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아트 행동주의] 유알아트 김영현, ‘시민예술’과 ‘삶의 기술’로 예술하기 (40호)

2014년 5월 5일culturalaction

유알아트 김영현, ‘시민예술’과 ‘삶의 기술’로 예술하기

이광석

예술‘계’(系)의 영역이 변하고 있다. 전문가 창작 집단의 존재론을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계’가 예술내 계열화된 경로의존적 관성을 의미한다면 그 계통성을 벗어나 ‘계’가 다시 정의되고 있음을 말하려 한다. 예술 대상의 확장, 창작 주체의 민주화, 예술의 탈경계성, 과학기술과의 통섭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을 다시 쓰게 하는 근거들이었다. 예술 자장내 관성이 기성의 권력에 줄을 댄다면 예술계 외연의 확장과 탈경계 혹은 재정의는 그런 권력화에 끊임없이 틈을 벌리는 힘으로 기능한다.

계의 안팎을 넘나들며 주어진 속박을 벗어난 자유인 중에는 ‘유알아트’ 대표 김영현이 있다. 그는 이제 오십의 문턱에 들었다. 관성화의 틀에 갇힐 나이다. 대신에 그의 삶은 작가적 실험 정신으로 넘쳐난다. 김영현은 장르로서의 예술 한계를 넘어서서 아트를 삶을 영위하는 기술과의 융합 구조로 본다. 그는 삶디자이너 박활민의 미학적 태도와 많이 닮았다. 삶의 태도와 직접적으로 연동하는 예술에 대한 그의 ‘삶의 기술’에 대한 시각은 초연이라기보다는 삶 속에 하나되는 예술을 본다는 점에서 범용적이다.

‘당신도 예술가’와 시민예술가 

김영현은 동양화를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먹의 느낌이 좋았다 한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미술학도라면 대개 비슷한 세대경험을 공유하듯 그도 학보사 일과 미술 동아리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당시 군부아래 엄혹했던 시절의 대학 캠퍼스와 달리 그가 누렸던 전원적 삶의 반경은 그의 향토적 정서를 키우는 힘이 됐다. 그래서 김영현은 서울 외곽 남양주에 오랫동안 과수원업을 하며 살아왔던 집안 내력을 자신만의 큰 축복으로 여긴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같이 사는 것에 대단히 친숙한 자신에 감사한 까닭이다.

대학 시절 사회예술에 대한 관심과 먹에 대한 친화감과 향토적 정서가 공진화하면서 자연스레 김영현은 예술의 상상력과 공동체적 가치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유알아트’의 출발은 1990년대말 화가 임옥상과 그의 인연 속에서 여러 예술 작업을 하면서 시작됐다. 작업 과정에서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 2002년 김영현을 중심으로 ‘당신도 예술가’의 “시민중심, 현장 중심, 가치 중심”의 접근과 지향을 갖고 재탄생한다. <당신도 예술가> 프로젝트는 “참여자가 생산자가 되는 일상적 예술, 즉 평등하게 누릴 권리와 표현할 권리”를 모토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요샛말로 ‘생비자’ 수준의 단순 접근법은 아니었다.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생비자란 자본주의 시장내 적극적 소비 주체의 생성을 가정하는 논의에 머무른다. 반면에 그는 시민 권리의 확장 방식으로 ‘시민예술가’의 정체성을 제안한다. 한 사회내 문화 권리와 감수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창·제작의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다.

유알아트 김영현은 자본주의 문명사회가 사실상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잃게 만들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지닌 본래 창조와 창작의 본능에 대한 회복을 시민들이 모여 행하는 집단 창작과 일상 창작의 기운으로부터 찾고자 한다. 20세기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이 급진적 반예술을 통해 예술의 삶 속 일상화 테제를 주장했다면, 김영현은

‘당신도 예술가’란 명명법으로 예술의 민주주의와 문화 권리의 보편화 테제를 주장한다. 전자가 해체의 논리라면 후자는 그래서 범용성의 논리다. ‘당신도 예술가’는 거대한 창작프로그램의 장과 같다.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들에서 40여명의 전문 시민교육자와 500~1000여명의 시민예술가들이 특정의 창작 프로그램을 서너 시간동안 함께 풀어낸다. ‘시민예술가’적 경험과 실험이 예술을 하향평준화하지 않겠느냐는 가능한 비판에 대해 김영현은 대중의 심미안과 창작이 향상될수록 전문 작가에 비판적 자극이 될 수 있음을 차분히 지적한다. 다시 말해 시민예술가 테제가 전문가 영역을 무시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아마추어 작가간 상호 잃어버렸던 예술감각의 회복과 상호 학습의 시너지 둘 모두 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적 먹 작업들 

김영현은 도시와 지역의 존재하지않는 ‘커뮤니티’란 화선지에 그의 방식으로 먹을 입힌다. ‘당신은 예술가’의 공동 창작에 이어서, 2003년에 시작했던 <작은 예술가> 프로젝트도 그만의 먹으로 그린 커뮤니티 생성의 수묵화에 해당한다. 그가 관심을 기울였던 대상은 도시빈곤 지역에 거주하는 공부방 아이들이었다. 그는 처음에 이들에게 흔한 방식의 창작프로그램 기획으로 접근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과 자주 만나면서 정작 상호 이해와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공부방 환경개선 프로그램으로 전환한다. 가난이란 이유로 위축된 아이들이 각자 삶의 환경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해 그는 아이들의 교류 공간을 스스로 개선하도록 독려했다. 한지 벽화로 공부방을 도배하고 유리창에 빛을 차단할 스크린을 붙이고 주위에 텃밭을 마련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공간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배우도록 도왔다. 그의 프로젝트는 청량리 사창가 일대, 신림동 달동네 지역, 문정동 비닐하우스촌 등 소외된 아이들의 공부방에서 계속됐다. 돌봄이 없던 아이들이 ‘작은 예술가’로 바뀌어가고 그들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김영현은 공부방 교사들 대상 워크숍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그들 내부의 자율 기제로 정착시키도록 유도했다.

유알아트 김영현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장애·비장애 통합 도서를 연구하고 출판하는 촉각예술센터 ‘빛을 만지는 아이들’을 세우면서 본격화한다. 이 곳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세심하게 만든 그림책을 제작·출판했다. 유알아트의 동료 김지나가 중심이 되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장애 아동을 위해 시작했던 그림책 연구는 점자촉각그림책에 대한 해설서<빛을 만지다>부터 실제 장애인과 비슷한 감각만을 이용해 경험한 내용을 분석해 구성한 점자 그림책들 <지하철감각여행>(2008)과 <감각숫자: 먼지/마리/그루/방울>(2009) 등을 만들어냈다. 점자 그림책 하나 없던 대한민국 현실에서 장애를 지닌 아이들에게 그들의 작업은 보다 큰 상상력을 심어주고 비장애 아이들에게는 감춰진 감각의 차원을 함께 느끼며 공감을 이끌어내도록 도왔다. 

‘당신도 예술가’식의 포맷을 지역들에서 요청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직접 찾아가는 창작프로그램 <걸어다니는 예술가>(2005)가 큰 성공을 구가한다. 그의 문화예술 이벤트는 지역에서 거의 1천여명 규모의 미술축제로 자리잡고 한번에 40여명의 전문 교육자들이 함께 이동하는 큰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성장한다. 김영현은 <작은 예술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역에서 이들 프로젝트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을 막고 지역단위에서 자치의 기틀을 마련하게끔 하는 자생적 구조를 독려했다. 

김영현의 사회적 먹 작업은 갈수록 농담의 묘미가 깊어졌다. 2007년부터는 좀 더 작은 마을 단위로 내려간다. 소위 지역 마을 브랜드 개발에 개입했다. 도시속 빈곤층 아이들에 이어서 이곳에서는 향토 마을 주민들의 문화적 자존감을 심어주는 방식을 고민했다. 접근 방식은 ‘마을의 상호작용디자인’이란 그의 원칙에서처럼 일관되다. 즉 마을의 외관이나 경관이 아닌 그 속에 사는 주민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그들의 삶을 디자인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기본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전통 재래시장의 역사를 재생하고 그들만의 시장 특성을 브랜딩하는 ‘이미지텔링 한산 장터’ (2009), 뭍에 알려지지 않은 섬의 향토성을 살린 생활형 혹은 체험형 관광 커뮤니티 디자인 ‘매물도 사람처럼’(2010~11), 담양창평의 집집마다 슬로라이프를 영위하는 삶을 함께 배우는 ‘슬로시티’(2010~12), 그리고 최근 칠곡에서 7,80대 아버지들이 직접 벌이는 난생처음 요리교실 등 ‘인문학마을 만들기’(2013), 영월 마을 음식과 레시피를 개발해 배우는 ‘생각밥상’ 공감 워크숍(2013) 등 말만 들어도 궁금하고 다채롭다. 

유알아트의 성공과 무관하게 공공예술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면서 김영현은 사회적 먹의 농담이 채색에 먹히는 상황을 목도하기 시작한다. 공공예술이 문화예술 정책 지원구조 속으로 포획되면서 창의성이 규격화하고 박제화는 상황을 본 것이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작업을 시작했으나 예술 활동이 사업이 되고 전문기능직화된 일감을 처리하는 스탭 직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성에 귀기울였다. 그에게 사회적 먹의 농담을 다시 되살릴 전환이 필요했다. 

삶의 기술발전소 

유알아트 김영현은 모든 것을 잠시 놓고 안식년을 가졌다. 프랑스 지방을 거닐다 그는 예술 자체가 일상적 삶을 이끄는 토대이자 원동력임을 깨닫는다. 그는 예술이 그저 권력 구조화된 한국의 상황과 달리 그 나라에 일상적 삶의 자양분이 된 예술의 역할이 늘 건재함을 확인한다. 그는 프랑스에 견줘 우리식 대안을 삶의 지혜, 삶의 기술 등 전통 커뮤니티 가치를 예술 개념화하고 공유하고 공감하는 방법에서 찾기 시작한다. 그것은 결국 ‘적정기술’이란 삶의 기술에 그를 도달하게끔 했다.

김영현의 적정기술의 관점은 한 때 유행하던 제3세계 원조기술이나 요새 지자체가 열광하는 지역경제 대체 에너지 부흥의 논리와는 좀 다르다. 가난한 나라들을 위한 원조기술이나 경제 성장을 위한 대체 에너지적 시각보다는 그는 한 사회가 갖고 있는 로칼 삶의 ‘컨텍스트’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고 본다. 즉 우리네 적정기술의 궁극적 모습은 “우리 삶의 ‘적정한 상태’를 회복하는 혹은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2012년 담양에서 시도했던 전국 화덕 장인들의 경연 프로젝트였던 ‘나는 난로다’ 프로젝트는 적정기술의 재미난 실험장이 됐다. 전국 각지에서 꽁꽁 숨어있던 각종 자작난로들, ‘드럼통 벽난로’, ‘슬로스토브퀸’, ‘거꾸로 타는 삼중 드럼통난로’, ‘파랑골돼지난로’, ‘회전난로’, ‘나무가스화 스토브’, ‘아래로 타는 톱밥난로’ 등이 출품되면서 국내 화덕 관련 적정기술의 생동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이들 출품작들은 자작난로가 이제는 주문형 난로가 되고 자본에 의존하는 마을 기술이 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중요한 대항군 노릇을 했다. 조금 명분을 덧붙인다면 ‘나는 난로다’ 프로젝트는 지역성, 공동체성, 주체성을 와해시키려는 자본주의적 기술에 대항하고 이들 산업자본의 예속으로부터 인간의 삶 기술을 되찾으려는 장인들의 모의이자 사건이었던 것이다.    

김영현이 보기에 자본주의적 기술은 무엇보다 그 효과면에서 인간이 지닌 창의성을 급격하게 상실하도록 유도했다는 문제를 지닌다. 이에 대해 삶의 토대로부터 출발하는 예술 즉 ‘오래된 삶의 기술’에 대한 적정기술의 원칙적 논의가 그에게 필수적이었다. 보다 본격적으로 이와 같은 적정기술로 매개되는 삶의 기술에 대한 전망은 10여년 이상 유알아트의 실천적 위상으로 삼았던 ‘공공문화개발센터’의 명패를 내려놓고 2013년부터 ‘삶의기술발전소’로 유알아트를 새롭게 재정비하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최근 도시형 적정기술의 상설 전시장 <자연의 부엌 – 마음먹기>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도시형 장터 ‘늘장’에 새롭게 오픈했다. 

이 상설 전시공간에서 방문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음식을 화덕에 굽고 커피를 로스팅해 시식하기도 하고 빗자루를 만드는 워크숍을 받기도 하고 자작형 햇빛 음식물 건조기 제작법과 생태계 순환의 원리를 배울 수도 있다. 이 상설 공간에는 햇빛온풍기, 햇빛온수기, 장작로스팅기, 흙오븐, 가마솥황토화덕, 빗물저금통, ‘말리’(자연친화형 음식물 건조기) 등의 도시형 적정기술을 보고 실험하고 느끼고 배우고 서로 나누는 재미를 얻는다. 결국 ‘자연의 부엌’은 삶의 기술을 공유하는 발전소 사업 중 하나의 중요한 모델인 것이다.

유알아트 김영현은 단순히 적정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제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술가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 삶과 문화로 전화되는 적정기술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는 삶의 기술 매개자이기도 하다. 그는 예술과 기술의 차이는 그 안에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적정기술은 그 자체의 기술적 매력을 넘어서서 그와 함께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심하게 쪄든 우리네 삶의 태도와 감성을 바꾸는 힘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중요하다. 그래서 남은 삶을 예술 밖에서 예술을 사유하는 방법론으로 ‘적정기술’의 칼을 빼든 그의 용기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다만 최근 젊은 작가들 사이에 부는 제작문화의 기술주의적 열광에 적어도 그가 지닌 ‘적정기술’의 인문학적이고 생태학적 접근이 차용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사진출처 : 문화예술교육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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