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임의 미디어읽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본질을 찾아가는 사람들 – 드라마 <개과천선>을 중심으로 (40호)

2014년 6월 5일culturalaction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본질을 찾아가는 사람들

– 드라마 <개과천선>을 중심으로

 

 

이종임 /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happydayljn@naver.com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가장 가까운 지인들, 혹은 가족의 전화번호까지도 머릿속에서 생각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The)shallows)에서는 인터넷의 대중화로 현대인들은 정보를 기억하는 범위와 함께 정보를 읽는 과정에서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논한다. 아마도 현대인들이 정보를 접하는 ‘과정’과 ‘생각’하는 방식이 변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문에서 그는 현대인의 변화된 미디어 환경을 논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부연 설명한다. 글을 쓸 때 집중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글쓰는 작업에 집중한다는, 그래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의 변화된 상황을 설명한다.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니콜라스 카의 논의처럼, 필자 역시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아주 간단한 정보들도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이러한 방식이 계속되는 이유는 머릿속에서는 없지만 스마트폰을 통해서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찾아볼 수도 있고, 정보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긍정적 요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카의 주장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현대인들은 점점 스마트폰 화면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정보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이용자들은 반짝이는 액정화면 속 움직이는 텍스트와 손가락의 터치감에만 집중하게 된다. 영화 <슬기로운 해법>에서 잘 보여주었듯이, 자극적이고 오보일수도 있는 사건 관련 기사들은 오보일지라도 처음 이슈화되었던 정보만 대중의 머릿속에 남게 된다. 이후 정정보도가 이루어져도 처음 느꼈던 생각과 느낌은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바뀌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올바른 정보를 찾아가는 ‘슬기로운 해법’은 무엇일까?

MBC 드라마 <개과천선>은 어쩌면 현대인들의 이런 모습을 주인공 김석주(김명민)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아직 드라마는 방송중이고 결말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논의를 해야 할지는 좀 망설여지지만, 주인공 김석주 변호사의 삶과 그의 생각의 변화는 충분히 논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 김석주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필자는 드라마 후반부에서 교통사고 발생 원인이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타인으로부터, 인턴(배우 박민영)으로부터, 로펌 대표 차영우(배우 김상중)로부터 설명을 듣는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 직업, 자신의 취향, 가족관계 등 그 무엇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도 그렇지만, 과거 주인공모습과 현재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이 과정을 연기하는 배우 김명민의 연기도 탁월하다). 주인공 주변의 지인들 역시 그런 주인공의 너무 다른 모습에 당황하거나 심지어는 뭔가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의심하기까지 한다.

현재까지 방송된 내용을 보면, 주인공 김석주는 자신의 과거 모습, 즉, ‘성공’이라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로펌에서의 과거 행적들을 따라가면서, 불합리하고 불법을 자행했던 자신의 모습에 계속 놀라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 속 세계에서 주인공 김석주는 가장 파워가 크다는 대형 로펌에 근무하고 있으며, 그 로펌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변호사였다. 따라서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 활동했던 그가 재판에서 가졌을 영향력은 엄청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가 흥미롭고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최근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들을 주요 모티브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기억상실’전 그가 다룬 사건들은 태안 기름 유출사건, 동양 증권의 CP발행 사건 등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사건들을 소재로 다룬다. 가해자의 주도로 이루어진 피해보상이 실제 사건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가를 확인하고 보니, 드라마 속 사건은 또 다시 현실의 사건으로 오버랩 된다. 그 당시 잠깐의 관심만 보이다 ‘기억상실’에 걸린 것처럼 잊고 지냈던 필자에게는 또 다시 마음의 부채(負債)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러한 필자의 감상은 주인공이 느끼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포럼에 근무할 때의 기억상실 전 주인공은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 뛰어난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보호받지 못했던 드라마 속 피해자들은 법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 부당함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한다. 시위를 하거나 자살시도를 하는 등의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기억상실 후의 현재의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는 로펌 일을 정리하고 한국을 떠나려는 결정을 하지만 그의 과거 잘못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러한 그의 결심 역시 쉽게 현실로 옮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드라마에서는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한 인물들의 모습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일례로 여주인공인 로펌 인턴의 시선을 통해서는 감정만 앞세우는 ‘정의’가 오히려 사건의 진실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는 주의와 당부를 전달한다. 또한  로펌 대표 차영우도 여러 가지 의미를 전달해주는 캐릭터인데, 그가 특별한 점은 어느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로펌 운영과 자신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이며,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상황과 사람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낸다. 그는 향후 정권의 향방과 이에 부합하는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오는지를, 현대사회에서 같은 편이자 영원한 동료는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어쩌면 “자본주의”의 원리를 표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의, 진실보다는 경제적 이익과 최소한의 손실이 그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상실 ‘전’과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은 자본주의 원칙에 충실한 현대인과 경제적 논리로부터 벗어나려는 우리 사회 속  대중의 저항을 표상하는 듯하다. 과거로부터 단절된 ‘현재’의 그는 무료변론을 선택하지만, ‘과거’에는 부당한 방법으로 몇 백억을 벌어들이는 변호사였다. 변호의 대상도, 변호를 맡는 사건도 ‘기억상실’ 전과 후로 놓고 보자면 극명한 대립을 보인다. 변호사인 주인공이 로펌에서 주로 수행했던 것은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를 지켜야하는 ‘법’의 집행, 기득권 세력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기 보다는 가해자인 의뢰인의 손실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것인가’라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JTBC의 손석희 앵커와 언딘 기술이사의 인터뷰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 5월 두 번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였다. 스튜디오에서 직접 앵커의 질문에 답하던 언딘의 기술이사는 세월호 사건 관련 정보를 사건 발생 당일 밤 11시 30분에 해경으로부터 전해 받았다고 답했다. 이 사건과 관련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계산을 위해 유명한 법적 자문인과 상담을 받은 듯 한 답변이었다. “정부발표가 오후 4시에 나왔는데, 그것도 알지 못했나? 어떻게 밤 11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세월호에 300여명이 갇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인가?”라고 재차 묻는 앵커의 질문에 대표 이사는 같은 대답만 반복한다. 그리고 “언딘은 구난 업체이지 구조 업체는 아니다”는 말도 여러번 반복한다. 필자도 그때 손석희 앵커가 방송 중 쓰고 있던 ‘안경을 벗는 모습’은 처음 봤던 것 같다. 언딘 기술이사의 답변은 법적·도의적 책임보다는 현재의 상황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비쳐졌다. 

이와 더불어 ‘세월호 사건’ 관련 주요 인사들의 행보는 <개과천선>의 주인공 김석주의 기억상실 전 모습과 유사하다. <개과천선>의 주인공은 법정에서의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 법을 만들고, 피해자들의 법적 보상보다는, 의뢰인들이 재판에서 승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중요한 건 자신의 승리였지, 생계를 위협받고 자살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그들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은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김석주 변호사가 개과천선을 하게 된 ‘교통사고’는 슬프게도 지금 우리에겐 “세월호”사건이다. 나 자신을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옳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계기. 너무나 큰 사건을 겪고 난후에야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주인공 김석주에게 과거를 돌아보게 된 계기였던 ‘교통사고“로 개과천선하게 되었지만, 현실을 깨달았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친부와 병에 걸린 반려견일 뿐이다. 아마도 앞으로의 전개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헤어져야 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그는 진실을, 본질을 외면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우리도 이제 ‘본질’을 찾아가야 할 때가 왔다. 너무 늦어진다면, 그 대가는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다. 우리 모두 지금까지의 내 행적을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이제 다시 움직이자. 감정에만 따르지 말고, 선정적 보도만을 기억하지 말고, 본질을, 진실을 찾아가는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가 해야만 하는, 긴 여정에 오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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