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 현재와 과거 사이를 가로막는 투명한 유리창 –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에 대하여(34호)

2014년 3월 11일culturalaction

현재와 과거 사이를 가로막는 투명한 유리창

 

–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에 대하여

강신유(moonsl32@gmail.com)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과거에 대한 인상은 무엇일까. Le Passe 라는 제목과 비오는 자동차유리를 닦는 와이퍼 이미지가 결합된 타이틀 장면을 통해서도 작가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어쩌면 과거란 어떤 유리창 너머로 장면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첫 장면과 몇몇 장면에서 우리는 창 건너편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왜 이와 같이 강한 단절의 느낌을 풍기는지, 이런 단절이 어떻게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영화의 내용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마리는 오랜 기간 해외에 나가 따로 지내던 남편 아메드와 재회를 한다. 그러나 그가 귀국한 것은 그 동안 사실상 갈라선 것이나 다름없던 둘의 관계를 법적으로 공식화하기 위함이었다. 마리 또한 빨리 이혼절차를 밟기 원한다. 문제는 아메드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마리와 그녀의 새로운 남자 사미르가 함께 살고 있는 집에 머물도록 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리는 아메드와 이혼하고 나면 바로 이 새 남자와 결혼 할 계획이었고 이미 둘 사이에는 뱃속의 아기까지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사실을 아메드는 알지 못했다. 불편한 상황 속에서 그는 최대한 갈등 없이 일을 마무리하고자 노력하지만 마리와 사미르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사이에는 억지로 봉합해버린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곪아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상처의 근원은 “과거” 속에 점점 깊이 숨겨지고 흐려져 간다.
얼마 전, 자살을 기도하고 식물인간이 된 사미르의 부인이 바로 상처의 근원이다. 그녀의 자살기도와 관련해서 영화 속 인물들이 각자 여러 비밀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갈등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죽은 듯이 병상에 누워만 있는 그녀는 점점 더 과거 속에 파묻혀 간다. 과거에 파묻혀간다는 것은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이 재구성하는 과거에 대해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고 그 속에 강제로 편입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이는 마치 추리소설에서 살해당한 피해자는 더 이상 말이 없고 현재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만을 가지고 사건의 진상을 재구성하는 것과 같다. 추리소설에서는 명탐정이 나타나서 진짜 범인과 범행동기, 범행방법 등 과거의 진실을 드러내고 바로잡아주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의 경우 명탐정은 개입해주지를 않는다. 더군다나 사미르와 마리는 적극적으로 과거를 짚고 넘어가려 하지는 않았다. 그냥 덮어놓고 넘어가더라도 그들의 양심에 크게 저촉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둘은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과거를 건드리는 것이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둘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고 여겼음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저들을 마치 사건의 진실을 흐리려고 하는 범죄 공범들로 치부할 수 있을까. 가족 혹은 친구의 죽음이 아무리 슬프더라도 사람은 떠나간 자를 점점 잊기 마련이듯, 과거에 머무는 것들은 현재의 문제에 밀려 외면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 우리가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그렇게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과거에 대한 인상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과거는 서로 연결된 듯 보이지만 그 사이에 투명한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어서 근본적으로 단절되어있다는 것이다. 그 단절 앞에서 어쩌면 사랑하는 가족, 연인 그 어떤 관계도 힘없이 잘려나가는 지 모른다.
그렇게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면서 조금은 패배주의적인 감상에 젖어가려 할 때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완벽한 역전의 감격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과거 속으로 거의 사장되어가던 식물인간 아내가 더 이상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듯 남편의 손을 움켜쥔 것이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그녀의 마른 손을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미르의 향수냄새에 깃들어있던 둘이 함께 한 추억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모두들 자기의 추억이 깃든 향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떠오른 향기와 추억은 우리 마음속에 강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그 강한 추억의 힘으로 그 연약한 손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두꺼운 유리창을 깨부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