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상영을 통한 영화의 정치, 그 비폭력성(18호)

2013년 5월 23일culturalaction

상영을 통한 영화의 정치, 그 비폭력성

ㅡ루아리 애로우의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과 공동체 상영

최혁규 / 문화연대

지난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영국의 저널리스트 루아리 애로우의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의 공동체 상영이 있었다. 전쟁없는세상의 주최로 상영된 이 영화는, 진 샤프(Gene Sharp)의 책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From Dictatorship to Democracy)>에 모티프를 받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시위와 혁명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비폭력행동을 연구하는 진 샤프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사상을 전달하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서 발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앞서 말하건대 이 글은 영화의 공동체 상영이 비폭력행동과 맺는 관련성에 대한 고민이다.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은 진 샤프의 사상과  그 영향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의 작업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영화는 진 샤프의 강의 영상과 인터뷰로 시작해서 버마, 보스니아, 시리아, 이집트 등 여러 국가들로 이동한다. 각국 시위대의 주요 인물들은 어떤 경로로 그의 책이 전해졌는지,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어떻게 독재에 맞섰는지를 회고한다. 유독 눈에 띄는 건, 배트남전 참전 미국 대령이 그의 열혈한 동료라는 점이다. 처음에 그는 비웃기 위해 진 샤프의 강의를 들으러 갔었는데 그 자리에서 진 샤프의 사상에 깊이 공감했다고 고백한다. 평화운동과 비폭력운동에 대해 연구하는 진 샤프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부분은, 그가 단순히 독재자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독재자가 권력을 잃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여러 국가를 종횡무진하면서 인터뷰를 담아내는데, 그 사이로 비폭력행동의 여러 원칙들을 텍스트로 삽입한다. 전략을 짜라, 개인의 원자화를 넘어서라, 권력을 떠받치는 기둥들을 끌어들여라, 폭력에 저항하라, 정치적인 방법으로 맞서라, 포기하지 마라 등. 이 원칙들은 대중 혹은 민중들이 독재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방법을 말해주며, 이런 조직적인 비폭력행동이 버마, 보스니아, 시리아, 이집트 등의 실제 사례와 어떻게 정합적으로 맞아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진 샤프의 강령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가 자신의 이론을 얼만큼 자신의 삶으로 담아내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가령 미정부의 원조를 거부하고 힘겹게 연구소를 끌어가는 것이나 난초를 소중히 키우는 것 등이 반강권적 비폭력적 평화적인 삶을 실천하고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잘 뒷받침해준다.
루아리 애로우의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는 점보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샤프의 <독재에서 민주주의로>가 널리 알려질 수 있다는 점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공동체상영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공동체 상영은 특정 공동체나 단체 혹은 지역을 위해 영화관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이 가능한 곳에서 특정 영화를 상영해 함께 보는 행위이다. 대개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영화들과 달리 공동체나 단체를 위해 특정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에 부합하는 작품이 상영될 가능성이 크지만, 영화관에서 정해준 영화가 아닌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영화관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벗어나서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다.
공동체 상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영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찾아가는 상영 방법과 또 다른 하나는 공동체나 단체가 자신들이 주최해서 영화를 상영하는 방법이다. 아마도 첫 번째의 경우는 20세기 초반 소련에서 그 전신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 같은 경우 후자의 공동체 상영일 텐데, 이는 모든 공동체들이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폐쇄성을 개방성으로 전환시켜줄 수 있는 방법이다. 공동체가 자신의 의견을 담은 영화를 선정해서 공동체 상영을 한다는 점은 대중들에게 단체를 알리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자신의 색깔을 담은 영화만을 계속해서 상영한다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공동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런 비난도 함께 나눠볼 수 있을 거다. 따라서 공동체 상영은 비폭력적인 문화적 프로그램이다. 스스로 나서서 구호를 외치거나 하지 않지만, 영화를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려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공동체 상영은 영화의 정치 중에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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