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로운 덕후의 우울]인터넷 커뮤니티 파헤치기 파이널 -그래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까.(18호)

2013년 5월 23일culturalaction

인터넷 커뮤니티 파헤치기 파이널

-그래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까.

최지용

인터넷 커뮤니티 파헤치기1-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일베’ 같은 곳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파헤치기 2-일베의 ‘산업화’에 맞선다
우선 왜 인터넷 커뮤니티에 관한 글을 3회 연재로 쓰게 되었는지 밝히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한 가지는 첫 번째 연재분에서도 밝혔듯이, 일베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관심을 다른 여러 커뮤니티로 돌리고, 그 커뮤니티들이 일베에 잘 대항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다른 한 가지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중요성과 의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비해 그 주목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보지 않고서는 현재 젊은 세대들이 소통하는 방식,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을 제대로 알기 힘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금의 젊은 세대는, 90년대 이후 사회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 아동, 청소년기를 보냈다. 전통적인 형태의 공동체는 무너졌고, 친구를 사랑하는 법보다는 경쟁하여 밟고 올라서는 법을 먼저 배웠다. 사교육 시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으며, 어른들은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는 조력자이기 보다는 불통과 불신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이른바 민주정부라고 불리는 교체된 정권 아래서 초등, 중등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무한 경쟁 속에 노출되긴 했지만, 권위주의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웠던 셈이다. 그들은 매우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메신저, 미니홈피 등을 통해 친구들과 대화하고,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물건을 구매하는 등 삶과 인터넷이 분리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자라났다. 이러한 그들이 전통적인 공동체의 대체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끈적끈적한 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그들에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맺는 느슨한 유대 관계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속에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 없이도 수다를 떨 수 있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을 은밀하게 훔쳐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참여’는 그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사회적인 이슈나 사안에 대해 매우 빠르게 관심을 가지고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뜨리지만, 사안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거나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사회적인 문제에 참여하는 것도 여타 인터넷 놀이문화에 참여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특히 패러디 문화와 정치가 만날 때, 그들은 매우 유쾌하고 즐겁게 정치를 풍자한다. 놀이와 정치가 만나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는 긍정적일까?
기성세대가 지금의 젊은 세대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부터 시작해서 안철수 현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두고, 젊은 세대들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광우병 촛불집회 같은 사건들이 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단일한 사건들이 청년들을 ‘정치화’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원래부터 그랬다. 어떤 이슈나 사안에 대해서 어떤 때는 매우 무심한 듯 반응하지만 어떤 때는 불길처럼 거세게 일어난다. 그게 그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인 셈이다.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흥미가 가는 프로그램에서 리모컨을 멈추는 것처럼,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은 채널을 휙휙 돌려버리기도 하지만, 본방사수하며 챙겨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리고 계속 챙겨보던 프로그램도 재미가 없어지면 그만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채널을 선택하는 분명한 취향이 존재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시각이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특정 사안에 대한 관심을 금방 접어버리고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관심을 가지는 그 순간만큼을 진심인 것이다. 기성세대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정서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세 달에 한 번씩 애인이 바뀌는 사람도 사귀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운동은 지금의 젊은 세대와 어떻게 만나야 할까? 현재 많은 운동단체들이 난항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들 힘든 시기를 거쳤고 나름대로의 성과는 있었지만, 대중을 끌어 모울 수 있는 힘은 부족하다. 운동진영이 이룬 성과나 성취와는 별개로, 대중들은 점점 타인의 고통이나 부조리에 무관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의 목소리에 대중이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개인화, 파편화된 이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서로의 삶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될까? 해답은 나도 모른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행동양식을 지니고 이으며, 그것이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활 방식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는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기. 공동체를 형성하기. 서로의 삶에 개입하기. 관계는 클릭 몇 번으로 연결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고민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우리는 조금 더 불편한 삶을 택할 필요가 있다. 늘 즐겁고 재밌을 필요는 없다. 즐거움을 함께하는 친구보다 고통을 함께하는 친구가 더 소중한 친구다. 힘들어 하는 친구가 있다면 ‘힘내’라는 말보다 ‘괜찮아’라고 말하고 함께 가자. 청년들, 우리들의 삶은 졸라 불안하고 외롭지만, 졸라 막장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대로도 괜찮다. 우리 함께 가자. 손잡고 함께 가자.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