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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이 빙판을 평정하자, 대중들의 시선은 곧바로 곪디 곪아온 체육계의 문제점으로 향했습니다. 짬짜미와 승부조작, 심판매수, 파벌문제 등. 대통령까지 나섰으니 곧 정부 차원의 조사와 대책 마련이 있겠지요. 하지만 늦은 감이 있습니다. 체육계의 이러한 고질병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징후도 충분했습니다. 안현수 선수의 귀화과정, 배드민턴 국가대표 이용대, 김기정 선수의 어이없는 자격정지,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명칭 변경 등은 체육정책 및 행정, 선수관리(인권) 등의 영역에서 뭔가 변화가 필요함을 말해주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문화빵> 33호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① 소치올림픽과 빅토르 안, 그리고 한국 체육계의 문제점에 대하여 – 정희준(동아대학교 교수)

② 박태환과 쇼트트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이대택(국민대학교 교수)

소치올림픽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선수, 감동의 은메달을 안겨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대표팀, 그리고 같은 은메달이지만 온국민의 분노와 연민을 자아낸 김연아 선수. 이 뿐이랴. “헐~” 외침과 함께 새로운 국민 종목을 만든 여자컬링대표팀과 메달과는 거리가 있지만 출전할 때마다 한국 동계올림픽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간 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 대표팀까지. 소치올림픽은 많은 선수들의 선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소치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체육계에는 큰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했다. ’빅토르 안’의 질주(금3,동1)와 한국 남자쇼트트랙 대표팀의 부진은, 2011년 안현수 선수의 귀화과정 혹은 그 이전 대표 선발과정에서부터 제기된 짬짜미와 승부조작 등의 문제를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비단 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이나 특정선수와 코치, 파벌 등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에는 체육정책과 행정 등 체육계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치올림픽은 끝났지만 올해에는 브라질월드컵, 인천아시안게임 등 굵직굵직한 ‘메가스포츠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제기된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한 원인 진단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예정된 체육행사 일정에 밀려 다시 한 번 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한 징후라 할 수 있는, 소치올림픽을 전후로 한 체육계의 사건, 사고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원인 진단과 대책 마련을 준비해보자.

2014년 1월 24일, <세계배드민턴연맹>은 배드민턴 국가대표 이용대, 김기정 선수에게 1년 자격정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징계이유는 도핑테스트 관련 절차 위반. 알고보니 <대한배드민턴협회>가 두 선수의 일정을 제대로 등록하지 않아 불시에 방문하는 <세계반도핑기구>의 도핑테스트를 받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무려 세 차례나. 같은 기간 무수한 국내/국제대회를 다니며 도핑테스트를 받던(그리고 깨끗했던) 선수들이었기에 그 억울함은 더했고, 사람들의 분노는 커졌다. 애초 2년 자격정지에서 1년 자격정지로 징계가 경감되었다고는하나, 이대로는 인천아시안게임 출전이 불가능해져서 선수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무능한 일처리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더욱 문제인 것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대응. 도핑테스트 절차 위반이 통보된 초반의 미숙한 대응으로 징계가 경감될 여지가 없어졌다는 지적(선수가 도핑테스트를 받지 못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인정함)과 함께, 마치 <세계반도핑기구>의 도핑테스트 자체가 문제인마냥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책임을 무마하려는 자세를 보여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협회나 연맹의 안일한 일처리가 선수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이용대, 김기정 선수의 충격적인 징계가 확정되기 전인 1월 15일. 문화부는 대한체육회 등 체육단체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및 대책을 발표했다. 특별감사의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337건에 대한 비리를 적발하고 수사를 의뢰한 단체만 10곳에 이른다(대한배구협회, 대한야구협회, 대한배드민턴협회, 대한공수도연맹, 대한씨름협회, 대한복싱협회, 대한레슬링협회, 경기도태권도협회, 울산시태권도협회, 패러글라이딩연합회). ‘서면감사 후 문제가 제기된 곳의 현장감사’라는 형식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문제가 있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문화부 감사결과 자료 및 언론보도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야구협회 ; 2012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진행 과정에서 협회직원들이 사업비를 중복정산하고 7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

대한배드민턴협회 ; 5억500만원(라켓 850자루ㆍ운동화 1763족) 상당 후원 물품 내용이 장부와 일치하지 않음

대한공수도연맹 ; 3년간 훈련수당 1억4542만원을 횡령한 혐의. 조직의 사유화(아버지는 회장, 장녀는 부회장, 처남은 국가대표 감독, 차남은 국가대표 코치)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의 명칭 변경 과정은 체육정책과 행정에 있어서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체육과학연구원의 기능을 보존한다면) 명칭 변경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거나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초 스포츠과학연구를 통해 한국 스포츠의 발전에 기여해 온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을, 비록 이사회 등의 법적인 절차를 거쳤다고는하나, 별다른 사전 연구나 사회적 논의도 없이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명칭을 바꾸어버린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초과학과 기초연구의 자리를 산업개발의 논리가 꿰찬 느낌이다.

최근의 징후는 아니다.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시점은 2011년. 그리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의 짬짜미 의혹 등이 제기된 시점은 이미 2009년 경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시절 안현수 선수는 남자 선수들 중 홀로 여자대표팀에서 훈련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다. 파벌문제. 이후 무릎부상과 소속팀 해체 등으로 인해 선수생활의 위기를 겪던 안현수 선수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문제는 짬짜미, 파벌, 심판매수 등의 병폐로 인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짬짜미에 가담한 선수들도, 그로 인해 피해를 이은 선수들도 결국 모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운동선수들은 권력관계에서 늘 약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번 소치올림픽을 계기로 제기된 문제들의 해결과정에서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체육정책과 행정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10년의 조사(대한체육회,서울대)에 따르면, 여자운동선수 10명 중 3명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하는 운동선수들에 대한 성폭력 기사는, 성폭력 문제가 초등학생 운동선수부터 프로선수들에게까지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구타, 성폭력은 선수인권과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다. 구타, 성폭력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원인과 배경에 대한 분석과 함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인권/문화예술교육의 실시, 합숙의 문제, 권위적인 사제/선후배 관계의 문제, 가해자 처벌의 실효성, 피해자 보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