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예술행동네트워크의 ‘행동하는 기억, 4·16’에 참여하다(42호)

2014년 7월 3일culturalaction

예술행동네트워크의 ‘행동하는 기억, 4·16’에 참여하다 

정원옥/문화연대 집행위원

6월 21일 토요일, 세월호 참사 66일째였던 날. 페이스북을 통해 예술행동네트워크의 ‘행동하는 기억 4·16’이라는 행사가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예술행동네트워크도 생소하고, 세월호 참사를 ‘행동’으로 ‘기억’하겠다는 퍼포먼스도 궁금했다. 시민들과 함께 노란 배를 만들 것이고, 4시 16분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는 정도의 정보만 알려졌다. 6.4 지방선거 이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황이어서 예술행동네트워크의 어떤 ‘행동’은 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무대 중심의 촛불집회 형식에서 탈피해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다양한 목소리들과 표현들이 절실해진 시점이기도 했다.
서울광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반쯤이었다. 광장 한 귀퉁이에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노란 종이배 접기에 한창이었다. 낯익은 문화연대 활동가들 외에는 주로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가족 단위 시민들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 틈에 끼어 나도 종이배를 접기 시작했다. 사춘기 시절, 종이학을 접는 것이 여학생들 사이에 유행이었다. 천 마리까지는 아니어도 나도 백 마리쯤은 접어보지 않았을까. 고난이도의 학도 접을 줄 아는데, 배쯤이야. 만만히 여기고 종이를 접기 시작했는데, 배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의외로 순탄하지 않았다. 색종이보다 몇 배나 큰 사이즈의 종이에 미끌미끌한 광택까지 있어서 생각만큼 예쁘게 착착 접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이 배는 물에 띄워 갖고 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머리에 쓰기 위한 용도다. 머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배 아랫부분을 벌리고, 양 쪽으로 끈을 매달아 머리에 썼을 때 ‘행동하는 기억, 4·16’이라는 글자가 배 옆면에 나타나야 배 모자 만들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폭염의 광장에서 배 모자를 만드느라 진땀을 흘리는 사람은 나만은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어떤 아빠의 투박한 손도, 다섯 살배기 꼬마의 고사리 손도, 우연히 광장을 지나치다 참여하게 된 외국인의 손도 배 모자를 완성하기 위해 씨름하고 있었다. 야구장이나 유원지에서 햇볕을 가리기 위한 용도였다면 배 모자를 만드는 데 모두 그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 한 자락을 끌어올리듯이 배 접기에 몰두한 모습은 분명 놀이에 가까웠지만, 꾹꾹 종이를 접고 펼치는 손가락마다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슬픔들이 배어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꾹꾹 접어 완성한 종이배를 제각각 머리에 썼을 때, 어린이들은 어린이들이라 역시 귀엽고 앙증맞았다. 하지만 다 큰 성인들은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다 큰 어른들이 배 모양의 노란 모자를 유치원생들처럼 졸라맨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망연한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4시 16분에는 예술행동네트워크의 ‘기억’하는 ‘행동’, 퍼포먼스가 있었다. 416초 동안 세월호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각자의 마음을 정지된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 행동의 전부였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몸짓을, 어떤 이는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상상하며 팔과 팔을 거는 몸짓을, 어떤 이는 기가 막힌 마음을 하늘을 향해 드러눕는 몸짓으로 표현했다. 이런 식의 퍼포먼스가 낯선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쪼그려 앉는, 불편하지만 최대한 편안한 동작을 취했다. 정지동작으로 있기에 416초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그것은 카메라와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응시의 대상이 되는 시간이었으며,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된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아직 세월호에 대해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자들을 애도할 수도 없고, 희생자들을 애도할 수 없기에 기억해야 할 내용 또한 갖지 못한다. 따라서 ‘기억’하는 ‘행동’이란 아직까지는 텅 빈 공백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깊은 생각과 성찰을 할 것을 스스로에게 요청하는 시간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
예술행동네트워크의 ‘기억하는 ‘행동 4·16’은 서울광장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를 마치고 보니, 노란 배 접기와 416초 동안의 퍼포먼스는 별 것도 아닌 ‘행동’인 것 같다. 어렵지도 않고 크게 주목받을 만한 ‘행동’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는 ‘행동’이 어쩌면 지속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별 것도 아닌 ‘행동’이기 때문에 서울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지나가던 시민들도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연히 그 시간에 서울광장에 있게 된 사람들과 별 것은 아니지만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행동’을 함께 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를 일상적으로,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술행동네트워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문화연대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의 몇 차례 모임 끝에 결성된 것이다. ‘기억하는 행동 4·16’은 매주 토요일 3시부터 서울광장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4시 16분에 시민들과 함께 어떤 ‘행동’하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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