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사네 TV보기]감기로 인한 온 가족 TV 보기(35호)

2014년 3월 27일culturalaction

감기로 인한 온 가족 TV 보기

박은정

ciudad80@naver.com

최근 한 달 간 온 집안 식구들이 감기에 시달렸다. 식구들 모두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머무는 날들이 있었다. 낮에는 아파 종일 누워있고, 밤새 기침에 시달리느라 기운 빠진 식구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밥 먹고 따뜻한 생강 대추차를 마시며 소파에 기대어 TV를 보는 것이다. 보통 집에서 내가 TV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 나는 감기로 인해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누워 있어야했다. 그 덕분에 다른 식구들은 오랜만에 각자 취향대로 TV를 맘껏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셋톱박스와 연결된 TV로 인터넷이 언제든지 놓친 본방과 무료 영화 및 외국 드라마를 전송해주기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고 싶은 걸 맘대로 골라 볼 수 있다. 몇 날 며칠을 이러고 있다면 이 같은 삶에 넌더리를 치겠지만,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기에 어떠한 노고도 필요로 하지 않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TV 시청은 꽤 큰 즐거움을 준다. 감기로 인해 식구들의 TV 시청을 엿보게 되면서 TV가 주는 즐거움을 그동안 내가 너무 독점하지 않았었나 하는 반성을 했다. 그와 관련해 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참고로 우리 집은 30대 여자 넷이 살고 있다.
S동생은 이야기를 잘 듣고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동생이 가진 뛰어난 서사적 능력에 비해 말이 안 되는 드라마가 많기 때문이다. 가끔 작품성 좋은 드라마를 만나도 호흡 긴 드라마를 챙겨 보는 습관이 없기 때문에 보다가 만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과 매 회마다 이야기를 마무리 맺는 미국 드라마를 즐긴다. 특히 이리저리 머리 굴려가며 시청해야하는 범죄수사물을 좋아한다. TV채널을 돌리다가 OCN에서 시즌 15로 새롭게 찾아온 미국 NBC <성범죄수사대:SVU15>를 보고는 간만에 만난 친구 마냥 좋아했다.
N동생은 집에서 유일하게 막장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식구 누구도 보지 못한 임성한 작가의 MBC <오로라 공주>를 유일하게 시청했다. 그녀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속물성과 말초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을 감당할 수 있다. 최근 그녀가 하루 종일 본 드라마는 미국 AMC <워킹데드>이다.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미국 드라마로 잔인하고 자극적이다. 우리집 식구 그 누구도 같이 시청해 줄 수 없었다. 또한 정통 멜로드라마 KBS <태양은 가득히>를 시청했다. 통속적인 애정 복수극이지만 등장인물들이 비련하게 쏟아내는 찐한 멜로 장면을 보면서 N동생은 가슴 떨려하며 좋아했다. 이 동생의 피가 뜨거운 것을 새삼 알았다.
E동생은 우리 집 막내답게 가장 어린 감수성을 갖고 있다. 막내들 특징인지 주변을 잘 살펴보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다양하게 얽혀있는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용 많고 심각한 드라마 보다는 꽃미남 나오는 만화 같은 가벼운 드라마를 좋아해서 대만과 일본 드라마를 즐겨 본다. 요즘 이런 자신의 취향에 맞는 드라마가 없어선지 아이들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과 tv만화 일본 NTV <이누야사>를 찾아봤다.
서로가 나이 들어가고 성향이 견고해지면서 점점 공유하기 힘든 점들도 많아진다. TV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취향이 달라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도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함께 있기 때문에 함께 볼 수 있기도 한다. 이번 감기로 집안에 함께 있는 시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같이 본 드라마가 있었다. SBS의 <신의 선물 -14일>과 <쓰리데이즈>다. 둘 다 장르는 스릴러다. <신의 선물-14일>의 최란 작가는 KBS <역사스페셜>, MBC <PD수첩> 등과 같은 다양한 시사·다큐 작가 출신이다. <쓰리데이즈>의 김은희 작가는 SBS <싸인>, <유령>을 썼고, 한국 드라마 장르물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역량 있는 작가들이 선보이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라 누가 먼저 본 적 없고 어떻게 전개 될지 모두가 모르다 보니 서로가 머리 굴려가며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우리 식구 모두가 재밌어 하며 함께 봤다. 비록 이 두 드라마가 잘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식구들 각자 취향에 맞는다고 할 수 없다. 누구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일일이 챙겨 봐야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누구는 살인범이 나오는 공포스릴러를 싫어하고, 누구는 복잡하고 진지한 이야기에 관심 없다. 드라마를 안 볼 여지들이 식구들에게 다 있는데 재밌게 보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드라마를 함께 보면 인상 깊은 장면에 대한 서로의 감정이 모여 반응이 커진다. 궁금한 건 더욱 궁금하고, 슬픈 건 더욱 슬프고, 무서운 건 기절초풍하며 무섭다. 같이 사는 고양이도 알 정도다. 함께 보며 공유되는 감정이 깊어서일까? 각자의 취향들이 어느 정도 상쇄되어 함께 본 드라마는 혼자서도 찾아보게 된다.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을 함께 한다면 할 수 있다.
 
사진출처 : OCN, KBS, 애니박스TV,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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