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종의 대중문화의 해체와 재구성]헐리우드의 타임슬립 블록버스터 영화들(41호)

2014년 6월 19일culturalaction

헐리우드의 타임슬립 블록버스터 영화들

이윤종 / <문화/과학> 편집위원
yunjong_lee@naver.com

최근 두 편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타임슬립물이 개봉되어 6월 한국 극장가의 흥행 쌍끌이를 하고 있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그것이다. <엑스맨>은 인간 돌연변이인 뮤턴트의 능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로봇인 센티넬이 개발, 보급된 21세기 중후반의 미래 세계에서 인류와 뮤턴트의 종말을 앞두고 유일하게 시간 여행의 충격을 극복하리라 여겨지는 자가 치유 능력의 뮤턴트, 울버린이 과거, 그러니까 2010년대로 보내져 센티넬의 개발을 저지하려 한다는 내용이 서사의 중심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종말을 앞둔 미래의 지구에서 빌 케이지라는 군인이 우연찮게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외계인의 피에 감염돼 전투 중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일정 시기의 과거로 되돌아가 인류를 전멸 위기에서 구하고 미래를 바꾸고자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영국 작가 H. G. 웰스의 1895년 소설 『타임 머신』이 발표된 이래로 “시간여행” 혹은 “타임슬립”은 장르문학 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중문화 매체의 주된 소재가 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요 몇 년 동안 드라마에서 타임슬립물이 빈번하게 등장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특히 20세기 후반 이래로 만화와 영화의 상호 리메이크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현재까지 끊임없이 타임 슬립물이 쏟아져 나와 대표적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실사영화 버전으로 다양하게 제작된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 다수 있어 타임슬립물은 이제는 조금 식상한 느낌도 있다. 게다가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사쿠라자카 히로시라는 일본 작가의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타임슬립이라는 주제가 워낙 일본 대중문화에 빈번하게 등장해 왜 갑자기 헐리우드가 일본적인 방식의 타임슬립에 관심을 가졌을까 잠시 궁금했으나, 흥미롭게도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상기시키는 서사적 원형은 1993년도 헐리우드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다. <사랑의 블랙홀>은 헐리우드 고유의 오랜 주제인 “인간성 회복”과 “진정한 (이성애적) 사랑”을 중심축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물로서, 이기적이고 괴팍한 성격의 남자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외딴 마을에서 타임 루프에 갇히게 되어 반복적으로 특정한 하루를 수없이 반복해서 살다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사랑도 성취하게 되어 마침내 타임 루프를 극복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는 2-3년전에 개봉해 성공한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헐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소스 코드>의 타임슬립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1980년대의 빅 히트작인 <고스트 버스터즈>로 일약 스타가 된 빌 머레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지만 큰 흥행은 못 거두고 컬트 물로 사랑받게 된 <사랑의 블랙홀>이 영화의 마니아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특정한 기술의 “정복/통달(mastery)”일 것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여성 동료에게 사랑을 느낀 남주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반복해 숙달하게 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빌 머레이가 피아노 연주를 마스터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주가 피아노 잘 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칠 줄도 몰랐던 피아노를 배우고 연습하기 시작해 피아니스트 수준의 연주력을 선보이게 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도 전투 경험이 전무한 공보 장교 출신의 병사, 빌 케이지가 수없이 죽었다가 깨어나며 특정 시간을 수없이 반복해 전투 능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함은 물론 멸망 직전의 지구와 인류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영웅으로서 활약하게 된다. <소스 코드>에서도 군인 장교인 주인공이 통근 열차의 폭파범을 찾아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계를 통해 수없이 특정한 30여분을 반복해 상황을 변화시킨다. <사랑의 블랙홀>에서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하루가 지겨워 주인공이 수차례 자살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고 타임 루프를 활용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지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는 주인공이 거의 초반부터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외계인과 싸우거나 전투 훈련을 반복하며 죽음을 맞이해 계속 과거로 되돌아가 깨어난다. <소스 코드>의 주인공은 죽음을 생각할 새도 없이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게 계속해서 일정 순간을 반복하지만 매번 현재에서 깨어날 때마다 주음과도 같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프로이트는 20세기 초반에 인간에게 “죽음 충동”이라는 미스테리한 본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이 과거의 기억으로 계속 회귀하거나 과거에 했던 행위를 재연하는 반복 작용을 통해 자신의 주변 환경을 “정복”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복과 재연과 정복의 충동은 굉장한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이는 프로이트가 그 이전에 인간 심리의 기반으로 설정한 “쾌락 원칙”에 위반되는 모순을 초래한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죽음 충동을 처음으로 소개한 책의 제목은 『쾌락 원칙을 넘어서』이다. 결과적으로는 환경의 정복을 통해 쾌감과 쾌락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과거 회귀와 반복의 과정 그 자체는 불안과 공포와 악몽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통달하고 정복하는 과정은 진정 죽음을 향해 가는 것과도 같은 고통의 반복이고 그 속에서 인간은 그 고통을 끊기 위해 고통이 없는 무생물 상태인 죽음을 갈구하며 프로이트 특유의 “양가성” 속에서 갈등한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논리와 이성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본능, 죽음 충동이 삶의 본능과 얽혀있는 복잡다단한 존재임을 다시 깨닫게 한다. 탐 크루즈가 연기하는 빌 케이지도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수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깨어나 지루한 순간순간을 반복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정복하며 조금씩 조금씩 미래를 바꿔 나간다. <사랑의 블랙홀>의 빌 머레이도 죽음과도 같은 반복을 수없이 계속하며 사랑을 쟁취하는 동시에 자신의 편협함을 극복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정과 호감을 받는 존재로 변모한다. <소스 코드>의 제이크 질렌할도 열차 폭파를 막는 동시에 짧은 순간의 반복을 통해 한 여성 승객과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쟁취하기까지 한다.
대중문화인 영화 속에서는 죽음 충동적인 “반복”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지만, 사실 죽음 충동은 이보다는 훨씬 복잡한 개념이다. 조금 단순히 헐리우드 타임슬립 영화의 모티프를 해석하기 위해 죽음 충동을 동원했지만, 사실 프로이트는 죽음 충동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간적 힘으로 상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프로이트는 죽음 충동을 피가학적이고 자기파괴적인 본능으로 보았다. 해피 엔딩과 윤리 의식의 강박에 사로잡힌 헐리우드에서는 죽음 충동마저도 창조적 원동력으로 동원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 특정 시간의 반복이 아니라 미래의 인물이 과거로 보내져 현재를 바꾸는 2014년판 <엑스맨>이나 그 80년대적 서사적 원형인 <터미네이터>나 <백 투 더 퓨처>는 <사랑의 블랙홀>이나 <소스 코드>, <엣지 오브 투모로우>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게 타임슬립을 다룬다. 그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무언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주인공의 존재 자체가 삭제될 수도 있는 위기가 초래되기도 한다. 반복의 기회가 없는 시간 여행이라는 제한성 때문에 과거로 보내진 현재나 미래의 인물은 과거 속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일순간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노력하며 미래를 바꾸는 동시에 그 변화의 진폭이 아주 크지는 않도록 하기 위해 만전을 기한다. <터미네이터>에서 인류의 미래 지도자인 존 코너가 미래에서 보낸 그의 아버지는 과거 속에서 코너의 어머니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와중에 로맨스를 성취하고 과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백 투 더 퓨처>의 마티 맥플라이는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친어머니가 자신에게 빠지게 되는 것을 막고 친아버지와 사랑의 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울버린은 센티넬을 만드는 과학자를 죽이거나 센티넬을 만드는 것을 막는 대신에 센티넬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을 전지구적으로 알림으로써 센티넬의 이후 제작에 제동을 거는 데 앞장선다.
죽음 충동을 과거 회귀적 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헐리우드의 SF 타임슬립물들은 죽음 충동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거나 정해진 미래를 아주 크게 바꾸지는 않도록 뛰어다니는 남성 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 속에서 돋보이는 것은 90년대에 나온 <터미네이터 2>의 액체 로봇처럼 자신의 물질적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유동적 여성 뮤턴트인 <엑스맨>의 미스틱이다. 미스틱은 자신의 물질적 신체처럼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심리 상태를 지니고 있어 선과 악을 넘나드는 인물로 최신판에서 등장했고, 이 복잡다단함을 아직 20대 초반의 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너무나도 잘 소화했다. 미스틱을 움직이는 것은 과거 회귀적인 죽음 충동이라기보다 현재적 상황에 충실한 삶의 본능이다. 미스틱은 헐리우드적인 미래지향적 죽음 본능보다 현재를 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몸소 실현하고 실천하는 캐릭터이다. 지난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 그 실현과 실천이 때로는 현실이나 악의와의 타협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괴물의 외형을 한 돌연변이로 살 것인지 이를 부정하고 평범한 여성으로 살 것인지 갈등하는 미스틱의 상황은 인간 대다수의 갈등을 대변한다. 과거로 반복 회귀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부인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충동이 아니라 실제로 실현된다면 이 세상은 과연 낙관적이고 긍정적이기만 할까? 그것을 악용하는 이도 반드시 나올 것이고 이는 가변성이나 유동성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헐리우드의 무한 긍정성은 비관적 미래관과 맞물려 묘하게 발휘되고 있다. 헐리우드적 죽음 충동의 긍정적 해석과 활용은 현실과 현재에 대한 미국인의 혹은 세계인의 불만족과 불안과 공포, 고통을 극명하게 드려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어찌 보면 현재에 만족하는 유동성과 가변성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 관객은 과거는 과거로 내버려두고 삶의 본능에 충실하게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은 물론이고, 헐리우드 고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 말이다. 자기 파괴적인 고통의 반복을 통한 죽음 충동적인 정복과 지배는 궁극적으로는 자기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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