www.pj-fukushima.jp/en/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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