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 바람이 솔~ 솔~(41호)

2014년 6월 19일culturalaction

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 바람이 솔~ 솔~

최은실(연남동 주민)

eunseel2@naver.com

연남동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1년이 넘어서고 있다. 그저 아침잠을 좀 더 채우기 위해 회사 가까운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는데, 내가 사는 이곳 연남동은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동네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연남동 마을시장! 지난 일요일 6월 15일에는 올해 두 번째로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이 연남동주민센터 옆 길공원길에서 열렸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을시장은 오후에 열리지만 나의 삶터인 연남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자원활동가 신청을 해둔 터였다. 벌써부터 모두들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시장을 이끄는 일상창작센터의 활동가 분들은 마법의 손을 가졌나 보다. 뚝딱뚝딱 본부가 자리 잡더니 안내판이 펄럭이고 파라솔이 펼쳐지고 의자가 테이블을 둘러앉았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지하철역에서 마을시장까지 오는 길에 안내 화살표를 붙이는 작업! 쉬워 보이지만 쉬운 일이란 없는 듯하다. 사람들이 이 화살표를 보고 잘 찾아올 수 있을지, 눈에 잘 뜨일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 않을지 등등 작은 일이지만 무수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쉼 없이 움직이는 스텝들의 바쁜 손길을 거쳐 개장 시간이 다가왔다. 드디어 판매자 분들이 접수를 하고 하나하나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점점 마을시장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가로수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돗자리가 하나하나 펼쳐지더니 그곳에 자신들이 준비해온 온갖 것이 각자의 개성에 맞게 진열되었다. 평상시 조용하던 길공원길이 북적거렸다. 신난 아이들과 아이 손을 잡아끄는 엄마아빠, 모든 것이 신기한 듯 뒷짐 지은 어르신들, 호기심 가득한 젊은이들……. 조용하던 연남동에 시장이 선 것이다.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렇지, 음악이 있어야 시장에 흥을 더하지. 주민센터 옆 어린이공원에서는 주민 분들이 연남동 기타동호회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아낌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노랫소리와 함께 기타 연주음이 공원을 감싸는데, 공원 안쪽에서는 아이들이 철봉에 매달려 까르륵거린다. 폭신한 쉼터로 변신한 매트리스에는 햇빛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 앉은 분들이 음악을 듣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미소 짓고 있었다. 편안해 보였다. 그렇지, 그래.
이제 마을시장 구경을 나서볼까. 먼저 심심한 입을 달래줄 겸 상큼한 레몬티 한 잔을 손에 들고 슬슬 움직여본다. 손으로 만든 베틀로 짠 지갑, 현장에서 뚝딱뚝딱 맞춰주는 맞춤형 가죽팔찌, 선인장을 품은 공룡, 토종 민들레로 만든 몸에 좋은 음료, 정성스레 키운 수십 가지의 허브 모종,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부채와 팔찌, 아침에 갓 만든 스콘과 머핀, 어머니가 직접 만든 매실청, 직접 만든 잼과 커피와 음료,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직접 키운 매실, 직접 짠 모자와 직접 만든 가방,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내가 만든 유일무이 노트, 추억을 담는 지갑, 수제 맥주와 수제 핫도그까지……. 세상에는 숨은 고수가 많다더니, 연남동 마을시장에는 숨은 재능을 지닌 분들이 모습을 많이 드러내는 듯하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에 눈이 바빠졌다. 괜한 호기심에 발길을 멈추고 한마디 말도 건네본다.
남자아이가 엄마와 앉아 있다. 딱 봐도 장난스러움이 넘쳐나는 꼬맹이다. 돗자리에는 아이의 옷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네가 입은 옷들 네가 파는 거야?” 아이는 쑥스러운지 괜스레 엄마에게 장난을 친다. 맞은편에도 남자아이가 앉아 있다. 장난감 앞에는 직접 아이가 쓴 듯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은 가격표도 붙어 있다. “1000원.” 장난감의 새로운 주인은 누가 될까. 친구들끼리 온 듯한 한 무리가 시끄럽다. 물건을 선보이기보다 서로에게 장난을 치기 바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서는 책을 읽고 있다. 연인을 위해 기타를 치는 이가 있더니, 연인을 위해 햇빛 가리개가 된 이도 있다.

머리 마사지를 받아보았다. 상큼한 아로마향과 함께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는 점점 산발이 되어간다. 그런데 기분이 좋다. 마음이 편해진다. 책도 한 권 샀다. 직접 쓴 글이 그분의 마음을 담은 듯해 나도 조심스레 마음을 담아 읽기로 했다. 눈을 사로잡는 티셔츠가 있어 역시나 가져왔다. 단돈 3000원. 마음에 드는 옷을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구하다니, 뿌듯하다. 낯익은 분들이 눈에 띈다. 문화연대에서는 추억의 물건으로 물물교환을 하라는데, 내가 준비한 추억이 없어서 그냥 수다만 떨었다. 한 바퀴 돌고 나니 “새끼 한끼”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메뉴는 우묵가사리콩국. 고소한 콩가루와 시원한 수박을 토핑으로 얹어 후후룩.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이곳에선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저곳에선 흥정소리가 들린다.물건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만나고 있었다. 아직 해는 쨍쨍한데, 약속한 시간이 되자 하나둘 정리를 하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겨웠던 마을시장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조용한 연남동 길공원길로 돌아갔다. 나는 가끔 조용한 이 길을 산책하러 나서겠지.
다음 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은 8월이란다. 아마도 더운 남쪽이 되겠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