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스코프]송현동 부지에 호텔건립을 막아야 하는 이유(37호)

2014년 4월 24일culturalaction

송현동 부지에 호텔건립을 막아야 하는 이유

박선영/문화연대

hinggy@hanmail.net

4월 16일, 학교 상대정화구역(학교 경계 50~200m)에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호텔건립을 허가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개정안은 옛 미국대사관 숙소부지인 송현동 터에 관광호텔을 지으려는 대한항공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언론과 시민사회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이미 송현동 부지 호텔건립 건은 학교보건법에 막혀 대법까지 가는 재판 끝에 건립이 불가능 하다는 판결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규제개혁을 내세우며 학교보건법에 의해서 막혀 있는 호텔건립을 허가하겠다는 뜻을 비치면서 이 문제는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재점화 되었다. 현재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는 통과되지 못했지만 정부와 규제에 의해 호텔건립을 하지 못하는 대기업들은 개정안 통과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송현동 부지 관광호텔 조감도
그렇기 때문에 송현동 부지의 호텔 건립문제는 정부의 규제개혁 정책과 분리해서 볼 수 없는 문제이다. 이미 대한항공 측은 호텔 건립 허가에 대한 요구를 정부쪽에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번 규제개혁에 논의에서도 이건이 우선적으로 제안되었던 것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송현동 호텔건립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겠다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는 규제개혁 정책의 실체를 보여준다. 규제개혁 정책으로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 쪽은 대기업들과 같은 자본들이 될 것이다.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빈부격차의 심화와 불안정 고용 문제도 심각해 질 것이다. 그리고 규제개혁의 방식도 중장기적인 계획을 통해서가 아닌 사안별로 진행된다는 점도 문제이다. 규제를 풀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그에 따른 효과와 득실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재하고,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앞 다투어 규제개혁을 통한 실적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만약 관광진흥법이 개정되어 호텔을 학교 근처에서도 자유롭게 지을 수 있도록 한다면, 도심 곳곳에서 호텔과 같은 대형 건축물들이 여기저기서 지어지는 난개발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규제개혁 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은 경제적 이익이라는 하나의 가치에만 집중이 된다는 것이다. 본래 규제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지는 데는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송현동 부지만 해도 주변에 경복궁, 북촌, 서촌, 인사동 등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역들이 밀집해 있고, 그 가치는 경제적 수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앞서 언급했던 학교정화법도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보존하고자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제도이다. 정부는 이런 다양한 이유에 의해서 생겨난 제도들을 마치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인양 몰아가고 있다.
정부가 호텔 건립을 위한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로 서울시의 관광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2012년에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내 호텔 평균 이용률은 78.9%이다. 그리고 왜래관광객 증가율에 비해 호텔 증가율은 더 높은 편이기 때문에 서울시의 숙박시설은 전혀 부족한 것이다.
설령 숙박시설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서울의 중심지에,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지역에 굳이 호텔을 지어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관광지와 가까운 곳에 고급 숙박시설을 제공해서 관광수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생각은 관광을 외화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한국 관광정책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동안 관광정책은 K-pop과 한류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해서 해외관광객들을 모으기 위한 전략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고려가 없는 오히려 그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외화벌이와 국위선양이라는 이유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인사동이나 명동과 같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들은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배제하고 주변부로 쫒아버렸다. 우리가 흔히 관광산업의 선진모델로 이야기하는 유럽의 경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것은 고급 숙박, 쇼핑 시설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유럽의 어느 도시의 조그만 거리의 매력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송현동 부지의 호텔건립의 문제는 경제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작동되어온 우리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자본은 경제적 이윤추구를 위해서 법마저 바꿔버리려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근대화 과정이후 계속 반복되어온 이러한 역사의 반복을 이제는 끊을 때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송현동 부지 호텔건립을 반대해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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