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로운 덕후의 우울]문제는 ‘중2병’이 아니야(35호)

2014년 3월 27일culturalaction

문제는 ‘중2병’이 아니야

최지용

hohobangguy@hanmail.net

 인터넷을 자주 하다보면 심심찮게 ‘중2병’이라는 말을 보게 된다. 온라인상에서 신조어가 나타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긴 생명력을 가지고 자주 회자된다는 것은 그 용어가 현재의 사회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2병을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면 “중2병(일본어:中二病추니뵤[*])은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빗댄 언어로, 자아 형성 과정에서 ‘자신은 남과 다르다’ 혹은 ‘남보다 우월하다’ 등의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인터넷 속어이다. 일본에서 1999년에 처음 만들어진 속어이며, 대한민국으로 건너 온 뒤에는 의미가 변질되어 연령대를 불문하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병’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지만 실제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질병이나 정신 질환 따위는 아니다. 그리고 중2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기객관화가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라고 정의되어있다. 하지만 이것만 읽어서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사춘기적 증상과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새로울 것이 없다면 이 신조어가 이만큼 유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중2병”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중2병’은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로 일본의 개그맨 이주인 히카루가 라디오에서 처음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2병’은 오타쿠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자의식이 불안정한 사춘기 시기의 청소년들이 만화적인 망상을 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컨대 만화주인공들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이 자신에게 숨겨져 있다고 믿는 등, 만화주인공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중2병’이라는 말은 이런 증상을 비하하거나 병리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하.. 나도 그랬었지..’하는 식으로 오글거리는 흑역사를 자조하거나 우리 모두가 함께 겪었던 증상을 블랙유머로 말하는 것이다. 아래는 한 네티즌(bosun248)이 중2병의 대표적인 말투로 언급한 것이다.
a. 큭큭… 그럼 당신의 목숨은… 제가 가져가도록 하지요
b. 나는 오늘도 검은 타락의 매춘부 구.인.네.스를 마신다. 내 안의 마수를 깨우기 위해.. 그녀를 잊기 위해
c. 옛날에 투명드래곤이 있었따 투명드래곤은 눈에 보이지 안아따 투명드래곤은 짱 쎄서 지구를 정복했따
아직 잘 모르겠는가? 그럼 하나 더 보도록 하자. 아래는 온라인상에서 중2병으로 유명한 한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난 어제 차가운 도시의 남자처럼 길거리를 정처 없이 배회하다가 한 피시방을 들렀다. 그리고 근육질의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에게 말했다. ‘카드 내놔라 쓰레기야’ (중략) ‘손님 한번 맞아보시렵니까?’ ‘파쇄권!’ 알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만화적인 망상, 자신은 대단하고 특별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중2병의 핵심이다. 거칠게 분석하자면,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과 실재하는 자신의 모습 사이의 괴리 속에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만화적인 환상으로 도피하는 자의식 과잉 현상이다. 사춘기 시절의 자의식 과잉은 누구나 홍역처럼 겪고 넘어가는 현상이므로 좀 더 성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중2병’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접하는 대중문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것은 부정적이라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나 겪고 넘어가는 과정이 지금과 같이 독특한 형태로, 도피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방향으로 드러나는 것은 지금 이 사회가 청소년들을 너무 많이 억압하고 스트레스를 주며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중2병 자기테스트 문항’
 네티즌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쓰이던 ‘중2병’이라는 용어가 언론과 주류문화로 들어오면서 원래의 용법과 다르게 의미와 지칭하는 대상을 확장시켜 사춘기 시기의 청소년을 대상화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보이는 반항적이고 때때로 폭력적인 언행을 모두 싸잡아 ‘중2병’이라는 용어에 포함시킴으로써, ‘중2병’을 매우 병리적인 현상으로 표현하고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들이 ‘중2병’의 증상이 된다. <우먼센스> 2013년 9월호에 실린 글을 보면, ‘중2병’ 진단 체크리스트에 “요즘 들어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반항한다.”, “부모와의 대화를 좋아하지 않고 가족들이 자기 방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 “예전과 다르게 부모 말에 수긍하지 않고 말대꾸가 심해졌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라고 말하며 부모의 간섭을 거부한다.”,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기보다 단짝하고만 붙어 다닌다.”,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어한다.”,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다.”, “학원에 가기 싫어한다.”, “가족들에게 불만이 많다.”, “특별히 되고 싶은 것이나 꿈이 없다.”,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잔다.” 등의 항목을 포함시켰다. 소통의 부재, 부모의 권위적인 모습, 기성사회의 잘못으로 야기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청소년들에게 돌리고 ‘병’으로 치부한다. 이 글을 학부모들이 읽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 짝이 없다. 자식이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꼰대의 비겁한 글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식이 무섭다고 표현한다. 무섭다니? 자기 자식에게 무섭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그들이 나는 너무 무섭다. 청소년들을 끝도 없는 경쟁의 장으로 밀어 넣고 그들의 아픔은 외면한 채,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공감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조차 마련되지 않은 이들에게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왜 이성교제 같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해?’같은 말을 던지는 기성세대가 정말 너무 무섭다. 그들이 마주해야 할 것은 청소년들의 병리성이 아니라 자신의 폭력성, 이 사회의 폭력성이다.
 청소년들은 사회의 리트머스 종이와 같아서, 그들이 문제적 현상을 보인다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약 십년 전, 그러니까 지금의 20대 중반이 중학생이던 시절과 지금의 사회는 많이 다르다. 기성세대에겐 20대나 중학교 2학년이나 ‘요즘 애들’이라는 범주에 묶이겠지만, 지금의 20대가 청소년일 때의 모습과 지금 청소년의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10년 전의 사회도 청소년이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니었지만, 급속한 신자유주의화의 결과로 지금의 사회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폭력적이다. 청소년들에게 줄을 세우고 등급을 매기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예전에는 ‘학교성적’이라는 하나의 척도만이 존재해서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는 환상이 통용되는 나름 예측 가능한 사회였다면, 요즘은 학생들에게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공부가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여 아이돌이 되도록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김연아, 박태환과 같은 스포츠스타가 되도록 운동을 한다. 말하자면 한 가지 분야가 아닌 전 방위에서 끝도 없는 서바이벌 게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지금의 청소년들은 경쟁의 논리를 가장 완벽하게 내재화한 세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꼰대들을 욕하면서 함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진정한 의미의 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의 경쟁상대가 될지 알 수 없기에 끊임없이 견제하여야 한다. 또래집단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기 위해서 친구와 경쟁하여야하고, 친구보다 더 예뻐지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나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도 견제의 대상이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도 견제의 대상이다. 모든 관계에서 경쟁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일베’라는 신인류가 등장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주류사회의 안티테제에 대한 다시 안티테제이다. 이 사회가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깨달은 이들이 ‘사회 진보에 대한 헛된 희망’을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무너지고 ‘연대’란 단지 구호에 불과할 때, 사회적 약자들이 안일하게 선택하는 것은 권력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소위 진보 세력을 조롱하는 것이다. 소위 진보세력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하며, 대중을 조직할 능력이나 에너지도 부족하며, 전망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 한 것이 아니라 체감적으로 정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느끼기에 현실정치는 모순으로 가득하다. 그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해 생겨난 자의식 과잉이 권력자와 동일시하는 퇴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2병’이 가장 나쁜 형태로 최종 진화한 형이 ‘일베’이다.
    
 우리가 청소년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텅 빈 수사학으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실재적으로도 그러하다. 인구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그들은 ‘미래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에 대하여 잘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들에 대하여 아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청소년들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제시할 마땅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주인공 이카리 신지는 거의 억지로 떠밀리다시피 에반게리온 기체에 올라타 인류를 위해 사도들과 싸운다. 이카리 신지는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싸워야만 하는 당위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에반게리온을 보신 분들은 이카리 신지의 찌질함에 혀들 내둘렀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이카리 신지 주변의 어른들의 태도가 더 의문스러웠다. 이제 고작 중학생 정도의 나이가 된 이카리 신지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너무도 폭력적이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 누구도 그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카리 신지는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스스로 시행착오를 통해 익혀나갈 시간도 없이 지금 당장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한다고 어른들로부터 강요받는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것은 그저 미성숙함으로 치부된다.
 태어나는 것으로부터 인간에게 비극이 시작된다. 어머니 자궁 속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 ‘나’는 ‘나’라는 인간으로 ‘너’는 ‘너’라는 인간으로 분리된다. ‘나’와 ‘너’는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여러 사람들이 복잡한 연쇄 고리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얽혀있을 수 있지만, ‘나’는 절대로 ‘너’가 될 수 없고 ‘너’또한 ‘나’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모두 사회 속에 속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두 독립된 개체라는 숙명을 안고 끊임없이 세상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성장하는 일의 모든 원인이자 결과이다. 하지만 폭력적인 사회는 인간의 성장을 방해한다. 세상과 관계 맺는 것으로부터 달아나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들게 한다. 거대한 권력을 동경하며 그 속에 귀의하고자 하는 퇴행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 폭력적인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 변화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데 청소년들에게 “너네는 왜 그렇게 이상하니?”하고 말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청소년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잉여로운 덕후의 우울
사람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밖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도 만난다. 복잡하고 어려운 글보다 쉽고 재밌는 글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복잡하고 어려운 글도 읽는다. 글 읽는 것보다 노래 듣는 것이 더 좋고, 글 쓰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게 좋다. 그래도 글도 읽고 쓴다. 잠자는 것이 좋다. 밥 먹는 것이 좋다. 따뜻한 것이 좋다. 게으른 것이 좋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좋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 쉬우면서도 잘 쓴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글을 쓰고 싶은데 바람대로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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