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삶을 위한 노동, 행복한 노동? -[모심과 살림 포럼] 새로운 삶과 사회를 위한 “노동의 전환”(35호)

2014년 3월 27일culturalaction

삶을 위한 노동, 행복한 노동?

-[모심과 살림 포럼] 새로운 삶과 사회를 위한 “노동의 전환”

 

 

최미경 / 문화연대 활동가

chou78@daum.net

*이 글은 2014년 3월 19일에 열린 모심과 살림 포럼 “새로운 삶과 사회를 위한 노동의 전환”에 참석한 후 쓴 글입니다.
어떤 답답함이 있다. 비전과 목표는 불분명하고 그런 와중에 하루하루 살아가기는 해야 하고. 그런 답답함과 막막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더 좋은 삶과 사회로의 전환”, 그 중에 “노동의 전환”을 이야기하는 모심과 살림 포럼에 참석했다.
첫 번째에는 “한국사회 노동의 현실과 대안”을 주제로 황덕순(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발표가 있었다. 한국사회의 낮은 고용창출력과 여성의 낮은 고용률, 고용의 불안정성, 저임금노동과 임극격차, 장시간 노동 등 한국사회 노동의 현실을 진단하고, 물질적 성장으로부터 ‘더 좋은 삶’을 지향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원주 한알마을의 김용우 이사장은 “생명의 시선과 탈근대적 노동”을 주제로 “우리가 일관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은 자율과 자립, 자치에 기반한 생명 가치와 공동체적 시선이며, 누구든 자율적인 존재로서 삶의 일부인 노동을 즐기고 결과를 나눌 수 있는 상황과 사회를 만들어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발표했다. 김재겸(한살림서울) 상무이사는 ‘생활과 노동의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생활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과 같은 사업조직, 즉 업무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며, 지역화된 노동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환경연대의 이안소영 정책국장은 노동중심사회가 아닌 돌봄중심사회, 맞벌이가 아니라 맞돌봄과 맞살림이 핵심가치인 사회를 위해 여성과 남성, 사회구성원 모두의 노동권과 돌봄권을 함께 보장하고, 삶을 직접적으로 창조하고 유지하는 생계적 관점의 자급노동(일/활동)의 양을 늘려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삶의 필요를 줄이고 소비를 축소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노동의 개념이 전환될 수 있다고 했다. 임정희(미학․문화이론) 교수는 대안 사회 주체들은 개성적-자율적 개인이면서 타자와의 공생과 협력의 감각과 감정, 상상력을 지닌 ‘사회적 개인’이며, 대안적 주체양식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안적 주체양식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이 있어야 노동의 창조성을 상상할 수 있으며, 문화적 활동은 노동의 외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노동사회를 혁신하는 변화요소로서 찾아져야 한다고 발표했다.
토론에서는 어떻게 자율노동을 실현할 수 있는가, 어떻게 행복한 노동을 할 수 있는가를 주되게 얘기하였는데, 관리자와 활동가의 구분을 없애고, 사회적 협업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실무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의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 고용을 늘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 개인의 마음수행, 협동조합에 맞는 노동법 체계의 정비, 소비를 줄이는 것, 상호부조 관계망을 만들어나가는 것, 성장경제가 아닌 마이너스 성장으로의 전환, 노동은 복합적이고 다중적이므로, 노동이라는 생태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의 협동조합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규모가 커지게 되므로, 적정한 활동가가 있고, 작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삶의 방식을 개인이 선택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청중의 의견도 있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로서 나의 행위는 활동인가, 노동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특히 1, 2년차 활동가 시절에는 그 고민이 주된 것이었다. 아침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활동이란 것은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기에 욕심을 부리면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적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언론보도 등에 신경쓰다보면, 시민단체들끼리의 경쟁도 심하고, 활동가들끼리의 은근한 성과경쟁도 있었다. 그 안에서 자율적인 시간과 공간을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난 활동가로서 4년여의 시간을 보낸 후, ‘노동인가, 활동인가’란 질문에 대해서 어느 순간 답을 내렸고, 내 자신과 타협했다. 어떤 행위든, 그 목적이 선하다 할지라도, 외부에서 강제되는 순간, 그것은 내게 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이 되었다. 그런 내게 ‘삶을 직접적으로 창조하고 유지하는 생계적 관점의 자급노동을 늘리라’는 문장은 나의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워낙 게으른 나이기에 실천에 대한 자신감은 없지만,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면, 나(너)를 돌보고 존중하는 노동이 필요해 보인다. 쓰레기장이 되어 가고 있는 방을 청소하고, 나(너)를 위해 밥을 짓고, 살아있음을 위해 움직이는 것, 살아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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