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혜화동, ‘재능교육 투쟁승리를 위한 집중 결의대회’에서(37호)

2014년 4월 24일culturalaction

혜화동, ‘재능교육 투쟁승리를 위한 집중 결의대회’에서

 

최미경(문화연대 활동가)

chou78@daum.net

곪고 골아서 아프다 못해 쓰려보이는 어떤 상처가 있다. 어느 샌가 고통과 상처가 보이면 부끄럽게도 잔뜩 움츠리고 피해버리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한다. 요 며칠 더욱 그러하다. 집에 TV가 없는 관계로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세상소식을 접하는데, 요즘 세월호 참사이후 인터넷에서 알게 되는 소식들은 세상에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처음에는 1명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SNS를 들여다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때로는 음모론에 빠지면서, 세상에 진실따위는 없구나라는 참혹한 생각에 들기까지. 잠에 빠졌다가도 다시 문득 깨면, 이리저리 다시 소식들을 찾는다. 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생명의 구조인지, 어떤 진실을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의 진심어린 사과를 듣고 싶은 것인지.
지난 4월 18일 금요일, 혜화동을 찾았다. “재능교육 투쟁 승리를 위한 지원대책위”가 혜화동 재능본사 앞에 세운 천막농성장에 발걸음을 했다. “농성투쟁 6년!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단체협약 원상회복 쟁취”를 위한 4월 집중결의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재능교육 투쟁승리를 위한 지원대책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수수료제도 독소조항 폐지, 하절기 지원금(휴가비 )지급, 2013년 단체협약 체결 등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재능투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명자 지부장의 인터뷰 참조) 재능교육 투쟁사업장은 2000여일을 넘긴 장기투쟁사업장이다. 그렇게 긴 시간동안 사람들은 거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아픔을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잘 알지 못한다. 부끄럽게도 내가 유명자 동지를 처음으로 가까이 본 건,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 뒷풀이에서였다. 그때 유명자 동지에게 연극이 어땠냐고 물었는데, 말없이 눈시울이 촉촉해졌던 모습이 기억난다. 옆에 있던 다른 지인은, 연극에 대해 잘 몰라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연극이긴 한데, 해고노동자들에게는 잔인한 것 같아서_어쩌면 무대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연기를 하기보다는 평범하게 일하면서 살아가고 싶을지도 모를 그 마음이_슬프다고 했다. 2000일이 넘는 시간을 거리에 있는 노동자에게 무대란 것은 관중이 보듯, 즐겁고 화려한 것이 아니란 것을 다시 문득 생각하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단지 화려한(?) 무대가 끝나고 나서 천막농성장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쓸쓸하다고 순간적으로 느낄 뿐, 천막에서 4계절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 마음의 곁에 얼마나 다가설 수 있을까.
재능투쟁 집중 결의대회에 참여한 가수 박준 님은 무대가 끝난 후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같은 날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지원을 받지 못해, 불이 난 집에서 화상을 입어 돌아가신 故 송국현 동지의 촛불추모제가 열리고 있었다. 박 준 동지가 노래와 노래 중간에 이런 말을 했다. 3미터를 걸어가지 못해서 죽어야 했던 장애인을 기억하면서 장애 해방가를 부르겠다고. 3미터의 거리, 어쩌면 사람과 사람은 그 3미터를 이해하지 못해서, 누군가에게는 3미터가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거리이고, 누군가에는 바다에 떠 있던 1시간이 생존을 결정짓는 시간이었음을 알지 못해서, 우리는 각각 3미터씩, 1시간씩 떨어져 있고, 그만큼 서로를 알지 못하는 시공간에 있음을.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계단은, 검은 바다만큼이나 삶을 아득하고 힘겹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각자의 삶을 근거(그것이 이윤이든 생존이든 정치적 목적이든)로 타자의 삶에 단 한 발짝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중가수 박준
이리저리 바닥을 치는 마음과 ‘그래도 살아야지’하는 어떤 마음 때문에 뒤척뒤척하던 어느 날, 새벽에 최규석 작가의 ‘송곳’이란 만화에서 본 마지막 대사, “당신들은 안 그럴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문득 내가 요 며칠 이리저리 찾고 있었던 것은 내가 다가서지 못하는 혹은 일부로 다가서지 않는 어떤 고통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딱 3미터의 거리와 1시간의 시간만큼 난 세상의 고통에 다가서지 않고 있다. 다가서지 않고 있는 나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해서 이리저리 뒤척였다고 생각하니, 버스를 타겠다는 장애인에게 최루액을 뿌리는 세상만큼이나 내 자신에게 소름이 끼친다.
언론의 오보경쟁, 사람들의 추측,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그리고 차마 담을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는 웹의 여러 글들 속에서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타자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잠깐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우리’여도 좋다고, 고통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어떤 이의 따뜻한 마음을 보면서, 혜화동 언덕길이라 부르는 그 길에서 다시 어떤 이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이와 내가 살아가는 곳, 서 있는 데가 달라서 혜화동의 풍경을 같은 마음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릎담요를 잠시 함께 덮고 있을 수는 있을테니. 비록 그 풍경이 그이에게는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아픔이고, 내게는 잠시 다녀가는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최규석 작가의 <송곳> 2-3, 마지막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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