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박태환과 쇼트트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33호)

2014년 2월 25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소치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이 빙판을 평정하자, 대중들의 시선은 곧바로 곪디 곪아온 체육계의 문제점으로 향했습니다. 짬짜미와 승부조작, 심판매수, 파벌문제 등. 대통령까지 나섰으니 곧 정부 차원의 조사와 대책 마련이 있겠지요. 하지만 늦은 감이 있습니다. 체육계의 이러한 고질병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징후도 충분했습니다. 안현수 선수의 귀화과정, 배드민턴 국가대표 이용대, 김기정 선수의 어이없는 자격정지,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명칭 변경 등은 체육정책 및 행정, 선수관리(인권) 등의 영역에서 뭔가 변화가 필요함을 말해주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문화빵> 33호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① 소치올림픽과 빅토르 안, 그리고 한국 체육계의 문제점에 대하여 – 정희준(동아대학교 교수)
② 박태환과 쇼트트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이대택(국민대학교 교수)
③ 징후들 ; 소치올림픽을 전후로 한 체육계의 사건, 사고 – 최준영(문화연대 사무처장)
 

박태환과 쇼트트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대택 / 국민대학교 교수,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위원장,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

한국 수영 역사에서 박태환은 조오련 이후 최대의 수확이었다. 그러나 단지 수영이라는 특정 스포츠종목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공로자로 보자면 박태환과 조오련은 동등해 보이지만,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두 선수에 대한 평가와 두 선수들이 탄생한 과정은 애초에 다르다. 한 선수는 아시아의 물개이며, 다른 한 선수는 세계무대에서 우승한 경력을 가진다. 두 선수가 유명해진 무대 크기의 차이뿐 아니다. 두 선수는 서로 다르게 훈련되었다. 한 선수는 타고난 체력적 기반과 강인한 정신력이 바탕이 되었다면, 다른 한 선수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훈련되어 특정한 대회에서 최대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차근차근 시간을 두고 만들어졌다. 선수는 태어난다고 하지만 마지막 우승선을 통과할 때는 결국 보다 과학적인 훈련이 뒷받침된 선수가 그 선을 먼저 차지한다. 현대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환호하고 응원하는 이면에 과학이 그 선수를 만들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과학적 뒷받침 없이 우승선을 먼저 통과한다는 것은 단언컨대 절대 있을 수 없다.
이제 소치의 불은 꺼졌다.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에 소위 효자종목 노릇을 하고 있다는 쇼트트랙은 90년대 초 이 종목이 채택된 이후 거의 모든 올림픽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 쇼트트랙에서 한국은 명실상부한 최대 강력한 팀이다. 우리나라와 경쟁을 하는 많은 나라들은 우리선수는 물론 코치와 지도자들까지 영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못 잡아 난리다. 하계가 양궁이라면 동계는 역시 쇼트트랙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쇼트트랙에서의 모든 기술과 전략 그리고 경기방식은 거의 우리나라가 기준이다. 스케이트의 날을 경기장의 코너에 돌기 쉽게 휘도록 만든 것도 우리나라이다. 선수들이 끼고 있는 장갑의 손가락 끝에 청개구리 손가락 마냥 둥글게 만든 것도 우리나라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과학적 계산과 근거로 만들어졌다. 선수의 기량과 체력뿐 아니라 장비와 전술에서도 과학은 그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과학적 스케이트와 경기운영은 스포츠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진화하게 만든다. 과학이 보이지 않게 역할 하는 장면을 우리는 매 올림픽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각 나라들이 스포츠과학에 최대한 투자하는 이유 

박태환과 쇼트트랙을 얘기했지만 그 많은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 종목에서의 과학적 노력들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매번의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는 이전의 과학과 기술이 이미 구닥다리로 느껴질 정도로 새로운 것이 속속 등장하고 소개된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라는 문구가 창피하지 않을 정도다. 이제 스포츠에서의 흥미와 재미 요소를 선수의 체력과 기량에만 의존하는 사례는 점점 더 사라져간다. 실제로 경기규칙과 규정도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점차로 진화해 간다. 이러한 점에서 스포츠에 많은 관심과 기대를 거는 나라들은 남들보다 먼저 더 진보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찾아 습득하려고 한다.
스포츠에서의 과학과 기술이 단지 메달의 색깔과 숫자만을 염두 해 두는 것이라면 과연 많은 나라들이 스포츠과학에 이만큼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엘리트스포츠에서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은 곧바로 더 넓은 시장으로 파급된다. 스포츠음료가 그렇고 스포츠 의복과 의류가 그렇고, 기능성 식품과 영양제가 그러하며 장비와 소모품들이 그러하다. 세계무대에서의 스포츠 경기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과학적 산물과 기술들은 그 이후의 사용처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적지 않게 스포츠과학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과학과 기술들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공헌도를 넓혀간다. 신발이 그렇고 안전장비가 그렇고 일상에서의 소재가 그러하다. 스포츠과학은 단지 메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체육과학연구원이 중요한 이유 

박태환과 쇼트트랙, 두 사례로 풀어간 한국 스포츠과학의 결과물은 바로 체육과학연구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과학을 연구하는 유일한 곳이다. 불행하게도 체육과학연구원의 기능과 역할에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 문체부는 체육과학연구원의 명칭을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변경하고 기존 체육과학연구원의 스포츠과학 부서를 진천 선수촌으로 이전하는 한편 그 기능을 과학적 연구보다 국가대표 선수지원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스포츠 강국은 메달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과학이 항상 메달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스포츠문화의 총체적인 평가는 스포츠를 우리가 어떻게 다루고 인식하며 그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고 실제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는데 있다. 스포츠과학은 그러한 삶의 영위에 기여하는 요소이다. 메달을 더 따자고 과학을 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선수들이 뛰고 있을 때 우리 모두가 한쪽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도 우리 모두가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과 동등하다. 스포츠과학은 그래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며 지속적인 지원을 통한 독립적인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스포츠 과학연구는 그래서 중요하며 체육과학연구원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안타깝고 두려운 이유다. 앞으로 박태환과 쇼트트랙이 더 이상 탄생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때 우리는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 방황할지도 모른다.
사진출처 : 용인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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