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임의 미디어 읽기]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명과 암 – 경쟁과 시청률지상주의가 낳은 폐해(34호)

2014년 3월 11일culturalaction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명과 암

 

– 경쟁과 시청률지상주의가 낳은 폐해

이종임(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appydayljn@naver.com

스마트폰의 등장, 소셜 미디어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우리는 그 어떤 사람들과도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인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과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고, 세상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 현실세계와 또 다른 나만의 시공간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지금의 뉴미디어 테크놀러지이다. 최근에는 카카오톡의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가 대중화되면서 보다 편리하게 친밀한 관계의 커뮤니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테크놀러지가 재현하는 세련된 그 외관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암(暗)’에 대해서 우리사회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타나는 사건 사고, 온라인에서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키보드워리어(keyboard warrior) 등이 그렇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출연자의 자연스러운 감정표현, 일상생활을 보다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무인 카메라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출연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타인의 삶을 바라보면서 ‘신(神)의 시점’을 경험하게 된다. 출연자는 알 수 없지만,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디어 시청환경이 구축되면서, 시청자들은 출연자에 대한 간섭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출연자가 무인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쉽게 노출하게 되는 것과 같이 시청자들도 소셜 미디어를 통한 타인과의 접속이 자연스러워지면서, 타인에 대해 언급하고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노트북의 화면앞,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 앞에서면, 나 혼자만의 세계에 놓이게 되고, 대중들은 타인을 비방하거나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등은 사라진다.
며칠 전 SBS 프로그램 <짝> 출연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프로그램 촬영이 끝나기 직전 출연자들 간의 회식 자리이후 자신의 숙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리얼리티 쇼의 출연자가 그랬듯이, 시청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쉽게 노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아직 정확한 사망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문기사에서는 <짝>출연자가 사망한 이유, 즉 자살을 한 이유로 SNS등을 통해 전달받은 정보,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의 출연자로서 받았던 스트레스, 제작진의 드라마틱한 구성의 희생양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리얼리티 쇼가 높은 시청률을 얻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경쟁’이다. 특히 <짝>은 미국의 CBS의 <Big Brother>, <Survivor>, ABC의 <The Bachelor> 등의 인기 쇼를 섞어 놓은 듯하다. <Big Brother>, <Survivor>는 집 혹은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남은 1명만이 큰 상금을 가져가는 구성으로 제작된다. <The Bachelor>는 1명의 여성 혹은 1명의 남성으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다른 이성들이 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특징들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SBS의 <짝>이다. 이 프로그램은 ‘애정촌’이라는 특화된 공간에서 남녀 출연자들이 합숙생활을 한 후에 자신이 마음에 들었던 이성을 선택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1호, 2호 등의 호수로 호명되고, 온전히 여성과 남성으로서만 비춰진다. 결혼과 연애를 낭만화하고, 젠더 역할을 정형화하며, 경쟁을 거부하기 보다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등에 대한 문제점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지만,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연애문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CBS의 리얼리티쇼 <서바이버(Survivor)>
이와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것 같지만, 프로그램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이 알 수 없는 연출자의 편집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높은 시청률을 얻기 위해 우리사회 경쟁이라는 코드를 던지고, 일반인들이 그 경쟁이라는 주어진 상황속에서 서로를 밟고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구성한다. 우리보다 먼저 리얼리티 쇼로 흥행에 성공한 해외의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출연자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구성은 조금 다르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작되고 있는 리얼리티 쇼를 얘기하고 싶다. SBS의 <심장이 뛴다>는 기존의 다른 어떤 리얼리티 쇼보다 출연자와 상황을 배려하는 편집으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소방관 생활을 하는 연예인 출연자들이 겪는 상황들을 보여주는데, 우리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방관이라는 직업군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소통의 부재, 배려 없음이 가져오는 엄청난 고통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이 프로그램 역시 연예인 출연자들이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노출되는 폭력적 상황과 공포, 두려움 등의 감정 경험은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전달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자들이 겪게 되는 정서, 일상생활의 변화 등을 충분히 고려해 제작에 임해야 한다.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지고, 그 안에서 경쟁의 상황에 몰리게 되었을 경우 경험하게 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짝>과 같은 출연자의 극단적인 결과가 없으리라는 보장하기 어렵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던 SNS 등의 실시간에 가까운, 보이지 않은 대상으로부터의 온라인 공격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일례로 MBC 인기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 출연한 어린 출연자들을 대상으로 한 안티카페가 생기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서슴지 않는 대중들의 무분별한 행동이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미지에서 시작해서 이미지로 끝나는 현대인들이 미디어 속 현실을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기 드보르(Guy Debord)가 얘기하는 “스펙타클 사회”의 한 단면일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짝>의 출연자와 같은 쓸쓸한 생의 마감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할 때다. 프로그램 제작의 소재가 아닌 한명의 소중한 인간으로서 출연자에 대해서 보다 세밀한 관찰과 배려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시청자들 역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고 공격하는 것이 가져오는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지, 그리고 그 대상이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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