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무대연구소 일지] 브람스와 쇤베르크 – 편곡도 작곡이다(18호)

2013년 5월 23일culturalaction

브람스와 쇤베르크 – 편곡도 작곡이다 

송현민(음악평론가)

오늘날 한국의 클래식 현장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연주’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곡들이 ‘작곡’되고 있다. 이른바 현대음악 ‘기법’으로, ‘현대음악적’으로 작곡되는 곡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작곡가들이 지금 창작하는 곡들은 감상하기에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어렵고 난해할수록 그 안에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값진 사상과 철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음악사가 20세기에 일군 현대음악의 한 쪽 면만을 맥락에 대한 파악 없이 수용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오늘날의 작곡가들의 곡이 관객이나 연주단체로부터 회피대상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서양음악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작금의 작곡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위한 작곡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곡을 ‘편곡’하여 명곡의 반열에 올린 경우도 많다. 창작된 명곡도 몇 개 없지만, 편곡된 명곡 또한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되새겨 볼 역사다.
편곡된 곡을 듣고 있노라면, 기억 속에 있는 원곡과 편곡을 통해 모습이 바뀐 새로운 곡, 이렇게 두 개의 층위가 머리 속을 돌아다닌다. 미리 알고 있는 선율과 박자가 편곡에 의해 모습을 바꾸어 흘러가는 재미는 새로운 곡의 탄생이 주는 재미와 신비함 못지 않다. 무엇보다 편곡은 기존의 작품은 물론 동시대 작곡가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세기의 철학을 담고 있지만, 언제 들어봐도 난해하고 청각적으로 부담되었던 아놀드 쇤베르크(1874~1951)의 곡들. 듣고 있으면 지독하게 난해하다. 하지만 그가 오케스트라버전으로 편곡한 브람스(1833~1897)의 피아노 4중주(바이올린·비올라·첼로·피아노) 1번을 듣고 있노라면 기존의 알고 있던 ‘브람스’가 새롭게 들리고 난해하고 괴팍한 음을 뿜어내는 ‘쇤베르크’ 또한 새롭게 친근하게 다가오게 한다. 그의 대표작인 ‘바르샤바의 생존자’나 ‘달에 홀린 삐에로’가 난해한 쇤베르크로만 가는 길이라면, 브람스 4중주 1번 편곡버전은 친근한 브람스와 난해한 쇤베르크로 가는 두 개의 새로운 길을 놓는 셈이다.
한국에는 수없는 작곡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른바 현대음악을 생산하며, 무에서 유를 위한 창작에 매진한다. 하지만 그들의 곡은 난해하고, 듣기에 버겁다. 그들은 그것이 국제적 추세라고 한다. 그 대의를 지키기 위해 지금도 오선보에 기입되는 음표는 더 어렵게 꼬이고, 관객은 외면하고 연주되는 무대는 더욱더 없어지고 있다. 나는 그들의 대부분이 비중을 두고 있는 창작에서 편곡으로 작업의 중심을 옮겨보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편곡을 위해 곡을 찾는 과정은 우리가 잊고 있던 음악을 발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청중은 명곡과 다시 만나게 되고, 난해한 곡만 작곡하는 동시대 작곡가의 존재 또한 새롭게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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