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종의 대중문화의 해체와 재구성] 드라마 <밀회>로 보는 문화의 생산자와 유통자의 관계 (39호)

2014년 5월 22일culturalaction

드라마 <밀회>로 보는 

문화의 생산자와 유통자의 관계

이윤종 / <문화/과학> 편집위원

yunjong_lee@naver.com

5월 13일 JTBC 월화드라마 <밀회>가 16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회 시청률 2.5%로 시작한 <밀회>는 세월 호 참사 사건으로 잠시 방송이 중단될 때까지 연이은 상승세를 타다가방송이 재개된 후에도 꾸준한 시청률을 보여15회에서 5.3%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후최종회에서는 분당 최고시청률 8.8%, 평균 시청률 6.6%로 화려한 유종의 미를 거뒀다이미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가 10% 전후의 시청률로 공중파 드라마를 위협하는 케이블 드라마로 등장한 바 있지만, 10-20대의 젊은 세대와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의 시청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청춘물로 승부한 <응답하라시리즈와 달리, <밀회>는 중년 시청자특히 여성을 타겟으로 한 케이블 드라마치고는 굉장한 시청률을 기록했다방송 전부터 김희애와 유아인이 사랑하는 연인으로 등장한다는 설정만으로도 기대와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지만파격적인 20살 차이의 연상연하의 불륜 관계 이상으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옥같은 클래식 피아노곡들과 김희애의 의상쟁쟁한 조연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재벌 혹은 상류층과 그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중산층 야심가들의 삶의 방식 등이 다양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며 드라마는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내가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드라마 상의 로맨스보다는 김희애가 연기하는 오혜원이라는 한 재벌 가족의 관리인(caretaker) 역할을 하는 여성 캐릭터의 비극성이다우아하고 고상해 보이는 오혜원이지만 그녀의 주변은 온갖 비리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이고 그 중심에서 그녀는 중재자 역할을 하며 온갖 수모와 모욕을 견뎌낸다애정이 없는 결혼 생활을 영위하며 재벌 가족의 충실한 종으로 봉헌하고 굴종하는 오혜원의 비극성은 그녀가20살 연하의 피아노 천재와 연주를 통해 교감하며 사랑에 빠지고 불륜을 저지르는 설정을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납득하도록 유도한다겉으로는 우아하고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오혜원의 인생과 일상이 너무나 비굴하고 수치스러워서 시청자는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의 수용자가 느끼게 되는 공포와 연민이라는 감정을 경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과 같은 태생적으로 고귀한 신분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오혜원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극심한 비극성은 평범한 시청자들이 그들의 처지에 안심하고 현실에 만족하도록 한다.

드라마는 1회부터 파격적으로 오혜원의 비극성을 드러낸다오혜원은 중하층 출신으로 자신의 실력만으로 예고와 음대에 입학했으나외국 유학을 갈 수 없는 가정 형편으로 인해 고교 동창인 재벌집 딸 서영우의 시녀를 자청해 동반 유학을 다녀온다그러나 손가락 근육에 이상이 생겨 피아노를 그만 두고 대신 대학 선배와 결혼해 그를 음대 교수로 만든다수완가로서의 오혜원은 서영우를 비롯해 그녀의 아버지서필원과 계모한성숙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하며 불협화음을 이루는 서씨 일가 속에서 열과 성을 다해 그들 각자를 보필하며 자신이 없이는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의지하도록 만든다. 1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서씨 일가의 이중성과 추악함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서영우과 그녀의 계모한성숙의 암투 장면일 것이다겉으로는 시종일관 우아함을 잃지 않는 그들이지만룸살롱 마담 출신의 계모를 인정하지 않는 서영우와현재의 자신을 만든 것은 “8할이 정보라며 서영우를 한 수 아래로 보는 한성숙의 미묘한 심리전은서필원의 자택에서 그의 가족과 심복들이 정기적으로 드레스와 턱시도를 맞춰 입고 벌이는 마작 모임에서 외부적으로 폭발하고 만다급기야 화장실에서 육탄전을 벌이던 이 의붓 모녀는 한성숙이 서영우의 머리를 변기 속에 쳐박아 버리며 한성숙의 승리로 끝난다물론 이 전투적 행위를 중재하고 중단시키는 것은 오롯이 오혜원의 몫이다시종일관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모든 문제들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오혜원을 부각시키며 드라마는 그녀의 주변 인물들이 고상함이라는 표피 밑에 숨긴 위악성과 추잡할 정도의 탐욕을 부각시킨다.

현재 서영우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서한 예술재단의 실장이라는 직함에 걸맞지 않게 오혜원은 유학 시절 서영우의 시녀 역할을 한 것에서 더 나아가 서영우가 외도 상대로 만나는 연하의 섹스 파트너들까지 관리한다심지어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오혜원은 재단의 이사장인 한성숙이 외국 출장을 간 사이 허허로움을 달래고 싶어하는 서필원 회장을 대신해 국밥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아주머니와 회장의 잠자리를 주선하고급기야 출장에서 돌아와 이를 눈치 챈 한성숙의 명령에 따라 서 회장의 외도 관계를 정리해 주기도 한다이런 과정에서 오혜원은 조선족 아주머니로부터 욕지거리를 들으며 술을 뒤집어쓰거나서영우의 구타와 언어폭력도 아무렇지 않은 듯 감내해야 한다한성숙은 끊임없이 자기만을 위해 봉사하라며 오혜원을 정신적으로 위협하고 압박하는 한 편외국 출장에서 특별히 오혜원을 위해 고가의 보석 세트를 사갖고 와서 선물하며 그녀를 달랜다서 회장도 온갖 자잘한 재정적정치적 잡무 및 서영우의 신변잡기 처리까지 오혜원에게 맡기며 두툼한 돈 봉투로 오혜원을 조련한다서영우의 말마따나 오혜원의 직업은 물론이요 그녀가 사는 집자동차도우미 아주머니까지 모든 것은 서씨 일가가 제공해 준 것으로오혜원의 정체성은 이 재벌 일가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자신이 물질적으로 누리는 그 어떤 것도 자기 것이 아닌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자기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모두 억누르며 살아온 오혜원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불쌍하게 여기고 자신을 서씨 일가로부터 해방시키도록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이가 유아인이 연기하는 피아노 천재이선재이다가난하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해맑고 밝고 순수하게 자라오혜원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는 이 청년은 생애 처음으로 오혜원을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그녀에게 위안을 주려고 한다마침내 사랑받는다는 든든함은 오혜원이 스스로 검찰에 서씨 일가의 부정과 비리의 증거를 제시하며 자신이 그 중심에 있었음을 시인하며 감옥행을 선택하도록 한다감옥에서 코를 골며 자기도 하고 봄 햇살을 즐기기도 하면서 오혜원은 물리적 수감을 통해 오히려 영혼의 자유를 만끽한다.고대 비극의 주인공과 같았던 오혜원은 스스로를 비극성으로부터 해방시키며 현대적으로 이를 전복시킨다물론 마지막회에서 감옥에 갇혀있는 오혜원을 보며 시청자는 다시 자신의 평범한 처지에 안심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됨으로써그녀가 출감할 때까지 계속 기다릴 이선재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느낄 필요가 없게 된다.

<밀회>는 매우 영리한 드라마였다기본적으로 캐릭터가 탄탄하게 구축된 데다 대화를 통해 그들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투영하는 각본에 더불어모던하고 세련된 듯 하면서도 불안정한 음악과 조명공간 배경 세트를 통해 겉으로는 냉정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내면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들끓는 김희애의 캐릭터를 반영하도록 한 연출가의 탁월한 선택과 배치가 돋보였다게다가 오혜원의 현대적 비극성은 애초에 드라마가 가장 크게 광고한 불륜 로맨스를 추잡하고 비윤리적인 사건으로 만들지 않고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공감하도록 유도했다현실적으로 투옥 전의 오혜원과 같은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내에 상당수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과연 그들이 오혜원처럼 뒤늦게 순수한 사랑을 발견해 자신의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하지만 드라마의 현실적이기 보다 문학적인 열린 결말은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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