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시간이 싸우는 자의 편이 되기를 (40호)

2014년 6월 5일culturalaction

시간이 싸우는 자의 편이 되기를

–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대법원 앞 무기한 24시간 일인시위를 응원하며

장미경 / 출판노동자

mysongis@minumsa.com

항상 그렇듯, 국가 고위직으로 임명된 인물의 전천후 등장부터 낙마까지의 과정은 늘 소동처럼 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얼마 전 총리로 지명돼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중 자진 사퇴한 안대희 전 대법관 역시 마찬가지의 전철을 밟았다. 그가 변호사로 활동한 지난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무려 16억을 벌어들였다는 한 줄짜리 텍스트는 내게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16만원이라는 돈이 오히려 나에게는 감각이 있는 큰돈이었을 터다. 대접에 대접에 대접으로 이어진 관례 속에 16억이란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흐름과 같은 물질이었을 테지만, 여기서 굳이 그를 소환하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2012년, 당시 주심 대법관으로 재직 중이던 안대희가 바로 ㈜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재판에서 2009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심리가 부족하다며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오만한 사법적 조처의 결과로, 올해 1월 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서울고등법원에서 해고인정판결을 받고 패소했다. 나 역시 그 투쟁의 역사를 복기하는 것만큼이나 가늠이 안 되는 마음이었다. 목숨처럼 부지하고 있는 탐욕 하나로 누군가는 승승장구 총리가 되려 할 때, 그가 돌려보낸 사람들은 여태껏 길에서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며 싸우고 있었다. 그 기묘한 풍경이, 지금 이 사회에 걸려 있는 초상의 일면이었다.

그 동안 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대체적으로 맹신해왔던 것 같다. 시간이란 결국, 긍정적인 가능성의 최후에 있는 것이라 믿고 싶었던 것이다. 학습, 돈벌이, 인간 관계 등 새로운 대부분의 것들에 능숙해지려면 어느 정도 절대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알 수 없도록 감내해왔던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그에 대한 어지간한 결과가 일종의 보상이자 합당한 대가로써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만 지나면, 또 이 시간만 지나면…… 하는 마음들. 더 효율적인 자본의 구조로 더 빠르게 휘말리는 것. 당연히 그 시간들은 자기 착취와 자기 희생의 정당한 도구로 활용되는 일이 빈번했다. 얻으려면 견뎌야만 했으니까, 또는 견뎌야만 하는 나이였으니까. 하물며, 정당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투여되어야 하는 시간이라는 건 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그토록 당했음에도, 감이 안 온다.

사실 삶은 항상 우리들을 곳곳에서 배척해왔다는 것을, 우습게도 그 반복되는 시간을 통해 알게 된다. 시간이란 것 역시 종잡을 수 없는 무리의 다발에 가깝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을 평생 견디는 것에 가까운 게 우리들의 삶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시간을 기약 없이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금 눈에 들어오게 된다. 나는 그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을 만나며 알게 되었다.

그렇게 분분하게 낙마한 총리 후보 인사가 파기환송시킨 소송의 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며 매캐한 공기와 뜨거운 햇볕과 오가는 법관들의 무지한 발걸음 속을 또 헤쳐가며 싸우고 있다.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새로운 시간을 다시금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다가올 경영 상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해고의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시간을, 미래를 거스르는 판결이 이 사회에 납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국가 최고의 사법기관이라는 대법원 앞에서 무기한 24시간 일인시위를 이어가는 기타노동자들과, 그 시간에 연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최소한의 상식일 것이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을 보며 나는 내 삶엔 없는 운동의 중심을, 시간에 정면으로 맞서는 법을 자주 배운다. 그러니 언제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지금도 대법원 앞을 지키고 있을 기타노동자들과 함께 자리한다면, 그것으로도 우리는 그 거리의 대기를 상식적인 방식으로 장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우리를 보상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상식이 용납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간과 꾸준한 연대의 시간은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시간들이 싸우는 자의 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7년이 넘게 닫혀 있었던 콜텍 대전 공장.

닫혀 있는 공장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척 고요하고 깨끗하다.

지금 이 흔적들이 사람의 손으로 다시 살아나는 그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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