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재난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후쿠시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34호)

2014년 3월 11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3년, 대안을 생각하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어느새 3년이 지났습니다. 이 사고는 전세계에 걸쳐 원전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탈핵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것에 여전히 관심이 없는 듯 여전히 송전탑 건설에 혈안이 되어 있고,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쿠시마 3주기를 맞아 우리는 어떤 성찰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문화빵> 34호는 후쿠시마 사고 3주기를 맞아 후쿠시마 이후의 우리의 삶에 대해 재성찰할 수 있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① 후쿠시마 이후 3년, 정말 대안이 있는 걸까? – 하승우(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

② 더 많은 탈핵운동이 필요한 때 – 이유진(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③ 재난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후쿠시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 강내영(지역 퍼실리에테이터)

재난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후쿠시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강내영 / 지역 퍼실리테이터

3.11 동북 대지진이 일어난 지 벌써 3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아파하고 지원하는 일들에 다들 적극적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특히 후쿠시마 지역은 왠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지역, 그곳에서 생산되는 것은 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방사능의 위험성이나 그 피해를 부정하려는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과 동시에 우리가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활동과 함께 이미 그러한 재난이 일어난 곳에서의 대처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들은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죠. 그래서 직접 가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에 저는 후쿠시마에 다녀왔습니다. NPO후쿠시마 지원・사람과 문화 네트워크에서 주최로 농활과 현장견학을 겸한 투어에 함께 동행을 한 것입니다. 간략한 일정을 소개하면 오전에는 먹거리 농사가 아닌 방식으로 후쿠시마에서 활동하는 방식의 하나로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여 인형이나 티셔츠 등을 만들고 있는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목화송이 채집 활동을 했고, 그 이후 점심 식사를 겸한 단체 활동내용의 공유가 있었습니다.
‘오텐토 sun’ 이라고 하는 단체인데 유기농 목화를 이용한 후쿠시마 오가닉 코튼 사업과 두번째는 지역재생을 위해 주민 스스로 자연에너지를 활용한 새로운 산업으로의 발전을 꾀하기 위한 이와키 커뮤니티 전력 사업이 있고, 마지막으로 후쿠시마에 대해 제대로 알고 느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와키 스터디 투어 사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버스를 타고 지진과 원전 피해지역의 현장으로 나가보았는데 차량통행금지선까지 올라갔다가 그 옆에 지진 흔적 그대로 방치된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내려서 보니 특히 안방으로 들어간 트럭이 드러누운 채로의 집, 개찰구와 지붕만 남아 풀밭으로 변한 역과 그 대각선 쪽에 존재하는 후쿠시마 원전이 그 현실을 통감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도로를 달리면서 발견했던 또 하나의 심각한 풍경은 제염작업을 한 흙 등을 커다란 검은 주머니 속에 넣어서 그대로 주변 현장에 방치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청년들이 원전과 그 주변지역에서 이러한 작업을 위해 입출입하고 있는 모습과 경찰들이 차량 통제를 위해 마스크 하나에 의존해 현장에 방치되어 있는 등 가슴이 먹먹해 오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이를 뒤로하고 다시 가설주택에 생활하고 있는 곳에 가 보았습니다. 가설주택은 원래 최대 2년을 기한으로 입주하는 곳이라 들었습니다만, 다른 곳으로 갈 만한 곳도 없는 상황에서 그냥 속절없이 기간연장만 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문제들도 있다고 합니다. 방음이 전혀 안됨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문제와 우울증,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스티그마,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지 못함으로 인한 히키코모리화되거나 놀이방법을 잊어버렸다든지 등등의 방사능으로 인한 건강문제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지금에 와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의 생각도 처음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후쿠시마의 아픔을 어떻게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단순한 측은지심이 앞섰다면 다녀오면서 든 생각은 오히려 이러한 후쿠시마와 같은 재난지에서 생기는 문제가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이것들에 대처해 가야할지에 대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가 오늘은 후쿠시마지만 내일은 한국의 어딘가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고, 다른 재난상황에서도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곳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권력과 자본의 폐해로 일어난 문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 어떤 대처와 답을 내어놓을지 후쿠시마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곳의 상황과 어떠한 대처들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함께 그 이후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제안하였고, 그래서 실제로 많은 분들의 공감과 협조로 지난 1월에 후쿠시마의 현재를 이야기 하는 전국 강연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서 소개한 단체인 ‘오텐토 sun 기업조합’의 사무국장인 시마무라씨와 후쿠시마 출신으로 후쿠시마의 아이들의 문제를 걱정하며 지원하는 ‘후쿠시마 지원 사람 문화네트워크’의 사무국장인 군지씨를 초청하여 서울과 대전, 부산과 밀양에 이르기까지 보다 많은 분들과 만나기 위해 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실제로 만난 분들과 자기 지역의 원전문제와도 결부되면서 서로간의 위기의식과 공감대가 확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연회가 막상 열리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분위기였으나, 이를 준비하는 동안은 그리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직접적인 문제가 됐던 것은 후쿠시마의 오가닉코튼 프로젝트로 생산된 목화로 만든 티셔츠와 인형을 강연회장에서 판매하려했던 것이지만, 사실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이를 둘러싸고서도 복잡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물품판매 자체를 문제 삼았고, 또 어떤 이는 물품판매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부터 문제를 삼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이번 강연회 자체를 문제 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층위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같은 편이라 생각하고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이는 꼭 지금까지 반핵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으로 연대해왔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준비모임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반핵운동을 한다고 해도 전혀 다른 접근과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고들 회고합니다. 사실 이러한 다양한 층위의 관점도 원전 자체가 없다면 갈등의 소지가 될 필요도 없었겠죠. 그런 부분에서 이번 강연회에 쏟아졌던 관심과 항의의 에너지가 왜 적극적인 반핵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후쿠시마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어떤 분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정말 공감되는 이야기였는데, 강연회 준비를 하면서 특히나 더 가슴에 와닿은 이야기였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지금, 우리는 문둥병에 걸려 있다. 문둥병은 자기의 살점이 썩어서 떨어져 나가도 아픈 줄 모르는 병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쿠시마가 자신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냥 후쿠시마를 배제하는 것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강연회는 잘 정리가 되었고, 특히 밀양에 가서 밀양의 주민들과 만나서 함께 아픔을 같이하는 자리는 참으로 의미 깊은 자리였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공감하면서 이 문제가 단순히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간이었다고 봅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끼리 반목하게 되는 커뮤니티의 파괴로 이어지고 심지어는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나야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공감대가 ‘밀양과 후쿠시마의 만남’ 이라는 이름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3주기 문화제의 자리에도 이어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얼마 전에는 필리핀 벵겟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그 지역은 산악으로 둘러싸인 지역이고 그 깊은 산속에는 원주민 부족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금이 발견되어도 채광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저 선조에게 물려받은 여기 이 땅(땅위의 공기와 하늘, 땅 밑의 흙과 물을 포함한 자연의 의미) 을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듯한 얘기가 왜 그리도 가슴을 울리던지요. 지금의 밀양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까요? 여기서 그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계신 한국인 신부님을 만났었는데 그 신부님에게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을 10년 넘게 지원해온 일본 분들이나 이곳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신부님이나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여기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 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돕고 보살피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와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서로 입을 모았습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나와 내 가족, 이웃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것조차 점점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부안과 강정 그리고 후쿠시마와 밀양, 이제는 벵겟 지역까지 거대한 권력과 자본은 세계 각지에서 이러한 재난을 양산하고 있고, 각각의 커뮤니티들은 힘들게 그들과 맞서고 있습니다. 또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기존의 커뮤니티들은 파괴와 반목을 맞이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절대로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가 내 가족이 언제든 겪을 수 있는 현실입니다. 문제가 생기는 지역을 계속 배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해 나가는 것은 언젠가는 결국 자신도 그렇게 배제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해 나가야 하고, 동시에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 지역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치유해 나가는 노력을 해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너무 미약해서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다고도 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의 태도나 방식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고쳐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글은 <오늘의 교육> 2014년 3․4월호(19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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