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금상의 다문화사회 읽기]한국전쟁과 다문화(20호)

2013년 6월 19일culturalaction

[권금상의 다문화사회 읽기]20호

 

한국전쟁과 다문화

 

권금상/ 사람숲다문화연구소 대표

(인터넷 어린이인권 신문 ‘우리아이뉴스’ 편집인)

 

6월은 현충일, 한국전쟁 기념일 등 나라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하고 희생한 이들을 예우하고 애국정신을 기리는 보훈의 달이다. 얼마 전 신문기사로 초등학생들 중에는 현충일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어린이들이 절반이 넘는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놀라운 일처럼 느껴지지만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전반적 통일교육 과정이 교육에서 관심 밖 영역으로 밀려나 매우 축소되고 제한적이라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통일교육과 안보교육이 뒤섞여 북한사람들을 협력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지 혹은, 적대적으로 인식해야하는지 많은 이들이  통일인식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현실이다.

현충일은 the Memorial Day로 전쟁을 경험한 많은 나라들이 나라별로 기념일을 갖는다. 이날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과거가 끝나지 않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발발한 전쟁은 영어로는 ‘Koean War’로 불리며 남북이 규정하는 용어는 달라,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으로 명명한다. 한국전쟁에 관한 명칭은 한국 내에서도 이견을 갖는데 공식적인 용어가 통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을 통해 예전처럼 6.25라는 날짜로만 기억하자는 주장이 등장했고 통일을 인식하는 관점을 반공안보냐 평화냐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하는 첨예한 문제는 또 다시 호명과 직결된다. 호명이란 개념과 인식을 규정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는 기재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구성하는 상호작용을 한다.

우리의 근현대사 역사에서 한반도의 국가적 정체성을 규정한 커다란 사건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일본국가의 제국주의적 호전성에 의해 발생되고 귀결된 연역적 문제이다. 다시 말해, 남과 북이 갈라졌고 가장 최근에는 개성공단, 연평도, 천안함 등 우리사회를 긴장으로 몰고 가는 일련의 갈등 역사를 추적하면 일본의 침략이 전쟁을 불러온 구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 침략과 한국전쟁의 연계성을 강조하지 않아왔기에 우리들의 기억은 재구성된다. 이론가들에 의하면 기억이란 단순한 저장과 인출체계로 설명하지만 중장년층에게 한국전쟁이란 개인적 경험과 집단적 기억, 사회적 구성이 범벅된 공포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는 전쟁이 ‘기억’으로 남되 ‘추억’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63년 전 과거가 현재에도 이어지는 것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살아있기에 우리민족 모두에게 전쟁은 아픔일 수밖에 없고 남과 북의 정치는 이러한 아픔과 공포, 긴장 등과 관련한 잊기 어려운 전쟁의 기억을 전략적 호명으로 가져가며 끊임없이 우리의 머리조차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림> 고야 Francisco Goya 작. ‘1808년 5월 3일’ (1814)

 

<그림> 피카소Pablo Ruiz Picasso 작. ‘한국에서의 학살 Sacre en Coree’ (1951).

 

화가 피카소의 작품에는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이 있다. 제목은 ‘한국에서의 학살’(1951)로 한국전쟁에서 양민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주제로 하여 전쟁의 참혹함과 비정함을 고발한 것이다. 이 그림은 고야(1746-1828)의 스페인 침공 프랑스 군에 의해 저질러진 양민학살을 고발한 ‘1808년 5월 3일(1814)’ 을 패러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한 소통환경과 달리 소통의 창구가 제한적이었던 1800년대 문화예술가들의 예술적 활동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드러낸 예술적 표현과 호소는 미디어환경에서의  이슈 확산이나 아젠다 세팅과 같은 역할을 담지 할 수 있었다. 고야와 피카소 모두 전쟁에서 양민들이 사살당하는 모습을 주제로 하지만 특히 한국에서의 학살에서 피해자들은 여성과 아이들로 그려져 젠더적관점이 부여되었다. 학살당하는 집단은 불가항력의 비무장 양민들이다. 폐허가 된 산하, 벌거벗은 여성, 임산부, 노인, 아이들이 무장을 갖춘 터미네이터 무리의 총뿌리에 학살당하는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이 그림이 한국에서 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피카소가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1980년대까지 반미 예술품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전주의자였던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전쟁 반대였고 휴머니즘의 강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전쟁 발발 63년이 되는 지금은 통일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역사의 시점이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 전통과 같은 언어를 가지고서도 전쟁으로 인해 인민과 국민으로 분리되고 이질적 체제와 이념으로 인해 다문화 아닌 다문화로 분화되었다. 그러한 결과 우리사회에서 북한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은 외국인들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일통일에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독일통일 사례를 통해 통합 준비의 실험의 시간이 주어져 긍정적인 대안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평화적 공존을 위한 실험으로서 전 세계에 유래 없는 정치경제문화 통합의 독보적 사례일 것이다.

보훈의 달, 남북분단은 한국 사람들 모두가 짊어져야 할 원죄이며 풀어야 할 과제라는 성찰적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 한, 이 땅의 평화는 요원 할 것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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