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를 이해하기 위하여]실외생활(34호)

2014년 3월 11일culturalaction

실외생활

임효진(reykjavik59@gmail.com)

겨울은 실내에서 실내로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가며 생활해야하는 건조함의 연속이다. 카페의 빈자리들은 쉴 틈 없이 채워지고 누군가와의 만남 이후에는 4천원 안팎의 커피 값들이 당연한 지출내역으로 날아온다. 겨울에만 피어나는 계절감은 나처럼 추위에 취약한 이들에게는 관조의 영역이다. 불평불만이 취미이자 특기니까 좀 더 덧붙이자면 겨울은 꼼꼼히 찍어 바르지 않으면 얼굴에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는 피곤한 계절.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적엔 어디선가 비추고 있을 창백한 백색의 빛을 견지하며 내 얼굴에 인 각질이, 초조할 때마다 깨무는 부르튼 입술이 나를 설명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가꿔야 한다.
요 근래 날씨가 풀리면서 가장 반가운 일 중 하나는 겨울에는 마냥 무용하게 보이던 도시의 많은 앉을 자리들에게 제 역할을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공의 영역으로 비어있는 자리들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히 아늑하다. 나눌 이야기가 많은 상대와 함께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해를 등지고 충분히 걷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데이트이지 않은가! 서울에서 본인의 지붕을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지만 거리의 주인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집필한 도시건축시공에 관한 책, 『패턴 랭귀지 (A)pattern language : towns, buildings, construction』는 건축이 인간 생활에 주는 영향에 관하여 총 356가지의 사례를 제시한다. 서점에서 크고 무거운 이 책을 한참 들여다보다 나의 관심에 완벽히 부합하는 장을 발견했는데 바로 ‘공공 공간에서의 수면(sleeping in public)’이라는 챕터였다.
“사람들을 보살피고 신뢰를 조성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때때로 공공공간에서 잠들기를 원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만약, 보행로나 벤치에 누워서 잠든 사람이 있다면 이는 하나의 요구로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머무를 곳이 있든 없든, 때때로 우리는 공공의 보행로와 벤치에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것에 행복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범죄-빈곤과 이런 수면 욕구를 결부시켜 이를 ‘공공질서’라는 이름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잠들기를 즐겨하는 한 사람으로써 이 이야기에 격한 공감을 던지는 바이다. 나는 등을 기댈 수 있는 곳이라면 개의치 않고 자주 고개를 떨어뜨리고 졸음에 빠진다. 떠올려보니 당황한 표정을 한 낯선이에 의해 잠에서 깨어난 적이 몇 번 있었다. “아가씨, 여기서 자면 안돼.”, 우리는 거리에 숨지 않는 부동의 존재들을 너무 간단히 유형적으로 분류해 버린다. 상상해 보건데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최초의 ‘거리’는 지금은 시공간적으로 분리된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가능성의 장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계획의 단위로써 ‘길’은 이제 오히려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소외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3년 전 겨울이 오기 직전 늦은 가을 (정확히는 2011년 11월 27일), 여의도 증권가, 8차선도로 한 쪽에서 종일 공연이 벌어졌다. 공연제목은 ‘여의도 소음대폭격’,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주관한 이 거리 장악 퍼포먼스는 2011년 당시 한-미 FTA를 비롯한 온갖 잡것들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다. 물론 일요일이었고 여의도는 한산했으며 대규모 관중이 모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날의 공연을 내가 본 최고의 공연들 중 하나로 꼽는다.
뮤지션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공연 중에 언제나 거리로 나선다. 그 날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거리에서 거리로 나아갔다. 우리들 모두가 이처럼 적극적인 퍼포먼서가 되어 거리를 ‘대폭격’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곧, 봄이고 거리는 따듯하다.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JPG를 이해하기 위하여
내가 무엇을 봤더라, 
기억을 더듬어 씁니다. 
보았던 것과 생각했던 것이 우연히 JPG로 남아있을 때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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