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로운 덕후의 우울]살아있다는 것-<가구야 공주 이야기>(41호)

2014년 6월 19일culturalaction

살아있다는 것-<가구야 공주 이야기>

최지용

(hohobangguy@hanmail.net)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목요일 몇 안 되는 상영관을 찾아 겨우 보고 왔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보기를 권한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동시대에 만났는데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참고로 나는 스튜디오 지브리나 국내 배급사를 비롯하여 관련 업체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우리에겐 <빨간머리 앤>으로 유명한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이 1999년 <이웃의 야마다군> 이후 14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거장이 오랜 시간을 공들인 작품답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잘 만든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은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웠다. 물론 걸작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특히 더 그렇다. 나는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독자들이 직접 <가구야 공주 이야기>와 만나기보다 ‘나’라는 필터를 통과하여 재구성된 이야기를 먼저 접하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그저 잘 만든 작품만이 아니다. 걸작, 즉 우리가 마스터피스라고 부르는 것들은 완벽하게 정제되어 불순한 것들을 없애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그러니까 플라톤의 ‘이데아’에 가닿는 그런 작품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그렇게 보아선 곤란하다. 만듦새가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완벽에 가까울 정도다. 하지만 ‘완벽’, ‘이데아’, ‘영원’ 같은 것들은 천상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지, 살아있는 것들의 세계, 땅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는 ‘산’ 사람으로서 이 영화와 만나야 한다. 살아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 늘 변화한다. 변화하기 때문에 생동감이 있는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단순히 이 영화를 ‘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체험으로써 이 영화와 ‘만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실사 영화와 어떤 지점에서 구분될까? 이 질문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존재론, 즉 실사 영화와 구분되는 애니메이션 영화만의 정체성 내지는 특수성을 이야기할 때 늘 제기되는 질문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보통 ‘환상성’을 꼽곤 한다. 실사영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찍기’ 때문에, 일종의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물론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관성이 개입되지만, 어쨌든 실존하는 것들을 기계로 찍기 때문에 객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영화가 보급되면서 ‘사실’과 ‘환상’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사영화는 아직도 ‘사실성’이라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반면 애니메이션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려낸다. 상상력을 작동할 수 있는 범위가 훨씬 넓다는 이야기다. 현실 속에서는 재현 불가능 한 것들이 애니메이션 속에선 가능하다. 하지만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땐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그림’이기 때문에 오히려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그림은 우리의 손 끝으로 ‘직접’ 그리는 것이다. 여기서 그림은 ‘육체성’을 얻는다. 그림은 우리 몸의 확장이다. 특히 수묵담채화처럼 그려진 이 영화에선 선의 강약을 통해 사람 손끝 근육의 미세한 떨림을 우리는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스튜디오 지브리는 아직까지 아날로그 작업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의 기운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림은 차가운 기계장치로 찍은 사진과 다르다. 기계장치는 대상과 직접 닿지 못한다. 대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기록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통해 실사 영화와 구분되는 애니메이션만의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텍스트 분석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듯이 스포일러 하는 것이 정말 싫었고, 다른 이유는 이 영화를 ‘전체’로 받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면과 장면을 조각조각 내어 분석하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을 방해할 뿐 아니라, 이 영화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도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학문적 분석 방식은 서양적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분석 대상을 쪼개고 쪼개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원자’를 찾아내고 그 원자들 간의 결합 구조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 방식은 매우 물질적이고 반생명적이다. 대상을 그저 그자체로 온전히 존재하며 살아있는 것으로 보지 못한다. 동양적 전통에서는 단지 생물만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돌, 바람, 달 같은 무생물도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즉, 변화하는 것은 모두 살아있는 것이다. 생(生)이란 변화다. 그리고 변화하는 것은 정의내릴(define) 수 없다. 정의를 내리기 위해선 변하지 않는 그것만의 속성이 필요한데, 살아있는 것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사물을 잘게 쪼개 변화하지 않는 속성을 지닌 원자를 찾아내려는 시도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기왕에 동양적 사유방식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니 조금 더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길게 하는 이유에 대해선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이미 보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하시리라고 생각하고, 아직 안 본 분들이라면 보시게 되면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변화’를 살아있는 것의 근본이라고 본다면, 이 세계에 어떻게 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까. ‘변화’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이니 질서를 부여할 수 없다. 서양적 전통에서 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품어왔고, 지배하기 위해선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의 기획이 최고점에 이른 것이 바로 ‘근대’라는 시대이다. 하지만 동양의 사유체계에서는 굳이 자연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질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역>을 보면, ‘변화’에는 나름의 이치가 있는데, 그 이치란 것이 복잡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이치란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건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이유를 대신할 수 있겠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항상 도인 것이 아니다. 동양철학에선 항상 명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도(道)라는 것이 있다.’하고 애매하게 이야기 한다. 그 도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명확하게 이야기 할 수 없다. ‘도란 이런 것이다’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그저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과 함께 숨 쉬면서 ‘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몸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나혜석, ‘조조(早朝)’, 1920년 1월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설화라는 옛이야기를 통해 이 오랜 시간동안 변화하며 호흡해온 이 땅과 우리의 삶을 연결시킨다. 누군가에게는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땅이 그저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바라볼 신기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서양인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 것인지 다소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땅은 삶의 공간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 다시 봄이 되는 순환의 공간이며, 무수한 시간을 통해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그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아버지 어머니의 삶이 축적되어 온 공간인 것이다. 천상이 영원함의 공간, 정제된 공간, 깨끗한 공간이라면 땅은 살아있는 것의 공간, 변화하는 공간, 더러운 공간이다. 더러움은 못난 것이 아니다. 더러움은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러움 속에서만 한 송이 연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더러움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 더러움 속에서 가끔 천상의 빛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천상의 빛을 마음에 품고 다시 더러움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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