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zen] <진격의거인>, 인간의 공포에 대한 고찰(18호)

2013년 5월 23일culturalaction

<진격의거인>, 인간의 공포에 대한 고찰

박선영/문화연대

일본 만화 <진격의거인>의 인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에서 단행본 기준(현재 9권까지 발매)으로 1000만부를 훌쩍 넘어섰다. 올해부터 시작한 애니메이션 또한 국내외 팬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프닝 영상의 패러디물, 극중 등장하는 초거대거인의 코스프레, 거인모양의 도시락, 거인이 사람을 잡아먹는 합성사진 등 인터넷 상에서 <진격의거인>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다양한 2차 생산물의 원천이 되고 있다. 국내 인기 예능프로인 무한도전에서도 <진격의거인>을 패러디한 듯한 “진격의 준하”와 같은 자막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사실 <진격의거인>정도의 판매부수나 시청률을 기록한 만화, 애니메이션은 항상 있어왔다. 하지만 그 인기는 어디까지나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그들만의 리그였지 <진격의거인>과 같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다양한 방식으로 폭넓게 소비되는 작품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후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격의거인>이 매력적인 점은 어떤 부분일까? 기본적으로 탄탄한 스토리와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꽉짜여진 스토리가 주는 몰입도도 이 작품의 흥행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배경과 설정이 가져다주는 독특함이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845년 즉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100년전쯤 인간을 잡아먹기 시작하는 거인들이 등장하면서 인류는 거의 절멸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거대한 성벽을 쌓고 성벽의 보호 속에서 간신히 생존을 유지하게 된다. 디스토피아적 SF 작품들은 영화나 애니를 통해서 자주 나오는 단골소재이지만 <진격은거인>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다루면서도 묵시록적인 세계관을 다룬다. 중세의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을 다루는 그런 어두움과는 또다른 독특한 질감의 어두움을 보여준다. 다른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작품들이 인간들간의 다툼이나 인간이 원인이 된 재앙으로 시작된 인류의 몰락을 보여준다면 <진격의거인>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인간의 천적인 거인이 나타난다. 인간들은 그 거인에 그들이 누구이고 왜 나타났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거인들에게 마구잡이로 잡아먹히며 자신들의 나약함을 느끼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진격의거인>의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공포’이다. 인간은 거인들에 의해서 거의 멸종 직전까지 갔지만 거인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성벽 안에 갇힌 채 그 안의 삶에 만족하고 살아간다. 어느날 50m에 이르는 성벽은 초대형 거인의 등장으로 파괴되어버리고 또 다시 인간들은 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유린된다. 여기서 여러 인간 유형들을 보여준다. 거인의 살육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공포에 짓눌린 채 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삶을 포기해버리거나 자살을 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미지의 대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그만큼 가혹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공포는 쉽게 전염되어 도시전체 순식간에 퍼져버린다. 물론 극중 진행에서는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한 채 끝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그런 나약한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은 적잖이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세상은 먹이사슬이라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 약한 생물을 강한 생물이 잡아먹으면서 유지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항상 인간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 위에 또 다른 생물이 있다면 어떨까? 인간위에 있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인간들은 애써 하려 하지 않는다. 보이지만 보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진격의거인>에서의 거인은 이러한 인간의 공포의 표상이다. 애써 피하려고 하지만 그 공포가 현실이 되었을 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정신적 붕괴를 일으킨다. 냉전시대의 핵에 대한 공포, 후쿠시마 원전폭발,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등 아직도 인간은 많은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기에 <진격의거인>이 보여주는 현실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고 우리 인간들이 품고 사는 공포에 대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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