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영화제 재장전, 영화를 우리에게 돌려 달라!(17호)

2013년 5월 8일culturalaction

영화제 재장전, 영화를 우리에게 돌려 달라!

최혁규 / 문화연대 활동가

 

흔히 3대 국제영화제라고 하면 칸, 베를린, 베니스를 꼽고,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토론토를 덧붙인다. 온라인 영화제를 포함해 온갖 영화제가 있는 시대이지만 ‘국제영화제’는 해외의 다른 영화제들과 교류하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와 영화인들을 초청한다는 한다는 점에서 영화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역할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는 무엇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명실상부한 국제영화제로 인식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에 첫 영화제를 열었고 올해로 18회를 맞는다. 매년 10월이 되면 각종 미디어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국내외 영화인들의 소식을 전하기 바쁘다. 무엇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지역의 영화를 소개하고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외에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있을 거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다소 실험적인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영화제로, 영화광 혹은 시네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작년에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부당 해임 사건과 실무진들의 대거 퇴임하는 비극을 겪으며 전주국제영화제는 갈팡질팡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마 전에 폐막식을 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건 것보다는 별 탈 없이 무사히 영화제를 마무리했다.
                                      <PBS 온라인 영화제 관련 영상>
물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국제청소년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환경영화제 등도 있지만, 이 영화제들은 테마 영화제라는 점에서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와는 결을 약간 달리 한다.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나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같은 경우도 있지만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화제가 되었으며, 광주국제영화제 같은 경우는 그 규모가 너무 축소되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영화제 외에도 서울독립영화제, LGBT영화제, 인디포럼, 다문화영화제, 장애인영화제, 베어프리영화제 등이 있고, 국내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제의 수를 세보면 대략 60여개 정도가 될 것이다. 지자체들이 나서서 지역 축제(festival)을 개최하고 있는 요즘의 상황을 보면 영화제(film festival)가 많은 것도 이해가 안 될 문제는 아니다. 이런 현상을 자본이 지역과 문화예술을 상업적인 논리로만 여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현상들이 대중적인 수요뿐 아니라 다중들의 요구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측면으로도 접근해야 한다. 어쨌든 영화제가 이렇게 많은 국내의 현 상황에서 영화제는 정말 영화의 축제일까?
올해 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자료실에서 흥미로운 글을 하나 접했다. <프리미어>의 전 기자 출신인 전종혁이 쓴 <흔들리는 영화제, 이대로 좋은가?ㅡ국제영화제 현황 및 개선점 점검>이라는 이슈페이퍼였다. 영화제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지속되어 오고 있었기에 영화제 전반의 문제를 분석적으로  다룬 글이 하나 정도는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다. 영진위의 영화제 지원과 관련해 산업적인 차원에서 영화제를 제고할 것을 제안하는 그는, 길지 않은 이 글을 통해 각 국제영화제의 행보와 문제점을 짚어가며 ‘글로벌국제영화제육성지원산업’이라는 영진위의 국제영화제 진흥 정책을 점검한다. 그는 200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김홍준 집행위원장 해고,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의 유운성 프로그래머 해임, 2013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오동진 집행위원장 사임과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폐지 등을 언급하며 사건들의 경위를 설명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제들이 처한 상황과 그 원인을 진단한다. 그리고 그는 ‘글로벌국제영화제육성지원사업’이 공모제로 전환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성과식의 지원 정책을 염려하며, 과도한 경쟁과 지원의 불균형을 막기 위해 일정 지원 금액 하한선을 두고 각각의 영화제에 맞는 평가 방식의 기준을 마련하는 방식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종혁이 자신의 글 서두에서도 밝히고 있듯, 각종 영화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의 원인은 ‘영화제 참여 주체와 지자체(후원 기업) 사이의 불협화음’이다. 이렇듯 영화제에 일정 금액을 후원하던 지자체 혹은 후원 기업의 입김이 영화제의 자율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부분의 후원은 영화의 논리 이전에 지역 개발 혹은 기업 성장의 논리로 영화제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지역의 축제이기 이전에 영화의 축제가 되어야 하는데, 이들에게는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영화제가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상영하고 국내에 소개되지 못한 영화들을 선사하고 재조명해 국내 영화 문화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제는 영화제가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아니지만, 영화제가 영화의 축제라면 이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이런 문제는 영진위에게도 없지 않다. 사례로 ‘시네마테크 사태’를 들 수 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에 일정 금액을 지원하던 영진위는, 2010년 초 마치 자신이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인 양 그곳을 제멋대로 공모에 부친 적이 있다. 이 외에도 후원과 지원이 어느새 양날의 칼이 되어 영화를 제멋대로 휘두르는 사례는 꽤 있을 것이다. 물론 큰 들에서 봤을 때 기업이 장악한 영화 제작의 문제, 나아가 다른 예술들이 처한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영화제는, 유운성의 분석처럼 ‘예술적 가치의 보증’이 아니라 ‘예술적 기능(작품-기능)의 할당’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적 인증이라는 점보다 크리스 후지와라의 정의처럼 ‘고립에 대한 정복이나 고립의 패배’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제에 대한 지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영화제는 열려 있는 타자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영화제를 진흥하는 정책에 있어서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마라’라고 단순히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영화제를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는 영화제를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동시대적이고 공동체적인 고민을 통해 영화제의 예술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축제(festival)가 사람들이 일상을 벗어나 함께 모여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일종의 의식적인 문화인만큼, 영화제는 스크린을 장벽으로 마주 서 있는 영화와 관객이 영화관 안과 밖에서 한 데 어우러지는 공동의 장이 되어야 한다. 영화제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는 영화제를 점검하고 재장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영화제는 영화의 축제이자 우리의 축제가 될 것이고, 각각의 영화들은 ‘영화’로서 우리와 만날 것이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