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사네 TV보기]<밀회,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 –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하여(37호)

2014년 4월 24일culturalaction

<밀회,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 

 

–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하여

박은정

ciudad80@naver.com

여객선이 침몰하여 TV에서 300여명이 배 안에 갇혀 그대로 가라앉는 참사를 생중계로 봤다. 선장은 배를 가장 먼저 버리고 구조됐고 재난을 구조할 중앙안전대책본부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락가락했다. 참사 현장에 한 국가의 총리가 오고, 참사 지역 도지사가 오고 각계각처 장관들이 왔지만 물세례 받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자리를 급하게 벗어나기 바빴으며 유족들에 둘러싸여 차 안에 꼼짝없이 갇혀있기까지 했다. 선박회사 대표는 현장에 나타날 엄두도 못내고 병원에 입원했다. 세월호 침몰로 300여명이 사망 및 실종됐고 한 학교는 한 학년이 없어지는 전대미문의 참담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유족들의 구조수색에 대한 요구에 기자들의 가차 없는 질문들에 답할 의무가 있는 권한 가진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 재난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급하게 피하는 모습만 TV에서 보았다.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신문 사설 표현대로 상황을 책임지고 판단하는 관계자가 없다고 말한다.
 며칠 TV 속 지도자들을 보면서 홍리경 감독의 <탐욕의 제국>의 한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산성반도체 산업재해 인정에 관한 국회노동환경위 근로복지공단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 최우수 부사장은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얼굴을 계속 외면한다. 삼성반도체 근무하다 뇌종양을 얻은 한혜경씨는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의 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해달라고 최 부사장에 다가왔다. 부사장은 눈도 못 마주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의문이 들었다. 왜 상대방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외면하는 것일까? 삼성전자 여러 부사장중 한 명으로 회사를 대변하여 국정감사 자리에 나왔지만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안다. 부사장도 사람인지라 삼성반도체 직원들의 불치병에 마음 아프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처지일 것이다. 비겁하지만 차마 피해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마음 약한 사람으로 봐 줘야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세계 1위 반도체 회사의 부사장인데 자신이 속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중인 피해 당사자의 눈도 못 마주치는 행동은 이상했다. 고위 임원으로 직책과 권한이 있고 책임이 있을 텐데 안절부절 회피하는 모습이 이번 참사를 대응하는 지도자들의 모습과 같았다. 왜 이런 것일까? 어느 누가 봐도 높은 자리에 있고 권한도 많은 사람들인데 이렇게 무책임할 수 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드라마 <밀회>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이 연관되어 고민해봤다.
  JTBC <밀회>의 주인공 오혜원(김희애)는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으로 뛰어난 실무자이다. 혜원을 둘러싼 수퍼 갑 셋이 있다. 갑중의 갑 서한그룹회장 서필원(김용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자는 수치가 없다. 국밥집 조선족 아줌마가 측은하여 한번 품어야겠다며 소풍 한 번 주선하라 한다. 아트센터 대표 서영은(김혜은)은 서회장의 딸로 위치 확실한 갑이다. 혜원에게 “연봉 1억짜리 기획실장이라는 게 한다는 것이 겨우 상사 뒤나 졸졸, 친구 겸 시녀 놀이, 네 거 진짜 뭐있어? 네가 사는 집도 우리 거, 차도 우리 거, 가정부도 우리 거.”라며 상대방을 뭉개버린다.  그녀 또한 모든 것을 주기만 위치에 있어 심술 맞고 변덕스럽지만 위치 확실한 갑이기에 노력 안 한다. 나머지 갑은 한성숙(심혜진) 서한예술재단이사장으로 서회장 후처다. 성숙은 회장의 딸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위치가 불안한 갑이다. 위치 확실하게 한 몫 단단히 잡으려고 온 몸의 촉각을 세우고 있다. 혜원은 세 명의 수퍼 갑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치 살피고 머리 굴려가면서 예술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예술재단의 대표를 꿈꾸고 있지만 자신이 우아한 노비라는 것을 안다. 자신에 의해 음대 교수가 된 남편(박건형)에게 교육자적 사명감과 양심이 없다는 것도 안다. <밀회>의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PD는 이해가 맞을 때의 친절함과 이해가 맞지 않을 때의 냉정한 세계를 음대입시 비리와 예술재단을 중심으로 소름돋게 그려내고 있다.
 병원 접수대의 어린 간호사들이 스마트 폰 하며 제대로 접수를 받지 않아 몇 번이나 접수를 다시한 친구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의 인상 깊음을 이렇게 말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가진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에 놀랍다’고 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웅장한 이름에 걸맞게 전 세계 부유한 단골손님을 가진 이 호텔의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예술가와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호텔의 총책임자에 걸맞는 취향과 책임을 보여준다. 보라색 연미복과 콧수염은 반듯하고, ‘레어 드 파나슈’ 향수를 어디서든 아낌없이 뿌렸으며, 서정시를 읽고, 프랑스 궁정에서나 먹었을 법한 멘델스 빵집의 ‘코르티잔 오 쇼콜라’를 고집했다. 호텔의 예술을 향유할 줄 아는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은 지나쳐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은백의 부호 마담들을 사랑했을 정도다. 예술의 낭만에 취한 허영심 많은 호텔 지배인이만 직업 전문성은 자신뿐 만 아니라 로비보이<토니 레볼로리)에게 조차 잔인할 정도로 엄격하다. 하지만 결코 착취하지 않는다.
 호텔 소유주가 아닌 호텔의 총책임자 구스타브부터 호텔 말단 직원 로비보이의 투철한 직업 전문성과 멘델스 빵집의 힘 없는 여자 제빵사 아가사(시얼샤 로넌)가 예술의 경지로 ‘코르티잔 오 쇼콜라’를 만들며 자신이 제빵사임을 잊지 않는 자부심을 보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오늘의 모습에 고민이 든다.
 자기 직업 대한 의식과 혹독한 전문성, 책임감과 숭고한 의무…… 우리는 왜 자신의 직업에서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까? 이게 다 돈 때문일까? 막대한 책임과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선장과 기관사들은 6개월에서 1년 계약직이 대부분이었고 고위 공무원과 고위 임원은 그들이 가진 직책에 비해 아무런 권한과 책임도 행사하지 못하는 것도 여차하면 수퍼 갑들한테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일까? 이익을 얻기 위해 사람을 쓰고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익숙해져서일까? 이 익숙함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밀회>PD의 말대로 ‘적당히 세상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온’ 혜원은 20살의 천재 피아니스트와 사랑에 빠지고, 모택동 주석이 대문호 루쉰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학교에서 만 인민이 다 평등하고 내가 내 주인임을 배운 조선족 여성에게 물세례를 받은 이후로는 흔들린다. 드라마가 수퍼 갑의 위치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갑 아래 인간들이 파국으로 치닫고 온갖 비굴함과 찌질함이 그려 질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전작 <아내의 자격>과 같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순수일까? 드라마 무대가 대치동 학원가에서 음악이라는 예술세계로 이동했으니 순수함이 더욱 커 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 소유주는 혈연하나 안 섞였지만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호텔 지배인에게 기꺼이 호텔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호텔의 가장 높은 지배인은 말단인 로비보이를 기꺼이 제자로 받아들이고 손수 엄격하게 가르친다. 구스타브는 로비보이가 사랑하는 아가사가 순수하기 때문에 결혼을 해도 좋다고 하는 미덕과 빌어먹을 이민자라도 체포할 수 없다는 인류애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을 구원해주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가 나왔다. 순수와 예술에 대한 낭만, 그리고 사랑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고 잃어버린 자부심을 찾게 해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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