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종의 대중문화의 해체와 재구성]만능 사이보그와 무능한 떼쟁이 사이의 간극 :안방극장의 여성들(35호)

2014년 3월 27일culturalaction

만능 사이보그와 무능한 떼쟁이 사이의 간극

 

:안방극장의 여성들

이윤종 / <문화/과학> 편집위원

yunjong_lee@naver.com

2013년 여름과 가을에는 평일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표출을 극도로 자제한 나머지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처럼 보이는 여성들이 등장하더니, 2014년 상반기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너무 사로잡혀 타인의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여성이 중년 여성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전자는 <직장의 신>의 “슈퍼 갑” 계약직 여사원, 미스 김(김혜수)과 더불어 <수상한 가정부>의 만능 해결사 박복녀(최지우)를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전자와 같은 타이틀 롤은 아니지만 요즘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서 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속 채린(손여은)이다. <수상한 가정부>는 10% 안팎, <직장의 신>은 15% 안팎의 시청률로 종영했고,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2014년 3월 셋째 주 현재 16.6%로 상당히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특이한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 역시 꽤 높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드라마 <직장의 신>, <수상한 가정부>, <세번 결혼하는 여자> (시계방향 순)
내가 이 세 여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스 김이나 박복녀와 대비되는 채린의 캐릭터적 간극이 상당히 크기는 하지만 그 간극을 메꾸고 있는 공통적인 “불통”의 징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미스 김과 박복녀는 30대 후반 내지는 40대 초중반 정도의 여성들로서, 사적으로는 타인과 깊은 인간관계를 맺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조심하며 시종일관 로봇처럼 어색한 경어체 말투를 쓰지만, 공적으로는 다재다능하다 못해 전지전능하기까지 해서 각자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 회사와 풍비박산난 가정의 구세주 역할을 한다. 두 여성 다 연애와 가정사, 혹은 인간관계에 있어 지울 수 없이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 자신들의 다정다감한 본성을 억압하고 사이보그 같은 말투와 행동의 외피로 무장한 채, 자신들의 “감수성”이나 (성적) 욕망을, 프로이트적으로 말하자면, 능력 계발로 “승화,” 혹은 무성욕화 시킨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한 능력자인 이들과 달리, 채린은 20대 후반 정도의 나이에 한 번의 이혼 경험을 가진 채 재혼을 한 경우이긴 하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예쁜 얼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자라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을뿐더러 두 번의 결혼 경험에도 불구하고 가사 일에 완전히 무능하고 공적 영역으로도 큰 재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채린이 사회적 영역으로 진출하는 데에 크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본인 말에 따르면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능력이 뛰어나지 못 해서 프로로는 실패했기 때문에 자신이 피아니스트임을 숨기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자신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애 딸린 이혼남과 재혼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일말의 고민이나 망설임도 없을 정도로 어리석기까지 해, 이제 와서 남편이나 의붓딸과 갈등이 생겨 이혼 위기에 봉착한 것을 자꾸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갈등에 대한 채린의 분노 표출은 피아노 난타 연주부터 시작해 남편이나 의붓딸은 물론 시어머니와 손위 시누이, 어머니뻘 가정부에게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빌라의 공동 지하 주차장에서 난동을 피우며 술주정을 부리기까지 다양하다. 채린은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만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 상태에 있어서도 나이에 맞지 않게 소녀와 여성 사이의 혼란하고 불안한 영역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너무 제멋대로여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채린의 막무가내식 만행은 도무지 그 끝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몹시 흥미롭고 코믹하기까지 하다.
유능함과 무능함의 차이는 있으나, 사실 미스 김과 박복녀, 채린 사이에 공통점은 있다. 셋 다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미스 김과 박복녀는 과거의 심리적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아걸고 타인과 소통하지 않으려 하고, 채린은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가정 형편에서 자랐지만 아내와 외동딸과는 의논도 없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하는 일방적인 아버지 밑에서 소통 없이 살아 온 전력이 이미 있다. 게다가, 예술적 재능이 부족해 자신이 평생 동안 연주해 온 피아노로는 직업 세계에 뛰어 들기도 애매하다는 딜레마에 더해, 가정주부로 행복하게 사는 것도 이미 두 번이나 실패하게 된 불우한 여성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상처에 골몰해 타인과의 소통이나 공존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 여성들은 우리 시대 한국의 불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미스 김과 박복녀는 일본 원작 드라마에서 유래한 캐릭터이기도 하고, 일본은 얼마 전부터 한국에 상륙하기 시작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고독사의 원조 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익명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글을 올려 소통하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불통은 일본이나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표출 형태가 사이보그적인 감정의 억압이건 억지스러울 정도로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떼쓰고 억울해 하는 것이건, 여성을 통해 현재의 한국 드라마 속에 불통의 아이콘이 계속해서 등장하게 된 것은 우연은 아닌 듯 하다. 그것은 닥치고 일이나 잘 하는 여성을 원하는 우리 시대의 욕망일 수도 있고, 전통적으로 소통을 중시해 온 여성의 성향의 변화일 수도 있으며, 우리 시대 불통의 아이콘이 된 여성에 대한 신비화 혹은 상징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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