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예술 LOVE 정치, 정치 LOVE 예술(18호)

2013년 5월 23일culturalaction

예술 LOVE 정치, 정치 LOVE 예술

청년유니온 1기 위원장 김영경 

5월9일은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한 페스티벌이 있은 날이었다. 이 날의 오프닝 행사로 ‘예술 LOVE 정치, 정치 LOVE 예술’ 이라는 플래쉬몹이 있었다. 표현의 자유 연대 회원들과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비를 맞으면서 한바탕 놀아 재꼈다. 약간의 우왕좌왕과 과도한 충성심에 불타오른 경비 아저씨와의 실랑이가 더해져 그야말로 아수라장의 놀이터였다. 이 날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반 고흐를 주인공으로, 전두환과 오드리 헵번, 오바마, 간디, 김구, 아이언맨, 조로, 슈렉 등을 친구로 초대하였고 함께 떼거지로 줄넘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등을 하였다. 특히나 고흐와 박근혜가 함께 줄넘기를 넘는 장면은 참으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박근혜와 반고흐의 줄넘기라는 발칙한 생각을 해낸 건, 다 대법원 덕분이다.
그러니까 이 일의 발단은 꽤나 오래전인 2010년 3월로 올라간다. 국내 최초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2010년 3월 창립을 하였다. 반복적으로 취업과 실업을 오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처지가 반영된 노동조합이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구직자의 노동3권’을 인정할 수 없음과 청년유니온의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들어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하였다. 이에 우리의 재기발랄한 청년들은 이 문제를 광장으로 끄집어 내기 위한 시도를 하였고 그것이 4월4일 진행된, 바로 대법원 판결의 시초가 된 ‘청년유니온의 플래쉬몹’ 이었다. 어느 TV 프로그램을 모방하여, 위원장이었던 내가 명동 한가운데서 소복을 입고 신문고를 두드릴 동안, 회원들이 각자 청년들의 현실을 표현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었다. 누구는 컵라면을 먹고, 누구는 토익 공부를 하고, 누구는 TV를 보며 잉여거리고, 누구는 등록금빚 때문에 허리 휘는 부모님께 석고대죄를 하고… 제각각의 댓글이 달렸고 당일 날 10여 명의 청년들이 명동 예술 극장 앞에서 플래쉬몹을 하였다.

하지만 그 자리엔 청년들보다 더 많은 경찰 병력들이 이미 포진해 있었고, 플래쉬몹을 시작하기도 전 불법 집회라고 우리를 둘러싸고 훼방을 놓았다. 가만히 두었으면 평화롭게 놀다가 떠났을 우리들이 과잉진압한 경찰들 덕분에 졸지에 도로를 점거한 불법 집회꾼들이 되었다. 그리고서 나는 대표격으로 집시법 위반에 해당되어 남대문 경찰서에서 고소를 하였고 약식 명령 100만원이 떨어졌다. 도통 이 상황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던 나는 정식재판을 청구하였고, 그 재판이 시간이 흐르면서 2심, 3심까지 거쳐 지난 3월 28일 대법원 판결이 났고, 처음 약식 명령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대법원 판결의 위험성은 단순히 ‘청년유니온의 플래쉬몹’을 유죄로 인정한 것만이 아니라, 예술적 행위와 정치적 행위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정치적 행위를 할 경우 플래쉬몹과 같은 예술의 형태라 할지라도 사전 신고를 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법적으로 규정이 없었던 플래쉬몹이 대법원에 의해 정의되면서 재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헌법의 기본 정신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정치와 예술의 경계를 그어버림으로써 다시 케케묵은 논쟁으로 우리를 불러 들였다.
우리가 똥을 싸고,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그 모든 행위 중에 도대체 ‘정치적’ 이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면 G20 개최를 환영하는 건 ‘예술적’이고, 청년실업을 해결하라며 반정부 행위를 하는 건 ‘정치적’인가? 차라리 정치와 예술의 경계를 그을 것이 아니라 정부에 반기를 드는 모든 행위에 대해 처벌을 하겠노라, 대법원이 솔직하게 나왔다면 이런 케케묵은 논쟁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대법원 덕분에 광화문 광장에서 열심히 뛰어 논 우리들,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해 더욱 발칙하고 즐겁게 연대하며 우리의 권리를 제재당하지 않기 위해 요란법석을 떨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사법부에 제언을 드리자면, 이 요란법석이야말로 참된 민주주의가 실천되는 거룩한 공간이며, 이를 ‘허허’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국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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