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배 밖으로 뛰쳐 나가야 한다 -마포주민들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문화제”에서(38호)

2014년 5월 9일culturalaction

배 밖으로 뛰쳐 나가야 한다

-마포주민들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문화제”에서

최미경/문화연대 활동가

chou78@daum.net

갑자기 비가 오고 어두워진다. 어떤 옷을 입을까 생각하다, 검은 가디건을 꺼내입는다. 저녁 7시, 마포구청 앞으로 향한다. 비가 오고 추워져서,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사람들이 많다. 마포구청 앞에서는 ‘미안하고 부끄럽고 화가 난 마포주민들의 추모문화제’가 준비 중이었다. 자리에 앉아 문화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옆에 있는 여성분 한분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가수 정민아씨의 가야금이 울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고,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이므로, 우리 스스로 바꾸어야 한다”고 정민아씨가 이야기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발언들이 이어졌다. 합정역에서 마포구청역 사이 노란 현수막 달기에 동참한 주민들의 이야기, 그리고 섬돌향린교회 교인이신 최현숙님의 발언이 이어졌다. “세월호가 침몰했죠. 활동보조인이 없어 중증장애인 송국현 씨는 화재로 목숨을 잃었어요. 도대체 하느님이 있긴 한 것인지 절망스러웠어요. 그럼에도 교회에도 나가고, 노동절 집회도 나갔어요. 혼자 있으면 더 무기력하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주민들의 합창이 이어졌다. 옆에서 흐느끼던 여성분의 어깨가 계속 들썩거려도 애써 외면하며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지막에 주민들의 합창을 듣다,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정민아 노래 중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란 가사, 임형주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마포주민들이 부르는데,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란 가사가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했던 장면들, 검은 바다 속에서 죽어간 그 생명들이 다시 어떤 장면처럼 펼쳐지면서 눈앞을 가린다.
추모문화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망원시장은 하루 장사를 마감하느라, 상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 국수가게에서 먹는 멸치 국수 국물은 예전과 변함없이 따뜻하다. 집에 들어가면, 나를 반겨주는 고양이들이 있고, 하루가 끝나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가난한 방이지만, 피곤한 몸을 따뜻한 방바닥에 누일 수 있다. 그리고 출근하고, 일을 하고, 집에 가서 잠을 자는 일상. 그날 이후 3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직도 찾지 못한 생명들이 있는데, 벌써 그날이 잊혀지려 한다. 문득, 나랑 친한 사람이 세월호에 탔었어도, 내 일상이 이렇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나의 지인이 세월호에 탔었더라면. 그 차이가 이렇게 다른 시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니, 나(타자)라는 존재가 비겁하게 느껴진다. 과거의 죽음들을 떠올린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죽음, 쌍용차 해고노동자 및 가족 25명의 죽음, 밀양 이치우 어르신의 죽음, 그리고 장애등급제 희생자 송국현 씨의 죽음, 이 사회적 죽음들은 이제 영정사진을 놓을 자리도 없을 만큼 많아지고 있다. 이 죽음들에 대해 누가 기억하고, 누가 책임지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난 어떤 죽음에 대해 아파했었다. 그런데 잊어버리고, 내 생존을 근거로, 사회적 죽음들을 내 삶에서 차단한 채로, 살아왔다. 솔직히, 또 그럴까봐 겁이 난다. 이번에는 겁쟁이가 되지 말아야지, 다시 한 번 중얼거려본다. 무기력증에 빠져, ‘해봤자 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해서, 또 숨지 말아야지. 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변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이별이 오더라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지금 여기, ‘오늘’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가야 할 그 ‘오늘’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세월호 바깥에서 TV로 세월호 안을 관망하는 것이 아닌, 곧 침몰하게 될지도 모를 세월호 안에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작은 움직임들이 시작되고 있다. 마포구 주민들의 현수막,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안산에서 있을 세월호 국민 촛불 행동, 청와대 만민공동회 등. 이제 이 움직임들이 모이고 모일, 설레는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시간까지 “미안하다”란 단어 뒤에 숨어, 어떤 사람이 대신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움직이고 작업하고 행동하는 것, 내 자신부터.
세월호를 탔던 사람들이 죽었고, 나의 일상은 세월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리고 실제 나의 시공간이 배 밖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 세월호 안에 함께 있다. 입시제도라는 억압에 있는 청소년들이, 학자금 대출과 월세에 저당잡힌 우리의 삶이, 정리해고 때문에 지금도 거리에 있는 노동자들이 함께 세월호를 타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곧 침몰한다. 배 밖으로 뛰쳐 나가야 한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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