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사네 TV보기]2014 소치동계올림픽과 김연아(33호)

2014년 2월 25일culturalaction

2014 소치동계올림픽과 김연아

박은정

 김연아가 피겨선수로서 마무리를 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시청하면서 예전 올림픽에서 오랫동안 봐왔던 선수가 생각났다. 그 기억들과 함께 소치동계올림픽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 기억에서 가장 오래됐으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올림픽은 1996년 아틀란타 하계올림픽이다. 이유는 하계올림픽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체조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어서다. 미국의 귀엽고 어린 여자 체조 선수들이 마카레나 춤을 추며 갈라쇼를 마무리를 한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녀 체조 모두 외모와 기량이 뛰어난 스타 선수들이 있었다. 알렉세이 네모브와 스베틀라나 호르키나 모두 러시아 선수들이다. 특히 여자 체조의 호르키나의 인기는 엄청났고 이러한 이유로 개인적으로 여자 체조 하면 호르키나가 생각난다.
체조 선수는 대체로 크지 않은 키와 체격이 단단하고 탄력적이다. 그러나 호르키나는 키가 크고 가녀리고 부드러웠으며 동유럽의 전형적인 미녀 얼굴을 가졌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로 눈에 뛸 뿐만 아니라 실력은 현존하는 전설이었다. 체조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3연패를 한 유일한 선수로 올림픽에서 개인종합 금메달을 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녀의 체조 기술은 완벽하고 깔끔했으며 선이 크고 부드러워 우아했다. 호르키나 특유의 뛰어나 표현력과 예술성으로 차원이 다른 경기를 선보여 체조의 여왕으로 불러졌었다.
 하지만 96년 아틀란타에서는 개인종합에서 선두를 달리다 가장 잘하는 이단평행봉에서 떨어져 메달권 밖으로 밀려났다. 2000년 시드니에서는 운영진의 실수로 도마가 낮게 설치되어 무릎방아를 찌며 착지 실수를 크게 했다. 그 충격으로 이단 평행봉에서 떨어져 메달권 안에 들지 못했다. 올림픽 개인종합에 대한 아쉬움으로 여자 체조 선수로는 은퇴를 해도 한 참 지났을 나이인 26살에 마지막 올림픽으로 2004년 아테네에 출전한다. 실력 있고 경륜 있는 선수답게 침착하고 안정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어린 선수들의 기술 발전이 눈에 더 들어왔다. 그녀 특유의 우아한 예술성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나이 어린 선수들의 통통 튀는 탄력적인 재기발랄함에 눈이 더 갔다. 결국 호르키나는 그토록 원했던 개인종합 금메달 대신 마지막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체조선수로서 은퇴를 했다. 함께 출전한 알렉세이 네모브도 그가 출전한 올림픽 중 가장 조용하게 보냈다. 2004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위대한 선수들이 시간이 지남에 어린 선수들에 의해서 조용히 퇴장하는 모습이 씁쓸했다.
  호르키나를 시작으로 여러 올림픽을 봐 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 하나는 세계선수권에서 여러번 우승을 하는 뛰어난 선수라도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4년에 한 번 있는 올림픽은 그 간절함만큼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감을 받는 다는 것이다. 전 세계 팬들과 조국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명한 선수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유독 올림픽에서 흔들리는 선수들이 많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체조나 피겨스케이팅 같이 기술과 예술적 표현력을 필요로 하는 경기에서는 연륜 있는 선수가 안정적으로 섬세하고 우아한 경기를 펼친다 해도 새롭게 떠오르는 나이 어린 선수의 힘차고 재기 발랄한 경기에 눈이 더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었던 올림픽이었다. 그런데 김연아는 올림픽에서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줬다.
 김연아는 국제대회에서 나가서 한 번도 메달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기량이 안정되게 향상된 2008-2009 시즌을 지나면서 4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을 연속하여 1위를 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집중 조명을 한 몸에 받은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쇼트와 프리 둘 다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가져야만 했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것도 세계신기록을 달성하며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말이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딴다는 징크스를 깬 선수이다. 이후 TV를 비롯한 외부 활동을 하다 2년간 공백기를 갖고 2013년 다시 세계선수권에 복귀했고, 쇼트 <뱀파이어와의 키스>에서 냉혹한 아름다움을, 프리 <레미제라블>에서는 장엄함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그녀 전성기 때의 기량을 여전히 갖고 있으면서 더 여유롭고 성숙된 모습이었다. 밴쿠버 때 목표를 이루지 못한 선수들은 꾸준히 활동하며 성장했는데 2년 만에 나타난 김연아는 차원이 다른 경지로 다시 세계챔피언이 됐다. 김연아의 이러한 능력이 놀라워 2013 세계선수권 이후 김연아에 대한 프로그램이라면 놓치지 않고 봤다.
   2010년 밴쿠버 때와는 다른 김연아의 주변을 보았다. 세계적인 선수에 걸맞게 명성이 자자한 외국인 코치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렸을 적 함께한 한국인 코치와 함께했다.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선수들이 있는 외국에서 연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비교도 안 돼는 어린 선수들만 있는 태릉선수촌에서 연습했다. 그리고 2013년 세계선수권 참여 의미에는 현역선수로서의 복귀 무대보다는 한국이 피겨 여자 싱글 올림픽 진출권 3장 확보가 주요했다. 밴쿠버 이후 동기 부여를 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현역 선수로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았다”고 한 그녀의 주요 동기는 올림픽 2연패가 아니라 한국 피겨이지 않았을까라고 짐작하게 된다. 한국 피겨 후배들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자신의 피겨 현역선수 마무리를 위해 이렇게 혼자서 묵묵히 감당하고 이뤄내는 김연아의 그릇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난 이렇게 정상의 실력을 가지면서 흔들리지 않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김연아 본인이 미련이 없을 정도로 노력하고 이뤄낸 것을 후회 없이 보여주고 이번 소치올림픽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이뤄낸 이 전대미문의 피겨 역사에 올림픽 2연패라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존경과 예우를 받으며 소냐 헤니, 카타리나 비트와 함께 전설로 남기를 희망했다.
  김연아는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그녀만의 아름다운 연기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힘 하나들이지 않아 보이는 점프는 높고 정확 했고 빠른 스피드로 얼음 위를 부드럽고 가볍게 쉼 없이 우아하게 날아다녔다. 김연아의 가늘고 긴 선에서 나오는 처연한 슬픔과 아름다움은 피아졸라 <아디오스! 노니노>의 애잔한 탱고 선율과 함께 우리에게 안녕을 고했다. 신예 리프니츠카야와 소프니코바는 보다는 올림픽 피겨 싱글 대미를 장식한 김연아의 마지막 연기가 감동으로 남았고 이와 함께 김연아와 오랫동안 함께한 아사다 마오와 카놀리나 코스트너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주며 올림픽을 마무리 한 것이 가슴 찐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모든 것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김연아는 가슴 벅차하며 홀가분하다고 한다. 올림픽에서 석연찮은 심판 판정으로 은메달을 딴 선수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피겨 여왕에게 걸 맞는 예우를 하지 못한 세계가 흥분했다. 어찌하랴 김연아 못지않은 전재미문의 담대함을 갖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있는 러시아인데 말이다.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싱글 피겨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한 김연아, 아사다 마오, 카놀리나 코스트너가 자신들의 최고 연기를 보여주며 유종의 미를 거둔 것에 감동했고, 재기발랄한 신예 율리아 리프니카야와 그레이시 골드를 만나 다음 올림픽까지 여자 피겨 싱글을 찾아봐야 하는 동기가 생겨서 좋았다.
 올림픽의 영광은 그 간절함만큼이나 따라주지 않아 많은 선수들에게 아쉬움을 남겨주고, 선배 선수들이 떠오르는 신예들에 의해 조용히 퇴장하는 씁쓸함을 안겨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쉬움 없이 모든 것을 이뤄내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위대한 선수가 있고, 선수들의 세대교체에서 오랫동안 노력했던 선수들이 상위권을 유지하며 명예롭게 퇴장하는 것이 가슴 뭉클했다.
여담 – 올림픽의 쏠쏠한 재미 개막식!
 인내심을 갖고 길고 긴 개막식을 보다보면 개최국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150여개의 크고 작은 민족과 함께 세계 최대 영토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큰 나라답지 않게 개막식은 편협하고 촌스러웠다. 앞으로 러시아가 어떻게 나아갈지가 심히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폐막식에서 러시아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예술을 꾸밈없이 진실하게 보여줬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가 알고 있고 가슴 설레게 하는 대문호와 볼쇼이와 마린스키의 고전발레, 환상적이고 애잔한 서커스의 나라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웅장하고 서정적인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함께 불꽃놀이로 마무리한 소치동계올림픽은 러시아의 감성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보는 이는 감동받았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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