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월드컵, 국가와 자본과 피파의 패스 플레이 (40호)
[편집자주] 우리에게 월드컵은?
이제 곧 전 세계인의 축제라 불리는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월드컵은 2002년의 4강 신화, 거리응원, 태극기 패션 등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서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거리응원 문화는 대기업의 자본과 결합하면서 상업화되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 반대시위, 피파(FIFA)의 비리와 같이 월드컵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특히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작되어 거리응원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의견 또한 분분합니다. 이번 문화빵에서는 이런 월드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월드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다뤄보았습니다.
(1) 2014년 6월, 거리응원은 증거인멸이다! / 정희준(동아대 교수)
(2) 월드컵, 국가와 자본과 피파의 패스플레이 / 정윤수(스포츠 평론가)
(3) 세계인의 재앙이 된 월드컵 / 박선영(문화연대)
월드컵, 국가와 자본과 피파의 패스플레이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
1974년, 피파(FIFA, 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에 나선 주앙 아벨란제, 브라질 출신의 운송, 투자, 보험 그리고 무기 회사까지 거느린 이 사업가는 당선 일성으로 ‘나는 축구를 팔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제프 블레터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세계화 이전에 이미 축구를 세계 최대의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개최지 결정권, 미디어 중계권, 공공 전시권이라는 월드컵 3종 세트가 그것이다. 차례로 살펴보자.
먼저 개최지 결정권. 최근 불거진 ‘카타르 월드컵 비리 파문’에서 보듯이 월드컵 개최지 결정 권한을 가진 피파의 집행위원회를 향한 각국(특히 저개발 국가)의 구애는 애틋할 지경이다. 대규모 스포츠 대회 유치를 통해 자국 내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집단과 국경을 초월하여 막대한 기대 이익을 창출하려는 거대 자본의 이해가 전세계 축구팬들의 소박한 열정을 볼모로 잡고 국제정치 게임을 벌인다.
다음 미디어 중계권. 1970년대 이후 미디어는 축구를 세계적인 구경거리, 결코 놓쳐서는 안될 이벤트로 만들어버렸다. 미디어와 글로벌 자본이 경기장에 등장함으로써, 축구는 곧바로 환금성이 가능한 상품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공공 전시권. 피파는 자신과 후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이를 고안했다. 그 아이디어는 다름 아닌 2002월드컵 때 한반도의 거리와 광장을 뒤덮었던 응원 문화에서 출발했다. 연인원 2천만 명 가량이 거리에 몰려 나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열기에 휩싸였을 때, 피파는 광장의 환금성을 계산했다. 그리하여 누적 시청자 수 380억 명에 달했다는 2006독일 월드컵에서는 피파와 그 후원사가 설정해 놓은 응원 장소(팬페스트 광장)이 아닌 곳에서는 피파, 월드컵, 후원사 로고 등을 설치하는 것을 엄금하였고 2010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마침내 ‘공공 전시권(Public Viewing Event)’을 고안하여 ’장외에서 2명 이상이 월드컵 경기를 볼 경우 자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은 미디어와 기업은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야외 공간에 광고 현수막 하나 걸지 못하는 것은 물론 취재하러 들어가지도 못하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할 중요한 요소가 있다. 다름아닌 스포츠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가 그것이다.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의 저자 프랭클린 포어가 밝혔다시피 유럽의 개별 나라에서 축구는 20세기의 도시 문화와 자본의 흥망성쇠를 압축하고 있다. 포어가 주목한 이탈리아를 잠시 보자.
그에 따르면 명문 클럽 “유벤투스는 피아트의 소유주이자 밀란 주식 거래액의 지분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는 아녤리 집안의 장난감”이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은행, 보험, 화학, 섬유, 군수, 시멘트 등을 거느린 이 가문은 막강한 돈과 세습 권력, 그리고 거미줄처럼 얽힌 사회 관계망으로 이탈리아를 지배해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탈리아 총리의 임무는 아녤리 집안의 문고리를 닦는 일”이라는 절망적인 농담을 할 정도다. 그들과 거래한 권력이 무솔리니 파시즘이었고, 그 무렵 유벤투스는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여기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도전장을 내민다. 막강한 미디어 재벌이었던 그는 1986년에 AC 밀란의 구단주가 되면서부터 이탈리아 축구계를 대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다. 파시즘과 팬덤과 축구가 합작을 시작한 것이다. 이 합작에 의하여 이탈리아 축구장은 극우 인종주의의 경연장이 되어 버렸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비교적 안정된 사회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의 축구장이 민족주의의 경연장으로 과열되고 있다.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유럽’이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직 축구장만이 각 지역(국가 혹은 도시)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축구장이 인종주의로 물들기 시작한 것과 더불어 최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대거 입성한 것은 동전의 양면이 된다. 뿐만 아니라 ‘유동하는 공포’(지그문트 바우만)가 만연하면서 사회(공동체)와의 단절이라는 상황에 내몰린 개인이 경기장에서나마 어떤 의미로든 집합성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그것이 4년마다 다가오는 월드컵 열기로 휩싸이는 것이다. 이때, 피파와 미디어와 자본의 회계사들이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린다. 카타르의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벌써 인도나 네팔의 이주 노동자들 가운데 1200여 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며 브라질의 경기장 부지 일대에서는 지금도 강제로 살 곳을 빼앗긴 채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죽음 위에서 그 무슨 ‘지구촌 축제’요 ‘화합의 한마당’이라는 월드컵이 곧 열리는 것이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 월드컵 때, 광장 문화가 있었고 그 당시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 이어령에서 김지하에 이르는 과도한 민족주의적 환호가 넘쳐났으나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 열기를 신중하게 진단하는 시선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정대화는 월드컵 열기를 “붉은 광장의 새로운 혁명”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이 혁명은 자유와 해방의 계열에 속하는 것이지만 정체불명의 모호함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혁명의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무채색”(한겨레, 2002, 6, 26)이라고 판단했다. 김종엽은 논문 ‘2002 월드컵 응원 문화와 상징체계’에서 “자본은 그 에너지를 새로운 축적의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고, 정치세력은 그것을 권력 창출의 토대로 삼으려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이후 벌어진 한국 축구의 국가주의적 신드롬은 이러한 판단과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결국 국가가 이겼고 자본이 승리한 월드컵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5월 28일 저녁, 국내에서 치르는 마지막 평가전 중계 화면을 기억해 보자. 경기 전에 화려하게 꾸민 월드컵 응원쇼 “뜨거운 함성! 가자 브라질로!’는 국가주의 상징들로 넘쳐났다. ‘대~한민국’ 응원 소리와 흩날리는 태극기들 사이에 진행자들은 마치 알리바이처럼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위로’를 보낸다는 말을 섞는다. 그 개인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결국 ‘다시 일어서는 한국, 하나 되는 대~한민국’으로 흘러간다. 국가와 자본과 방송의 일치된 구조적 이해에 따라 월드컵이 또 다시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우려를 떨쳐낼 수 없는, ‘화합의 한마당’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