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역을 살리는 사회적경제의 성공조건(20호)

2013년 6월 19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요즘 “협동조합”이 대세입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협동심”이 높았는지, 왜 갑자기 멀리하던 “협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여하간 “자고 일어나니”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구조화된 위기에서부터 마을 커뮤니티를 위한 대안에 이르기까지 다목적 처방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이런 비슷한 유행이 불과 얼마 전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사회적 기업”입니다. 사회적 기업을 하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애지중지하던 그 사회적 기업 말입니다. 이번 <문화빵>의 특집은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기업입니다. 이미 협동조합이라는 “신상” 앞에서 퇴물 취급을 받고 있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는 협동조합의 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① 지역을 살리는 사회적경제의 성공조건 / 김태인(광명시 사회적경제기업지원센터)

② 사회적기업의 가치에 대해 묻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 안태호(부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③ [좌담]사회적기업, 사회적기업을 넘어서다. /정리 : 이선영(프리마켓&문화연대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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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0호

 

지역을 살리는 사회적경제의 성공조건

 

김태인 (광명시사회적경제기업지원센터)

 

 

#1 우리 동네에 이런 기업 하나 있으면…

얼마 전 친구가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클래식 공연 초대권 티켓을 넘겨줘 갔었다. 주제는 공감콘서트였는데 3층 좌석인데도 무려 18만원이나 하는 거액인데다가 유명 방송인이 진행하고, 정상급 테너와 모 방송사 가요경진 프로그램에서 잘 생기기로 유명세를 달리는 가수까지, 웬지 고상하게 차려입고 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기교는 좋았으나 공연이 끝나고 여운은 그다지 남지 않았더랬다.

이틀 뒤 일하고 있는 지역에서 사회적기업방식으로 운영하는 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에 초대를 받았다. 광명시민회관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공연하는데, 매월 공지를 하자마자 1~2일 내에 전석1만원 티켓이 다 팔린다며 특별히 몇 장 미리 빼놓는다고 하였다. 속으론 ‘이 작은 지역에서 설마 클래식 공연이 하루 만에 매진이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초대권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하고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민회관에 들어서는 순간,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공연장 내에 애들은 뛰어다니고, 공연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환경에서 도대체 ‘클래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더니 사회적기업 대표 겸 지휘자가 마이크를 잡고 옆집 아저씨마냥 관객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곡 설명을 하면서 농담도 따먹고, 클래식 연주자들이 갑자기 곡에 맞춰 허밍을 하는가 하면, 타악 연주자는 삼바리듬에 맞춰 구호를 외치며 관중을 휘어잡았다. 클래식을 매개로 가족과 이웃이 어우러져 여기저기서 관객들은 “심포니 사랑해요~”라며 환호성을 지르고, 동네할머니도 몸빼 차림에 마실 나오는 기분으로 클래식을 감상하는 곳. 축구팬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서 구단을 만든 FC 바르셀로나 협동조합 못지않다.

 

#2 한국 사회적경제의 현황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2007년 7월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이후 현재(2013년 6월 기준) 인증사회적기업이 828개에 이른다. 2013년 2월(801개) 기준에 따르면, 서울이 183개(22.8%), 경기도 133개(16.6%)로 여전히 서울·수도권 편중현상이 있지만, 지자체에서 예비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육성·발굴의 증가로 사회적경제의 범위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7년부터 지원기간이 최대 5년이 지난 2011년 기준으로 고용인원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인증 사회적기업 상위 10개소가 전체 매출의 33%를 차지할 정도로 매출성과가 부진하고, 당기순이익 역시 상위 10개소가 전체 82.3%를 차지할 정도로 부진하다.

더구나 초기 사회적기업의 사회적목적은 ‘사회적문제 혁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일자리창출’에 두었기 때문에 소셜미션이 명확하지 않은 예비사회적기업의 진출이 두드러졌고, 이에 따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혁신의 의지보다는 영세기업의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기업 육성 1차 기본계획(2007~2012) 평가에 따르면, 사회적기업 육성지원책을 통해 사회적기업 확산 및 일자리 창출, 사회적기업 지원체계 구축·운영, 자치단체 및 민간자원 연계의 활성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사회적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생태계 조성이 미흡했고, 사회적기업 서비스 지원체계 개선과 활성화를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고, 업종별 네트워킹 및 공동사업의 필요성을 한계로 인식했다. 그러면서 2차 기본계획(2013~2017)에서는 인건비 지원방식의 직접지원에서 벗어나 판로개척 지원, 공공구매 확대 등을 통한 사회적기업의 자생력 강화, 맞춤형 지원체계 마련, 사회적기업 역할 확대 및 성과 확산, 민간 파트너쉽 강화를 통해 사회적기업 3천개를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3 이런 마을을 꿈꿔본다. 

다시 지역을 들여다보자. 뉴타운 광풍이 몰아치고, 강남의 부동산 불패신화를 보고 막차를 탔던 사람들이 높은 자부담률의 실체를 파악할 무렵, 동네가 노후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나지 않아 건설사도 정부도 답을 내놓지 못하던 한 지역에 대안적 개발방식을 고민하던 활동가들이 모였다. 기존에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문가들이 모여 일률적 개발방식으로 추진되었던 방식에서 벗어나, 거주민과 함께 거주민들이 살기에 적합한 개발방식이 무엇인지 함께 공부하고, 그 지역의 관계와 역사·문화를 살리면서도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지역의 주체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고민하던 ‘골치덩어리’가 결국 장수마을(서울시 성북구 삼선4지구) ‘동네목수’라는 마을기업을 만들어냈다.

‘골치덩어리’가 오히려 지금은 ‘노다지’인 셈. 더군다나 이런 활동 사례를 바탕으로 서울시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거주민 중심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정책모델로까지 이끌어냈다.

동네목수에서는 그 동네에서 왕년에 한 가닥씩 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목수 및 미장들을 직원으로 고용하여 동네 특성에 맞는 집수리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동네아이들과 모여 동네의 보물들을 찾아내는 ‘사진교실’, 삭막한 벽면에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연계하여 ‘벽화그리기’, 주민들의 장점을 활용해 주민강사를 활용한 ‘야생화교실’, 어르신들 밀집지역인만큼 ‘옛날 영화 다시보기’, 보건소와 연계한 ‘건강상담’ 등 기존의 집수리업체가 하는 업무와는 상당히 벗어났지만 이런 기업에 우리집의 수리를 맡겨보고 싶어진다.

저녁 먹으며 맥락 없는 연속극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 걸어서 지척인 거리에 편안한 복장으로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늘상 펼쳐지고,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먹거리도 구입하면서, 먹거리교육도 함께 진행하는 가게가 있는 동네, 천연소재의 옷을 통해 저개발국 아동들의 노동과 빈곤의 문제도 함께 공감하게 만드는 옷가게, 아프면 내 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주치의가 내 몸을 돈벌이의 대상이 아닌 가능하면 병원에 오지 않도록 미리 예방교육을 하는 병원이 있고,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우리 동네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면 이런 기업들이 지역에서 사라진다면 얼마나 지역주민들이 가슴이 아플까?

 

#4 사회적경제의 성공의 조건, 결국 팬립(fan-立)이다. 

어디가 잘된다고 하니 자기 업종 및 지역의 욕구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철학 없이 단순모방하거나 사업의 유발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업종끼리 경쟁하는 것은 결국 ‘제살 깍아먹기’다.

3천개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욕구에 맞는 다양한 사회적경제가 얼마나 촘촘히 엮어있어 실제 지역민(소비자)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가가 사회적경제의 지속성을 담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기업은 철저히 자신이 해결해야 되는 사회적 문제가 무엇이고, 지역의 문제를 들여다 보며 미해결된 과제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조사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필요한 덕목은 ‘경쟁’이 아닌 서로의 전문성을 교류하여 지역과 업(業)의 혁신을 만들어내는 ‘협력’이다. 제 아무리 정부정책으로 공공구매를 의무화하면 무엇 하나? 전문성과 혁신력을 믿고 팔아줄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일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정부와 기업이 만들어 내지 못했던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대응할 수 있는 혁신을 만들고, 철저한 자기 평가를 거쳐서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 구축을 통해 누구나 지속적으로 구매하고픈 재화·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의사결정구조가 사회적기업을 인증받기 위한 형식적 절차가 아닌 고민(위험)을 분산시키고, 다양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덧붙여 해당 기업들이 속해 있는 지역의 결을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사회적기업은 업종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어 지역사회의 문제를 읽어내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사회적경제조직은 전략적으로 사회적기업이 속한 지역 혹은 사회적기업가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자치위원으로 들어가거나 통·반장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을 권한다. 결국엔 준비되어 있지 않은 주민자치위원들이나 통·반장들, 소위 지역의 토호들이 지역의 정치·사회·문화를 좌지우지 하여 그들이 원하는 정권교체를 만들어내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적극적 고려는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정부·지자체와 같은 행정체계는 촉진자의 역할이다. 사회적기업들간의 협력체계가 미흡한 지역일수록 행정이 모든 것을 다 해주거나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행정이 모든 것을 다 해준다면 결국 지원이 끊기면 무너지는 기업만 양상 할 것이고, 방치한다면 지역에서 해결되지 않는 모든 문제를 행정이 시한폭탄을 안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는 처사이다. 행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과제들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자발적 주체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자발성을 토대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들고, 각 부서의 미해결과제를 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더불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공동의 협력자들과 모색하는 장(場)을 열어주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의 장점을 토대로 특화할 수 있는 모델, 타 지역 혹은 타 자원을 연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고, 지역의 사회적경제의 다양한 협력체계와 자원을 만들어 내는 것, 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사회적경제 주체를 동등한 공공선을 해결하는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관계의 첫 걸음이다.

중간지원체계는 가교의 역할이다. 사회적기업의 성장단계별 맞춤형 지원에 필요한 자원은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서로의 욕구가 상충할 때 조정하고, 행정의 언어와 현장의 언어의 다른 맥락들의 핵심과 장점을 뽑아내어 이어줄 수 있는 번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순한 행정의 전달체계가 되거나, 컨설턴트 혹은 전문가들의 또 다른 밥벌이 자원을 만들어 주는 기능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자원들을 이어주고, 개별적 이해관계를 떠나 큰 틀에서 현장의 장점을 통해 스스로 자생력을 갖도록 믿도록 도와주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세 주체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역에서 사회적경제의 마니아(소비자)를 만들어 내는 것, 그래서 결국은 이들에 의해 기업이 굴러갈 수 있게 하는 것. 앞서 말한 사례와 같이 이해관계를 떠나 스스럼없이 “사랑해요. 심포니~”라고 외칠 수 있는 팬층을 만들어 내는 팬립(fan-立)에 기반한 사회적경제. 이것이 3천개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더디고 힘들지만 이것이 주는 효과는 3천개의 사회적기업 그 이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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