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맨하탄> 토키영화에 대한 생각(38호)

2014년 5월 9일culturalaction

<맨하탄> 토키영화에 대한 생각

강신유(moonsl32@gmail.com)

인간은 채집을 하던 원시시대부터 시각에 의존하며 살아왔다. 오토 쾨니히(Otto Keonig)는 그의 저서 <눈, 근본적 동기> 에서 “인간의 눈은 특히 사냥의 기능, 즉 움직이는 대상을 빨리 파악해서 끈기 있게 쫓아가는 능력에 적응했다.”고 썼다. 이처럼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자연스럽게 빛에 반사되는 사물들과 움직이는 상에 집중했던 것 같다. 영화는 이러한 인간의 신체적 성질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축적된 대표 결과물이다. 그래서 영화의 중심에는 시각 이미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심지어 무성영화시대에는 이런 시각 이미지 만으로 여러 미학적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리가 첨가된 토키 영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영화가 시각 매체로서만 설명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유성영화의 등장 이래로 소리는 영화에서 그 입지를 이전과는 비교 할 수도 없을 만큼 넓혀왔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인물이 말로 전달하는 대사는 촬영, 편집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현대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영화의 명장면뿐만 아니라 명대사를 기억한다.
 또한 비교적 영화사 초기부터 소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형태도 있었다. 발터 루트만의 <베를린>(Berlin: Symphony of a Great City, 1927년)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무성영화시대였던 당시에도 극장에서는 영화상영 중에 음악을 틀어주거나 연주를 했었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애초에 영상을 악보에 맞췄다는 점에서 감히 다른 성질의 영화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이러한 시청각 미디어의 배치는 오늘날의 뮤직비디오 형태와 비슷하다.
 우디앨런의 <맨하탄>을 보면서 발터루트만의<베를린>이 떠올랐다. 도시이름을 딴 영화 제목과 교향곡에 맞춰 맨하탄의 풍경을 보여주는 오프닝씬은 자연스럽게 발터루트만의 영화와의 연결고리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30년도 더 된 명작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하기 뭐하지만 그러고 보면 <맨하탄>은 상대적으로 이미지보다 대사가 그 중심을 이루는 영화인 것 같다. 일단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인물들의 대화하는 장면으로 채워져있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볼 때 소리가 없어도 대략적인 내용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인물들이 걸어가면서 혹은 앉아서 수다떠는 그림들 만을 통해서 많은 내용을 알아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삭과 메리가 센트럴 파크에서 소나기를 맞은 뒤 박물관 안에 들어가고 나서의 장면에서는 서로 공간과 움직임이 연결되지 않는 컷들이 나열되지만 둘의 끊이지 않는 대화가 단절된 컷들을 이어주고 있다.
 이와같이 <맨하탄>은 설명적인 대사로 복잡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대화가 중심을 이루는 영화다. 여기서 중심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마치 일본 참바라 활극에서의 칼싸움, 이소룡영화에서의 무술격투 혹은 포르노비디오의 정사장면처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주된 장면 혹은 볼거리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은 30년대의 헐리우드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와 많이 닮았다고 볼 수도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고 근원적인 행동인 동시에 영화에 있어서도 이를 보여주고 또 본다는 것은 몹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디앨런은 스탠딩코미디언 출신에 평생을 뉴욕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오직 마이크 하나 들고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했었기 때문인지 인물들이 말하는 모습만을 가지고도 재미있는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이는 토키영화가 지향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말이라는 것은 사용되는 언어별로 그 문화를 달리할 뿐 아니라 같은 언어권 속에서도 지역과 계층 따위에 따라서 수많은 양상을 보인다. 그만큼 다채로운 작품들이 가능하며 그것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기록하고 보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서 한국인 대화 특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시대의 우리 말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미래에 전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언어적 뉘앙스를 표정과 행동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함께 제공함으로써 언어를 이해 못하는 사람에게도 그 대화의 맛을 전해줄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은 토키영화를 의미있게 바라보는 시각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