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를 이해하기 위하여]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36호)

2014년 4월 9일culturalaction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임효진 (reykjavik59@gmail.com)

 가장 손쉬운 농담거리는 본인이다. 굳이 타인을 언급하면서 긴장을 만들 필요 없이 나에 관한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유머의 기본. 정석으로 치면 지수와 로그 정도에 해당한다. 가수 동물원 3집의 곡들 중에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요즘 사는 게 어때?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안부 같은 질문에도 나는 숨이 턱턱 막혀온다. 매번 그럴 때마다 동물원 노래를 귀에 꼽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지위를 ‘넝~담~’으로 격상시켜야 할 필요를 자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느 장소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기본적으로 생략하게 되는 질문지가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 캠퍼스나 강의실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교활동을 한다고 했을 적에 우리는 당신의 직업에 대해서 물을 필요가 없다. 학번을 묻고 호칭을 정하고 조별과제 역할분담은 “카톡에서 얘기해요.” 라고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카카오톡은 메신저의 기능뿐만 아니라 준 sns적인 역할도 수행 한다.(카카오스토리라는 것이 생기기 전부터, 혹은 카카오스토리를 이용하지 않는 일반 사용자들에게도) ‘느낌/기분/감정’에 따라 프로필사진이며, 문구가 바뀌는 것으로 다들 썸남썸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수시로 카톡창을 열어본다. 엄지가 굵은 사람들은 주의해야한다. 보이스톡(카카오톡 내 무료 인터넷 전화 기능)이라도 누르는 날엔 내가 널 지켜보고 있음을 알리는 누추한 고백으로 번지고 말테니까. 취업시즌에 알맞게 많은 친구들의 프로필에 이력서용 사진들이 걸려있다.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인재상으로 거듭난 얼굴들을 보면서 토익학원 재등록을 했다. 한 달만 더….
 취업(혹은 졸업을 위한)의 첫 문턱이라고 하는 토익을 위해 처음 학원에 발을 들여 놓았을 적만 해도 나의 마지막 알량한 자존심은 (바보 같게도) 목표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인생에 장기적인 계획이라는 것은 존재한 적이 없었고 토익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4살 정도 많은 언니가 그랬다. “그래 내가 토익에 미쳐있을 때가 딱 니 나이 때였지.” 통계학적으로 산출된 자료는 없지만 때때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20대에 종교대신 토익이라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샘이 톰에게 줄 자료를 사무실에 두고 왔다거나 상사에게 새로 생긴 레스토랑을 추천하거나 3번 도로 교통정체 상황에 대한 듣기지문을 받아 적다 보면 영미권 나라에 대한 동경 같은 건 (차라리) 그랜드캐니언같은 대자연으로 옮겨간다.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리트윗을 한 6바이트짜리 문구, 좌익 우익 토익. 우리 친구들의 공통된 아비투스가 종로와 강남의 토익학원 일대에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스터디에서 이뤄내는 것은 마의 900고지가 아니라 외로운 취준생들의 연애혁명임을 거창한 세대론까지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살아남아 나이를 먹으면 이토록 즐거웠던 토익의 추억에 대해 맥주집에서 열렬히 피력하게 될 것이다. 팔짱을 끼고 사원증을 목에 건 삼열종대의 직장인 게릴라 부대를 만나면 움츠려들던 그때의 우리도 인생의 타임라인에서 이렇게 기꺼이 취직을 이뤄냈음을 자랑스러워하며.
 강의실에 일렬로 들어찬 긴 책상 끝에서 멍한 표정을 한 낯익은 그러나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 동창생을 발견한다. 어렴풋이 교복 입은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을 걸어보진 않았다. “닥치고 외워 이 XX들아.” 수업시간의 2/3를 목이 터져라 윽박지르는 데 할애하는 토익강사가 과사무실에서 걸려오는 취업유무 설문조사보다는 훨씬 다정하게 들리는 4월, 토익은 정말 재미있지 아니할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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