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스코프]시네마테크 건립에 밀려난 영화 감수성(33호)

2014년 2월 25일culturalaction

시네마테크 건립에 밀려난 영화 감수성

 
 
 

 

최혁규 / 문화연대 활동가

(misueno4@gmail.com)

 

지난 23일 “201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끝났다. 올해로 9회를 맞은 영화제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취지로 시작되었고, 2006년에 처음 개최되어 매해 1월부터 두 달간 열린다. 이 영화제의 특이한 형식은 감독, 배우, 평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화인과 문화예술인이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하고, 그 영화들을 관객들과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다. 물론 관객들이 투표로 선정한 작품과 서울아트시네마의 선택작도 함께 상영한다. 그렇다보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단순히 후원을 위한 행사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인들과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화려하지 않은 그들의 속사정


이렇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만 봤을 때는 서울아트시네마가 화려하게 한 해를 시작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한 해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운영비 중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하는 30% 정도의 지원금을 뺀 나머지 70% 정도를 자체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영화인들의 후원금, 시민들의 후원금, 입장료와 대관 수입 등이 차지한다. 또한 공간 사용에 있어서는 단기 임대 형식으로 종로 낙원상가 4층에서 실버영화관, 사춤 전용극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어 극장 운영 및 상영 환경 조성에 어려움이 있으며, 영사 장비와 각종 기자재의 노후로 안정적인 영화 상영이 힘든 상태다. 현재 상황이 이렇기에 각종 영화 관련 자료실을 운영하기 위한 공간이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네마테크는 고전/예술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함을 통해 다양한 영화들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며 영화문화의 발전 및 문화민주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공공적 성격의 공간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2002년 개관한 이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10년 넘게 그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 주체인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많은 영화인들,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시민들이 운영비 조달의 어려움과 건물 및 시설의 노후화라는 열약한 운영 조건 개선에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요구에 정부나 지자체가 아예 냉담했던 것은 아니다.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추진경위를 전체적으로 파악해보면 다음과 같다.

 

시네마테크 지원 요구의 역사

 

2006년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제안으로 서울시와 영화진흥위원회가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을 추진하려 했으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교체되며 2009년에 전용관 건립 계획 자체가 무산되었다. 그리고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위해 2010년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고 2011년 4월 서울시의회의 김미경 의원,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 추진위가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위한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에서 행정가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시네마테크의 공공성에 대해 재차 합의했고, 부산시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 사례와 프랑스 파리의 시네마테크프랑세즈 지원 정책을 검토함과 동시에 서울시의 문화정책 현황을 살펴봤다. 또한 서울시의회는 당시의 서울시의 영상진흥에 대한 조례의 앞으로의 제정 방향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의사를 밝혔다.

 

이후 2011년 12월 ‘서울시 영상진흥조례 일부개정안’이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12년 1월 조례가 개정됐다. 개정된 조례안 중 전문 개정된 ‘제8조 법인ㆍ단체ㆍ상영관의 지원’은 눈여겨 볼 만 하다. 이 8조엔 영상문화의 다양성과 공공성 확보를 위해 고전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상영하는 시 관내의 전용상영관 지원할 수 있다는 신설내용이 담겨 있고, 이 지원에 있어 비영리법인 또는 단체가 운영하는 전용상영관에 대해 우선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로부터 대략 1년이 지났고 2013년 3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영화산업 및 영상문화 발전을 위한 청책토론회’를 열였다. 이 청책토론회에서 나온 요구사항 1순위는 시네마테크 건립이었다. 그리고 7월 서울시는 144억원을 들여 5천㎡,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의 시네마테크를 건립한다고 발표했고, 8월엔 ‘『시네마테크 건립 타당성』 연구 용역’ 입찰공고를 통해 시네마테크 건립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9월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화인과의 오찬 간담회’를 통해 영화인들과 시네마테크 건립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 서울시는 ‘서울시 시네마테크 건립’을 위해 총 55억(2014년 사업예산 5억 2천)을 책정해 2014년 예산안에 올렸다. 하지만 서울시의회는 이 예산을 부결했고 현재 서울시의 2014년 사업엔 시네마테크 건립과 관련된 공식적인 내용은 없는 상태다.

서울시의 신속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예산

 

이 정도만 보면 서울시가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해 신속하게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 <2014 년도 예산(안) 사업별설명서>에 나와 있는 ‘서울시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경위을 보면, 3월 영상산업 청책 토론회 개최, 4월 전문가 간담회 개최 및 유사시설 방문 및 청책 후속조치 계획 보고, 8월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 민간자문단 구성, 9월 영화인과 시장님 간담회, 9월~12월 건립 타당성조사 연구용역 추진 등 숨가쁘게 진행해왔다. 하지만 결국 올해 예정된 사업 예산엔 서울시 시네마테크 건립은 없고, 순환보직제도로 인해 문화산업과 영상산업팀의 담당 주무관이 바뀐 상태다. 현재 담당 주무관의 말에 따르면 TF팀을 꾸려 진행한다고는 했으나 뭔가 진공 상태로 들어간 느낌이 든다.

 

이즈음 두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하나는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논의에서 적극적이었던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인데 왜 갑자기 시네마테크 건립에 관한 예산이 사라지게 된 것일까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가? 다른 하나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로, 시네마테크 지원 방안이 왜 시네마테크 건립으로만 정책화되었는지에 대한 점이다. 지원이라고 하면 시네마테크 건립이라는 하드웨어의 지원만이 아니라, 현재 운영하고 있는 시네마테크 전용상영관에 대한 우선 지원도 있을 텐데, 왜 이러한 지원 형태는 추진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애초에 시네마테크의 지원을 위해 시작한 정책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영화 생태계에 대해 무심한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건립 사업

 

원인은 명확하다. 영화에 대한 감수성이 시네마테크 ‘건립’으로 축소된 것이다. 다시 말해 다양한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영화 생태계에 대한 고민 없이 서울시 시네마테크라는 복합상영관 건립을 추진하려 했다는 것이다. 독립영화상영관, 예술/고전영화상영관, 영상미디어센터 등이 포함된 영상문화 복합공간으로서 시네마테크 건립하려 한다면, 우선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립영화계, 시네마테크. 영상미디어센터의 개별성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다. 이것은 한 번의 청책 토론회와 몇 번의 간담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마다 당사자들과 지속적인 치열한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만약 단기간에 무작정 서울시 시네마테크 건립을 추진한다면 이는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이는 결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네마테크 건립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와 별개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애초의 논의를 상기해보면 이 정책의 시발점은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요구였다. 하지만 ‘지원’이라는 말이 어느새 ‘건립’이라로 교체되어 버렸고, 기존의 시네마테크 전용상영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부재한 상태다. 진정으로 서울시가 ‘서울시의 영화산업과 영상문화 발전’을 원한다면 서울시 시네마테크 건립보다 현재 영화 생태계에 대한 지원이 급선무다.

 *사진 출처: 서울특별시 시장실 청책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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