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충남 홍성 풀무학교, “밝았습니다. 맑았습니다”(34호)

2014년 3월 11일culturalaction

충남 홍성 풀무학교, “밝았습니다. 맑았습니다”

최미경/ 문화연대 활동가

(chou78@hanmail.net)

금요일 늦은 오후, 충남 홍성군 홍동면 팔괘리에 있는 풀무학교에 도착했다.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낯선 사람이 쭈뼛주뼛 학교를 배회하는데도, 적대감 없이 청소년들이 ‘밝았습니다’하고 인사한다. 학교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실제 농사를 짓는 실습교육이 한창이었다. 학교 건물 앞에는 태양열판이 있었는데, 자연력으로 학교를 운영하려는 듯 보였다. 현재 전체 학생은 88명이고, 졸업생 5분의 1 이상이 지역에 정착한다고 한다. 학교건물 앞 바위에 “偉大한 平民”이란 글자가 새겨있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게 학교 교육철학인데, 그냥 평민도 아니고 위대한 평민이다. “평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민은 인문 예술 교양과 지식을 쌓고, 실제적인 능력을 갖추고 일의 소중함을 알며, 삶의 귀한 가치관이 있는 사람이라야 하고, ‘더불어’사는 평민이라야 한다”는 게 풀무학교의 교육철학이었다. 이런 평민이라면, 깜냥(specification)쌓기, 경쟁교육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은 ‘평민’이 아니다. 나 역시 실제적인 노동을 할 수 없고, 삶에 대한 귀한 가치관 역시 없으니, ‘평민’이 아니다.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풀무학교를 지나 밝맑도서관, 느티나무 헌책방, 그물코 출판사, 갓골 게스트하우스, 갓골 어린이집 등이 있는 마을로 걸어갔다.
다음 날, 갓골게스트 하우스에서 푹 자고 난 후, 거실에 갔더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여성분이 바느질을 하고 계신다. 바느질로 닭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어서 어떤 작업인지 물었더니, 바느질을 좋아해서 홍성이라는 지역정서에 닭이 어울리는 것 같아 개발해서 만드셨단다. 밝맑도서관에서 이 닭들은 전시되고 있었는데, 김명희 선생님 작품들로만 전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만든 닭들이 전시(“꼬꼬들이 도서관으로 온 까닭은”)되고 있었다. 느티나무 헌책방에서는 갓골어린이집 어린이들의 졸업기념 사진전(“내 얼굴”)이 열리고 있었다. 외부에서 예술가가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작품들이어서 그런지 지역과 삶이 묻어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후쿠시마 현지 농민들을 초대하고, 일본 핵 발전소 사고 3주기 관련 도서 전시회 <책에게 듣는다>를 여는 등, 밝맑 도서관에서는 강좌, 생활아트 소품전 등이 열리고, 문화적인 일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렇게 문화적인 삶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까닭은 그 무엇보다 풀무학교의 교육철학이 큰 바탕이 된 듯 해 보였다. 1958년에 설립되었으니 거의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지역사회에 환원되고 있었다. 도서관, 어린이집과 같은 교육활동 이외에도 재생비누공장과 로컬푸드 직매장을 운영하고, 우리 통밀을 이용한 제빵을 생산하고, 파는 작은 가게도 있었다.
‘풀무학교’란 이름은 예전에 대장간이 있어서 풀뭇골이라 불렸던 곳에 녹슨 쇠, 무딘 날이 풀무 불 속에서 단단해지고 쓸모있는 연장이 되듯, 청소년들이 정직하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느 순간, 그리고 컴퓨터 앞 화면 앞에 있는 지금 역시도 난 단단한 사람이길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과 더불어 사려는 의지도 별로 없고, 편의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직접 제작하고 만들어가는 생활생산도 하지 않고 있다. 어느 날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하루도 못살고 굶어죽을 만큼 실제적인 노동 중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자본에 고용된 노동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는 작업을 즐겁게 해 본지도 오래되었다. 풀무학교에서 노동을 교과과정에 포함시킨 이유는 생명을 가꾸는 정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키우기 위해서라는데, 나도 노동을 해야,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임금을 받기 위해서나,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노동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는 노동을 하면 좀 더 삶이 단단해지지 않을까. 물론 내면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확보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움직이고 작업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것, 아주 조금이라도 삶에서 작업하는 시간을 가져나가면서, 나(너)를 돌보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 일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풀무학교의 교육철학, “더불어 사는 평민”
느티나무 헌책방
밝맑도서관에 전시된 “꼬꼬들이 도서관으로 온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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