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임의 미디어 읽기]대학생 X맨, 대한민국 X맨(38호)

2014년 5월 9일culturalaction

대학생 X맨, 대한민국 X맨

이종임(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happydayljn@naver.com

2014년 4월 12일 방송된 SBS<그것이 알고 싶다>편에서는 “대학생 X맨”이라는 부제로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제작진도 처음 제보를 받고 괴담쯤으로 여겼다는 “대학생 X맨” 내용은 실제 존재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였다. 방송국으로 제보된 내용은 ‘동일인물이 전국 곳곳의 대학에서 몇 년째 신입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피해사례도 접수가 되면서 제작진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방송에서 다루기로 결정한다.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필자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동일한 인물이 매년 학기초 ‘신입생’을 자처하며, 동아리 가입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을 하고 있었고, 그 횟수는 이제 6년을 접어들고 있다. ‘대학생X맨’은 거짓 신입생임이 들통 나지 않도록 미리 동아리방에 전화를 걸어 회원들의 ‘과’를 묻는 치밀함을 보였고, 신입생에게 친절한 선배들의 심리를 이용해 돈을 빌리고 잠적을 하는 등의 대범한 행동을 보였다. 이러한 대범함은 점점 더해져서 실제 모 대학 신입생의 개인정보를 훔쳐 주민등록증 사진을 자신의 사진으로 바꿔 새로 발급받은 후 학생증, 도서관 출입증, 수강신청 등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자신의 사진으로 발급받았다. 또한 ‘진짜’신입생에게는 문자로 ‘오리엔테이션이 미뤄졌다, 내가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왔느냐’는 협박성 문자를 보내, 본인의 학교생활에 방해가 된다며, ‘진짜’의 학교출입을 막는 대범함도 보였다. 피해 학생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협박받는 두려움에 대인기피증에 시달시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대학생 X맨의 행동이다. 그는 카메라 렌즈 앞에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동아리 활동이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사진촬영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의 동아리회원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종교도, 동아리 성격도 중요하지 않았다. 불교, 기독교 등 종교활동도 다양했고, 사회참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모 대학에서는 그의 이러한 행동이 발각되면서 반성문을 쓰고 사과를 하기도 했지만, 그의 이런 행동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방송에서는 그의 행동을 ‘리플리 증후군’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신정아’라는 인물이 자신이 학력을 위조해 계급상승, 권력을 얻기 위해 했던 행동패턴과 유사하다는 진단이 있기도 했다.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행동과 말,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용어이다. 이와 관련된 영화들도 계속적으로 제작되어 왔는데, 제작자 입장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거짓말’에 투영되는 방식이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지만, 관객들 입장에서도 현대인들의 내면에 담겨있는 욕망을 꺼내보게 만드는 카타르시스를 유발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전문적인 심리적 분석을 통해 한 개인의 일그러진 욕망이 행동과 말로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분석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대학생X맨’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유복한 강남구에 거주한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꽤 인지도가 있는 교수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신의 계급상승의 욕망이 투영된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분석의 결이 요구되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 청년의 가정환경을 주목했는데, 자신 이외의 형제들이 모두 국내에서는 좋은 대학이라고 불리는 ‘SKY’에 입학했지만, 본인만 ‘그저 그런’ 대학에 합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러한 신입생역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친구 아버지가 본인이 합격한 대학을 폄하하던 얘기를 들었던 순간이다. 이후 ‘대학생X맨’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대학의 신입생역할에 돌입한다. 실제로 대학생X맨은 특정 대학의 로고가 박힌 필기도구, 노트, 점퍼 등까지 가지고 다니고 있으며, 그를 전혀 모르는 타인들의 눈에는 그는 특정대학의 학생인 듯 보였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수능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점퍼 혹은 티셔츠 등을 입고 시험을 치렀다는 내용을 올린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촌형의 기운을 받아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혹은 ‘대학을 한학기만 다니고 수능 시험을 다시 치루는 학생으로 보이고 싶어서’ 등등 이유들은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의 이유로 귀결된다. 우리사회가 인정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모두가 하나의 방향으로만 걸어갈 것을 강요한다. 대학의 가치와 순위를 평가하고, 전공보다는 학교의 이미지와 순위가 중요하다. 특정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성인이 된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어느 정도는 성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생 X맨은 이러한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어도, 자신의 행동이 발각되어도, 반성문을 쓰고 모욕감을 얻는 타인의 지적을 받아도 ‘신입생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서는 동아리 선배들에게 이 대학은 후져서 다니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부모세대들로부터 자신이 받았던 모욕감이나 학벌중심의 사고가 또 다른 타인들에게 전달되는 순간이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대학생X맨’은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대학생X맨’ 사건은 우리사회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가족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될 수 없다. 타인의 정보를 도용해 자신이 그의 삶을 사는 것 역시도 죄책감이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잘못된 사고는 그 어떤 행동도, 범죄도 당연히 해도 되는 것으로 사유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 대학생X맨의 모습은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과 닮아 있다. 단순히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한 개인의 문제로 정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벌써 20일이 넘어가는 세월호 참사는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선장과 항해사들의 문제만으로 돌릴 수 없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돈, 이익’중심의 사고가 초래한 결과이다. 청해진 해운, 구원파, 언딘, 해양경찰, 그리고 정치인들의 ‘종북’발언까지 모두가 닮아있다. 자신의,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매년 신입생으로 동아리에 가입하고, 선배들에게 돈을 빌리고, 반성문을 쓰고,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라고 해도 매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고, 타인의 정보를 도용해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 특정 대학의 신입생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대학생 X맨의 모습과 말이다.  또한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방송사의 모습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X맨’은 너무도 많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 어떤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인지 찾기 어려울 만큼. 그러나 이제는 ‘대한민국 X맨’을 찾아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야 할 때가 왔다. 그들에게 자신의 선택과 잘못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옳고 그름을 뼈 속 깊이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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